김재승한의사의 건강칼럼(135)

혈액질환 ➀

혈액은 인체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다른 노폐물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 혈액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세포 성분과 혈장이라 부르는 액체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적혈구 등 세포성분이 혈장에 떠 있는 형태가 바로 피다.

피가 붉은 이유는 혈액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적혈구 성분 때문이며, 백혈구와 혈소판은 혈액의 4~5%에 불과하다. 혈액의 나머지 55% 정도는 혈장이며, 혈장의 90%는 물이다.

이런 혈액의 구성원들이 많아지거나 적어지고 또 이상이 생겼을 때 우리는 혈액질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자.

우리 몸 구석구석에 생명을 불어 넣는 혈액은 1분에 한번 정도, 심한 운동 시 20초에 한번 정도 온 몸을 순환하는데 혈액 속에는 각종 영양소와 산소가 충분히 들어 있다.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은 포도당으로 분해된 뒤 피 속에 녹아 온 몸으로 전달되며, 인체 각 조직은 이 포도당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만든다. 이 때 필요한 ‘불쏘시개’가 바로 산소다. 그밖에 인체를 구성하는 각종 단백질, 지방질, 무기질, 비타민, 콜레스테롤 등도 혈액을 통해 온 몸으로 운반된다.

따라서 피가 공급되지 않으면 세포들은 호흡곤란과 영양실조 때문에 심각한 손상을 받게 된다. 뇌나 심장 세포는 극히 예민해서 수분간만 혈액 공급이 중단돼도 사망하게 된다.

그 때문일까. 고대로 부터 피는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각종 종교의식을 통해 숭상돼 왔다. 하지만 혈액에 관한 일반인의 지식은 약한 수준이다. 피가 생성되는 과정이나 어떤 기능이 있으며 어떤 원인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는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빈혈이 있으면 어지럽다’ ‘백혈병은 골수이식을 해야 한다’는 정도의 상식 수준만 가지고 있다. 필자는 생명 그 자체인 혈액에 생기는 질병들을 공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산소의 운반을 담당하는 적혈구 안의 헤모글로빈은 폐에서 산소와 결합해 온 몸을 돌면서 조직에 산소를 전달해준 뒤 다시 심장을 거쳐 폐로 들어간다. 이 때문에 산소를 머금은 동맥피는 밝은 선홍색인데 비해 산소를 빼앗긴 정맥피는 검붉은 색을 띈다.

무색의 백혈구 세포는 외부의 침략군으로부터 인체를 지켜내는 방위군이다. 즉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이 체내로 침투하면 백혈구는 여기에 대항하는 항체를 생성해서 침입한 세균 등을 무력화시킨다. 혈소판은 혈관의 상처를 치료하는 접착제와 같다. 혈관이 찢어져 피가 새어나오면 그 부위에 달라붙어 혈액응고인자를 분비시킴으로써 지혈작용을 한다.

한편 피의 양은 몸무게에 비례한다. kg당 80ml 정도로 체중 60kg이라면 혈액양은 약 4.8리터가 된다. 적혈구 백혈구 등 혈액의 세포 성분은 대부분 골수라는 혈액조직 내에 있는 조혈모세포에서 생성되는데, 골수는 골반 뼈에 가장 많고 척추, 갈비뼈 같은 납작 뼈에도 있다. 골수이식(조혈모세포이식)을 할 때 골반에 긴 대침 같은 것을 꽂아 골수를 채취하는 이유도 여기에 조혈모세포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적혈구의 수명은 120일, 백혈구는 30~60일, 혈소판은 8일 정도다.

혈액질환이란 혈액을 구성하는 세포나 기타 구성 물질에 이상이 생긴 경우다. 부상 등으로 출혈이 생기면 다시 그 만큼의 피가 생성되므로 피의 양이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만약 총상이나 심한 부상 등으로 피를 지나치게 많이 흘리면 즉시 사망하므로 그것을 병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혈액질환 중에선 혈액세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적혈구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가장 많으며, 백혈구나 혈소판 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백혈구, 혈소판에 이상이 생기면 적혈구의 이상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므로 임상적으로는 더 자주 문제가 된다.

적혈구에 나타나는 문제는 대부분 적혈구 숫자가 감소하는 것이다. 빈혈이라 하면 피의 양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피 속에 있는 적혈구 수가 적어지는 게 빈혈이다. 빈혈이 있으면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지고, 신체 말단 부위에 피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특별한 자각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적혈구가 적으면 산소운반능력이 떨어지지만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심장이 더 빨리 뛰어 혈류량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혈 환자는 달리기나 등산을 할 때 숨이 가쁘면서 구역질이 나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스스로 ’난 원래 달리기나 등산을 잘 못한다‘고 여기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흔히 빈혈의 증상으로 숨 가쁨, 현기증, 피로감, 피부창백, 뼈나 관절 주변의 통증 등을 드는데,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날 때는 빈혈이 상당히 심한 경우이다. 만약 빈혈 정도가 몹시 심하다면 심장에 만성적으로 부하가 걸리므로 만성 심부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빈혈은 빈혈을 일으킨 원인에 따라 구분하는데, 주변에서 흔히 경험하는 대부분의 빈혈은 지속적인 실혈(失血)로 인한 철 결핍성 빈혈이다. 월경 량이 많은 여성, 위나 십이지장 궤양 환자, 치질 환자, 일부 암 환자 등은 몸에서 지속적으로 출혈이 생겨 피가 빠져 나가며, 이 때문에 헤모글로빈의 원료가 되는 철 성분이 부족해져 빈혈이 초래된다. 여성의 20~30%가 빈혈인 이유도 생리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때는 더 이상 실혈이 없도록 원인 질환부터 치료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궤양이나 치질로 인한 실혈 때문에 빈혈이 생겼다면 위궤양이나 치질을 치료함으로써 빈혈도 낫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출혈의 원인이 과도한 생리 때문인 경우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철분제를 복용해야 하며, 철분제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음식을 통해서도 철 성분을 충분히 공급해 줘야 한다. 철이 많은 음식에는 선지, 육류, 생선, 시금치, 콩, 해조류, 우유 등이 있다.

한편 성장기 청소년이나 임신부 등은 출혈이 없어도 철 결핍성 빈혈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체중이 급격히 늘면서 혈액량도 따라서 증가하기 때문이다. 즉 혈액량이 증가할 때는 혈액의 원료가 되는 철 성분도 음식 등을 통해 그만큼 많이 공급해 줘야 하는데, 필요한 만큼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빈혈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기 청소년이나 임신부는 철 성분이 많은 음식을 특히 많이 먹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철분제를 복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출혈도 없고, 체중증가도 없는 상태서 빈혈이 나타난다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조혈모세포이식 등을 통해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는데, 이 같은 빈혈로는 첫째가 겸상적혈구빈혈이나 지중해성 빈혈 등과 같은 유전성 빈혈, 둘째가 造血(조혈)기능을 담당하는 골수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재생불량성빈혈, 셋째가 적혈구가 제 수명을 살지 못하고 일찍 파괴되는 용혈성 빈혈 또는 골수이형성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