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 14일(2019년 7.21~8.4) – (1)

황만섭

그리스사람들은 철학을 발명함으로써 인류의 새 시대를 열었다. 그들이 만들어 낸 뮤즈 신은 세계인들의 음악(뮤직)이 되었으며, 그리스인들은 일류최초로 연극을 만들어 즐겼으며, 또 민주주의를 발명한 것도 그들이다.

호메르스가 쓴 대서사시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중의 이야기로 우린 트로이목마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일상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판도라상자이야기도 그리스에서 유래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리스의 아테네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정도 걸리고, 시차는 독일보다 1시간이 빠르다. 14시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아테네네 공항의 사정이 복잡하다는 연락으로 50분 뒤에야 출발했고, 예정보다 50분 늦게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우린 기다리고 있던 차량을 이용해 곧바로 공항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지중해변에 자리잡고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10일 동안 머물기로 한 바닷가에 자리잡은 호텔은 우리를 반기는 귀뚜라미들의 환영연주가 요란했으며, 지중해변의 무더위가 반갑게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은 제 마음대로 뻗어나간 땅덩어리에, 지 맘대로 들쑥날쑥 한 지중해변의 험악한 지형들을 이용해 작은 마을처럼 꾸며져 있었다.

비록 황량한 불모지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만들어져 이어서인지 예술적이라 할 만큼 좋았다, 멀리는 높은 산과 암벽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얕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얕은 산 너머로는 아테네 시가지가 멀리 보였고, 바닷가에는 바위와 험한 돌산도 있었지만, 대개는 높은 산봉우리보다는 훨씬 나무들이 크고 울창했지만, 강우량이 적고 돌산으로 덥힌 힘든 지형에서 어렵게 자라서인지 꾸불꾸불 몸을 비틀고 있는 걸 보면 살아왔던 세월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공기가 좋은 곳에 오니 안경 없이도 책을 읽고 쓸 수 있을 만큼 편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스에는 신들의 이야기로 넘친다. 크레타 왕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하나 만들라”고 명했다. “사람이 들어갈 수는 있어도 절대로 나올 수 없도록 아주 복잡하게 만들면 그걸 감옥으로 사용하여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아비가 낳은 미노타우르스는 머리가 소 대가리였고 몸뚱이는 사람이었는데, 여물을 먹지 않고 사람만 잡아먹는 괴물이어서 당시에 아주 골칫덩어리이었다.

크레타 왕국에서는 약소국이었던 아테나이 왕을 협박해 매년 12명의 선남선녀를 데려다가 미노타우르스의 먹이 감으로 넣어주었다. 어느 해 아테나이의 영웅이었던 테세우스 왕자는 크레타 왕의 협박에 화가 나 자신이 직접 제물이 되어 크레타에 섬에 들어가 미노타우르스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테세우스 왕자는 한때 섬을 들어올리기도 했던 장사였다.

크레타 섬에 잡혀온 테세우스 왕자를 본 아리아드네 공주는 첫눈에 반해 테세우스를 살리기 위해 그가 미궁에 들어가기 직전에 실타래 하나를 주면서, 그걸 풀어 표시로 삼았다가 나올 때 그 실을 따라 나오라고 귀띔했다. 왕자는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르스를 때려죽인 다음, 실을 따라 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입구에서 기다리던 공주와 다시 만났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기는 오늘날까지 우리의 일상에 자주 적용된다. 즉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때엔 곧잘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고 하는 데 그때 나오는 미궁은 그리스신화에서 따온 말이다.

다음은 ‘외짝 신 사나이’ 이아손의 이야기다. 이아손의 숙부였던 펠리아스는 늙은 형을 몰아내고 어린 조카(이아손)를 무시하고 이올코스의 왕이 되었다. 펠리아스 왕의 음흉한 음모에 위험을 느낀 친척들은 5살이던 이아손을 몰래 펠리온 산으로 피신시켰다.

펠리온 산은 옛날에 현인 켄타우로스(半人半馬)가 살면서 헤라클레스, 아스클레피오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를 가르쳤던 곳이다. 이아손은 거기서 현인 게이론에게서 활 쏘는 법, 칼 쓰는 법, 악기 다루는 법, 뱃길을 아는 법과 배를 짓는 법을 익혔고, 15년 만에 세상으로 나왔다.

이아손은 물살이 센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강가에는 몸이 불편한 한 할머니가 앉아 누군가가 강을 건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착한 이아손은 이 할머니를 업고 강물을 건넜다. 할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위덩이처럼 무거워졌고, 강물은 바다같이 넓어졌으며, 등에 업힌 할머니는 험한 말로 이아손을 끊임없이 약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아손의 인내는 끝까지 착하고 얌전했다.

할머니가 무거워서 비틀거리다가 그만 미끄러운 돌을 잘못 디뎌 가죽신 한 짝이 벗겨져 떠내려 갔지만, 이아손은 혹시 등에 업힌 할머니가 물에 빠지지 않을까 더욱더 조심했다. 등에 업힌 할머니는 계속해서 험한 말로 이아손을 화나게 하고 있었다. “이놈아 어딜 가느냐?” “이올코스의 펠리아스 왕을 찾아갑니다” “이놈아!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잃어버린 왕위를 찾겠느냐?” “제가 왕위를 찾으려 간다는 말을 아직 안 했는데요” “펠리아 왕은 내 신전을 더럽힌 괘씸한 놈이다”호통을 치면서 할머니는 중요한 비밀들을 이아손에게 하나 둘씩 알려주고 있었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이 자못 흥미롭고 진지하다. 그리곤 등에 업혀있었던 할머니는 어느 순간에 어디론가 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아손은 자신의 덥수룩한 머리칼을 손질하기 위해 이발소를 찾았다. 이발소 주인은 가죽신을 한 짝만 신고 있는 이아손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가죽신 한 짝은 어떻게 했습니까?”“아나우로스 강을 건너다가 잃어버렸습니다” “요새 ‘모노산달로스(외짝 신 사나이)가 내려 와 왕이 된다네’라는 노래가 온 나라에 유행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모노’는 하나이고 산달로스는 가죽신을 말한다.

이아손은 “그럼 신전 이야기를 아십니까?” 물었고, 이발사는 “펠리아스 왕이 수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면서 자녀를 낳고 난잡한 생활을 하자, “자제하라”고 헤라여신이 타일렀지만, 왕은 사람을 시켜 헤라신전의 기둥뿌리를 빼버렸습니다. 그 신전은 결혼을 관장하는 헤라여신의 신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헤라는 신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우스 신의 아내이자 올림포스의 안주인이었다. 헤라는 신성한 결혼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헤라여신의 대리석상은 그 아름다움이 지금도 유명하다. 결과적으로 이아손이 업고 강을 건네준 할머니는 헤라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리스신화는 엉터리 같기도 하고 허황하기도 하지만, 얽키고 설킨 이야기가 종횡으로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면서 흥미롭게 전개되는 장점이 있다. 그리스신화는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전해지면서 이어진다. 도대체 그리스신화의 이야기는 그 끝이 어디쯤일지 예측하는 사람도 없다.

참조 : 그리스 로마 신화(이윤기), 그리스(손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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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8일, 1160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