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국인을 말하다(2)

21세기 한민족문화포럼 대표 최 완

선비란 무엇인가

선비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되는 예법과 도덕의 사유(思惟)체계인 유학(儒學)지식 및 사상으로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이해된다.

유학/유교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공자(BC 552년 출생)의 어록과 사상을 이어, 맹자(BC 372년 출생)등을 중심으로 정립된 사상이며 이념이다. 유학/유교의 기본사상으로, 공자(孔子)가 중요시 한 인(仁)은, 남을 불쌍히(사랑) 여기며,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유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인(仁)을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욕망을 누르며 예의범절을 지킬 것을 제시 하는, 인(仁)과 예(禮))를 인격의 기본으로 삼았다.

약 200년 후기인 맹자는, 여기에 의(義-)를 더하여 인격의 기본정신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남을 불쌍히(사랑) 여기며,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 하고 미워하며, 예의범절을 지키며,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네 가지를 인간덕목으로 확립하였다.

당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관직에 목적을 두지 않고 지식과 도(道)를 실행하는 수단으로 유교이념(儒敎理念)을 실현하는 인격을 갖춘 사람을 사(士) 라 하였다. 사(士)는 우리 말로 선비다.

공자는 도(道)에 뜻을 두어 허름한 옷이나 빈약한 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인격을 선비의 모습으로 강조하였다. 또한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하여 어진 덕을 해치지 않고 목숨을 버려서라도 어진 덕을 이룬다.”고 하였다. 맹자는 “일정한 생업이 없어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은 선비만이 할 수 있다.”고 하여 지조(志操) 즉,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굳게 지키는 것을 선비의 조건으로 지적하였다.

이처럼 선비는 어진 마음과 예와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 한다. 인간으로서 예를 지키며, 떳떳한 도리인 의리를 지키고 신념에 흔들림 없이 지조를 지키느냐 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인성론(人性論)을 발전시킨 것도 인간도리를 이르는 맥락으로 이해 된다.

선비는 풍류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선비가 즐기는 풍류는 인문예술(人文藝術)이다. 인간의 내면세계와 외부세계가 소통하고 표현하는 예술을 말한다. 덕이 흐르는 예술, 철학이 있는 예술, 하늘과 땅과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예술로서, 선비의 격조 높은 인격이 스며있는 멋이다.

16세기부터 조선의 시대정신으로 등장하는 선비정신은, 임진왜란과 호란(胡亂)을 거치며, 17세기 이후에는 조선사회의 문화를 지탱하는 비전과 리더십으로 자리잡는다. 선비정신은, 삶의 방향을 규정하고 조선왕조를 지탱하는 힘과 사상역할을 하며 500년의 조선역사를 이루어갔다

조선 건국과 통치철학

한국에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중국의 유교문화가 들어왔으며, 13세기말 고려 충렬왕대에는 안향(安珦)이 주희(주자(朱子, 1130-1200)의 신유학(新儒學 –주자성리학)을 도입하였다. , .

이어서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되면서, 정도전의 주도하에 법치 보다는 도덕규범과 교화를 통해덕치(德治)를 하는 왕도정치로서 성리학(性理學)을 통치명분과 이념으로 삼았다.

덕치는, 인간의 도덕적인 자율성에 절대성을 둔 통치철학이며, 명분과 의리로서 국민을 설득하고 포용하려는, 전 국민 인간화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조선왕조가 설정한 이상형 인간은 사회지도 층인 이상형 선비에 기준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일반대중에게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상형 선비는, 문(文-문학), 사(史-역사), 철(哲-철학)을 전공한 것을 전제로 한 학문과 시(詩), 서(書), 화(畵)를 교양으로 체질화 된 자, 즉 이성과 감성이 균형 있게 조화 된 인격체를 말한다.

덕치의 소명을 받은 왕에게는 더욱 강도 높은 인간화 작업이 요구 되었다. 그러므로 왕세자 시절부터 신하로부터 필수적으로 ‘제왕 학’ 교육을 받아야 했다. 만일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군주라면, 축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조선왕조에서는 이와 같이 엄격한 왕도교육을 통해서 학문과 덕치의 자질을 갖춘 이상적인 선비군주들이 많이 배출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세종, 영조, 정조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성리학 정립

이전 유학사상은 인의예지(仁義禮智)등 윤리와 도덕측면에 비중을 두었다면 신유학의 성리학은, 우주세계의 근원과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둔 학문으로서, 우주만물과 인간은 어떤 관계인가? 인간은 왜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라고 하는 좀더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이기론(理氣論)이 중심 사유이다.

16세기 조선에서 이황/퇴계(1501-1571)은, 이기론(理氣論)의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리론(主理論)을 설정하였다.

사단(四端)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仁)에서 우러나온 측은지심(惻隱之心-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의(義)에서 우러나온 수오지심(羞惡之心-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예(禮)에서 우러나온 사양지심(辭讓之心-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 지(智)에서 우러나온 시비지심(是非之心-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으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규명하듯, 원래 인간의 본성을 선(善)으로 귀결하고, 칠정(七情)은, 희(喜-기쁨), 노(怒-노여움), 애(哀-슬픔), 구(懼-두려움), 애(愛-사랑), 오(惡-싫어함), 욕(欲-바람)등, 감성이나 현상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선할 수 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고 귀결했다.

하지만 본성인 사단의 이(理)가 사람과 모든 사물의 현상인 기(氣)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사단은, 우주 보편적 원리인 형이상(形而上)의 이(理 -이치)를 말하는 것이며, 칠정은, 사람과 모든 사물의 현상인 형이하(形而下)의 기(氣-현상)로서, ‘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므로 ‘이’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이성(理性)을 강조하며, ‘이’의 도덕적인 원리인 사회윤리가 해결되면, ‘기’의 경험적이고 물질적인 현실문제는 자연적으로 해결된다고 보는 주이론(主理論)을 펼쳤다. 예를 들면, 백성을 성리학적인 도덕윤리로 교화시키면 가난하더라도 도적질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이이/율곡(1536-1584)는 이(理)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물질적이고 경험적인 기(氣)의 작용에 따라 착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고 하는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하며 반론을 제기했다. 본성(本性)인 ‘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기’가 인간에게 발현 하는 주체가 되므로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고, 현실작용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조선은, 이러한 논쟁과정을 통해서 독자성을 띠는 조선성리학으로 발 돋음 하며 발전하였다.

당시 이황/퇴계는, 동양 제일의 성리학자로 추앙 받았으며, 이황의 주이론이 일본 근세유학의 원조인 후지하라 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한편 이이/율곡의 주기론은 조선의 개혁사상인 실학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후기에 들어서 변혁의 사회를 이끌었다.

17/18세기에 들어서는 주리론 과 주기론 지지자들이 각 학파를 형성하며, 이황의 영남학파(嶺南學派)와 이이의 기호학파(畿湖學派)로 분류 되었다. 각 학파가 이데올로기로 구분된 정파(政派)로 파급되며 치열한 당파싸움의 단초가 되며 붕당정치의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선비 군주인 영조, 정조 등은 민본주의를 펼치며 인간학을 실천하는 성군(聖君)으로서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이 밖에도 왕이 독단하는 정치가 아니라, 성리학을 바탕에 둔 통치철학을 적용하며 왕과 신하가 격 없이 소통하는 정치를 펼쳤던 군주들이 여러 명 있었다.

선비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

조선시대 선비는 성리학을 공부한 지식인의 대명사이며, 배운 것은 실천해야 한다고 하는 학행일치(學行一致)라고 하는 인간형을 지향했다.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는 사회에 진출하는 두 가지 큰 길이 있다.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는 길과 평생을 초야에서 공부만 하며 학자의 길을 택하는 산림(山林) 또는 산림처사의 길이다. 산림은 초야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역할로서 인재양성에 전념한다.

그러나 이들은 학식이 높은 층으로서, 왕의 부름에 따라 중요한 위치의 조정관리로 특채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림(士林)이라고 하는 선비집단의 활동을 통하여 왕의 정치에 의견을 제시하는 등, 성리학의 가치를 사회에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사회 지도층을 형성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를 양성하는 국립교육기관으로서, 중앙에는 성균관이 있으며, 지방에는 향교가 있다. 16세기부터는 초야에서 학문을 닦고 있는 산림(山林) 또는 조정에서 은퇴하여 귀향한 관료출신 학자나, 지방에 근거를 둔 학자들인 사림(士林) 등이 후학들을 양성하는 사립교육기관으로, 서원과 서당이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여기에서 양성된 유생들이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합격되면 관리로 등용된다.

사림집단은, 16세기 성종대 들어서는 정치계에 진출하며 강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하며 붕당정치를 하게 된다. 선비의 위상은, 관료의 단계를 거치며 사대부(士大夫)가 되는 것이며, 관료로서 최종목표로 영의정(국무총리)이 되는 것이다.

선비정신의 현대적 개념

인류의 삶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그 문제점들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 해답은 대부분 지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시대적 삶의 환경차이는 있어도 참다운 인간성(人間性)에 대한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선미(眞善美)라든가 부모에 대한 효도, 나라를 사랑하는 국가관, 사람 사이의 신의, 사람이 먼저인 정치 등 인류보편적인 진리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조선선비가 지향하는 수련(修練)의 최종목표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 즉 이기심과 욕망을 이겨내고 예(禮)를 지키며 모든 사람이 공존하며 공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극대화시킬 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의 삶을 파괴하게 된다. 자기 욕망을 물리치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이야말로 상호 존중하는 평화사상으로서의 선비정신이다.

조선은, 사람과 자연이 하나의 질서로 조화되며, 나와 남이 조화되고 사람과 하늘이 조화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꿈꾸는 선비정신의 나라였다. 당시 주변 강대국들은 조선을 수시로 침범은 했으나 침탈은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禮) 로서 지혜롭게 대처했던 조선선비들을 통한 정신문화의 힘이었다. 정신문화의 힘은, 상황을 극복하는 지혜와 강한 정신력이 내면에서 표출되며, 물리적인 힘을 능히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문명을 리드하는 <코리안 드림>

무차별하게 전염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인류는 공포에 떨고 있으며, 이를 물리치는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러한 재앙이 지속될 것인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이 없다. 대책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 온 방법이 거의 멈춘 상태다.

인간 삶의 새로운 대책을 궁리하며 삶의 가치와 방법을 바꾸어가려고 머리들을 싸매고 있다. 이른바 새로운 문명전환의 신호탄인 셈이다. 물질 중심에서 사람을 우선하는 의식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다. 사람중심 문명은, 사람을 존중 하는, 사람다운 삶을 중요시 하는 정신문화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칠 때, 한민족의 홍익인간 즉, 널리 세상(사람)을 이롭게 하는 정신, 서로가 다른 사람에게 이롭게 하는 조화의 가치실현이 요구된다. 이에 따르는 선비정신의 덕목인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하며, 서로가 올바른 것을 위하여 도덕을 지키며, 서로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여 예의를 지키며, 모든 일에 지혜롭게 행하는 보편적인 윤리정신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보편 타당한 정신을 살려,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paradigm)으로 <코리안 드림>을 만들어 가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다.

참고자료

  • 한국철학의 맥, 한자경 교수
  • 선비란 무엇인가? 정옥자 교수
  • 한국민족문화 대 백과사전

*21세기 한민족문화포럼, choiwan7@naver.com


특정 민족문화의 정체성은, 고유성을 가진 대중성, 역사성에서 그 맥을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는 한민족의 정신문화는, 무교, 유교, 불교, 민족종교 등 다양한 종교전통에서 그 맥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오랜 역사와 함께 다양한 종교 등에서 영향을 받은 한국인의 삶의 정신과 의식이 현대사회에서도 한국인의 내면세계에 변함없이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한편, 짧은 기간에 전래되며 급속도로 성장한 기독교정신과 생활방식이 전통의식과 충돌하며 많은 변화를 가져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오랜 전통을 가지며 의식화 되어있는 유교사상과 불교사상은, 오랜 역사와 함께 한국인을 인간화 하는데 깊숙이 영향을 미쳤다.
물론 유교와 불교는 외래사상이다. 하지만 불교사상을 가미한 주자의 신유학(新儒學)인 성리학(性理學)을, 독자성을 띤 조선의 성리학으로 발전시키며 한민족의 인간화 작업에 중심이 되었던 선비정신이, 홍익인간 정신과 맥을 같이하며 한국인의 정신문화의 새로운 뿌리를 형성 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한국인의 인문사상인 성리학에 기반한 선비정신의 내면을 짚어보며, 선비의 인간화 작업의 가치인, 보편적인 인간 윤리와 도덕정신을 인류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코리안 드림>을 만들어 가야 하는 시대적 요청을 공유하고 싶다.  -필자 주

2020년 7월 10일, 1178호 14,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