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맹코(Flamenco), 스페인 마이오카(Mallorca)

작곡가 쇼팽 연인이며 저널리스트 게오르게 산드(George Sand) 소설, “마이오카의 겨울(Ein Winter auf Mallorca)”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당시 오지 같은 섬이었던 마이오카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정열적인 플라멩코(Flamenco) 이야기

현대 훌라맹코

강렬한 카리스마로 정열적인 빨간 드레스를 입은 스페인 여자댄서가 흐느끼는 슬픔과 고뇌를 표현하는 춤을 춘다. 기타의 선율로 로맨틱하고 감미로움이 흐르더니 템포가 빨라지면서 가수도 고독과 적막과 외로움이 깃든 멜랑콜리(melancholisch)로 부르다가 점차 거칠게 분노를 나타내는 호소력 있는 노래를 부른다. 둘러선 관중들도 박수를 치면서 모두 함께 긴장감과 박진감으로 오랫동안 고조되다가 드디어 환희, 기쁨으로 춤은 끝난다. 감정이 고조되면 밤부터 새벽까지, 24시간 이상 긴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처음 플라멩코는 일본의 사꾸라(벗꽃)노래나 한국의 아리랑처럼 민중의 정서를 나타내는 민요로 남스페인의 민속예술이다.

플라멩코는 ‘Gitanos’로 오랫동안 방랑생활을 하다가 남스페인으로 이주해서 사는 집시들의 부른 노래이다. 1425년 스페인으로 이주해 온 집시들은 스페인들에게 100년 이상 박해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과 한을 노래로 표현했다.

1783년 Karl 3세는 그들이 생계를 위한 말 장사, 대장장이 직업을 금지 시켰다. 집시들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서 스페인 왕을 위한 스페인 군대들과 함께 플라맨(Flamen)민족들과 싸웠다. 그래서 그들이 부르는 노래 명을 플라멩코(Flamenco)라고 불렀다. 그들은 사적인 행사나 생일, 결혼 등 파티에서 가족, 친지, 친구들과 함께 모여 플라멩코를 즐겼다.

스페인에서 플라멩코는 반항적인 노래로 오래도록 금지 시켰다. 1850-1936년 Cantante(플라멩코)카페가 시작되면서 전통과 스페인 정서가 가미된 정열과 뜨거운 영혼의 울림인 플라멩코 무대(Flamenco-Lokale)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댄서들은 정열적으로 춤을 춘다. 당시 카페무대에서는 댄스학교에서 온 전문인들이 공연을 했다. 19세기 유명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술가 알렉산더 듀마(Alexandre Dumas)저서, “유럽 여행기행문”에서 Cantante카페가 소개되면서 훌라맹코가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1920년 작곡가 Manuel de Falla, 작가 Frederico, 예술가 Garcia Lorca 로 구성된 Tournee-Show 콘서트 공연으로 서민적인 플라멩코를 클래식 현대적 플라멩코로 인정받게 되었다.

플라멩코 거장 기타리스트 파코 데루씨아(Paco de Lucia)

플라멩코 거장 기타리스트 파코 데루씨아

데루씨아(Lucia)는 세계 최고의 플라멩코 기타연주자다. 그는 1947년 남부 스페인 Gibralter Algeciras 도시에서 태어났다. 음악가정에서 태어난 데루씨아는 아버지가 매일아침 마다 일찍 일어나 플라멩코 기타를 치는 멜로디를 들으면서 자랐다. 아버지는 각종 축제나 가정행사인 생일, 결혼 등 파티에서 플라멩코 기타를 치고 받는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아버지가 일하는 날은 오랜 시간을 플라멩코 반주기타를 치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도 새벽까지 기타를 치면서 가족들과 함께 즐겼다. 데루씨아는 누나에게서 플라멩코 노래를 배웠고 기타는 형에게서 혼자 연습할 수 있을 때까지 배웠다. 그가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9살이 되자 아버지는 경제적인 이유로 학교를 중단시켰다.

데루씨아는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매일같이 10시간 이상 기타를 연습했다. 누군가 쓴 글에서 성공의 비결은 재능의 150%노력이라고 읽은 글이 생각난다. 그토록 매일같이 오랜 시간을 연습하던 그는 어린 14세 나이에 형과 함께 처음으로 플라멩코 음반을 내놓았다. 당시 전통적인 훌라맹코만 알려졌을 때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난 그는 댄스그룹 Jose Greco와 함께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복합적인 음악을 시도했다. 1964년 솔로 음반을 내놓았다.

1980년 새로운 구상으로 형과 함께 새로운 실험공연을 했다. 탱고를 상징하는 악기 반도네온, 플룻트(Querfloete), 저음악기(Bass), 재즈, 뉴에이지등 서양음악과의 다채로운 악기를 시도했다. 1981년 San Francisco에서 기타리스트 John McLaughlin과 Aldi Meolo 재즈 기타리스트가 함께 연주하는 “Friday Night” 콘서트에서 관객들을 열광시켰고 대단한 평가를 받았다.

그는 전통적인 고전 플라멩코, 현대 클래식, 재즈음악인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독특한 복합적인 실험을 거듭했다. 데루씨아의 특별한 음악은 스페인에서만 아니라 세계곳곳 에서 각종 페스티벌과 클럽들에서 순회 공연했다. 그는 수많은 음악상을 수상했고 50이상의 CD를 제작했다. 2004년 데루씨아는 스페인에서 최고상인 노벨음악상과 같은 Prinz-von-Asturien상을 수상했다.

데루씨아는 스페인의 전통적인 민요 플라멩코를 그대로 연주하는 것을 싫어했다. “전통 그대로 연주하는 것은 마치 울안에 갇힌 예술처럼 발전성이 없으며 예술은 계속 창조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필자는 데루찌아가 말하는 예술철학이 마음에 와 닿았다.

환상적인 스페인 마이오카(Mallorca)

집시들의 전통적인 플라멩코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스페인 마이오카는 지중해 해안, 비치 빛 환상적인 바닷가로 Balearen에 있는 5섬(Mallorca, Ibiza, Menorca등)중 제일 큰 섬으로 야자수가 빼곡히 늘어 서 있다. 궁전 같은 호화로운 호텔들이 즐비하다. 마이오카는 여행을 좋아하는 독일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다.

마이오카 수도 팔마(Palma)는 13-14세기 상업 항구도시로 사람들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구시가 중심가 Placa Mayor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이 당시 부유한 전성기를 볼 수 있다. 지금은 건축물들이 호텔로 사용되거나 시민들이 살고 있다.

당시 부유한 상인들이 만남의 장소였던 화려한 건축물들은 문화공간, 전시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구시가는 마치 대형박물관처럼 크고 작은 상점들까지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팔마시가에서 조금 떨어진 해변에 머물면서 휴가를 즐기고 쇼핑을 하거나 시장을 본다. 상점마다 진열된 이곳 특산품인 진공된 유리 현대예술품들이 혼합된 아름다운 색채를 발하면서 빛을 발한다. 그 황홀한 신비스러움에 방문객들이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 팔마는 현대적이며 매력적인 역사적인 수도이다.

대형 ‘파일리아’

신선한 해산물을 공급하는 오래된 Oilvar 어시장에서 싱싱하고 먹음직스런 해물들을 살 수 있다. 미식가들이 모이는 이곳은 상점마다 과일, 야채, 고기, 소시지, 치즈, 생선 등 다양하다. 유명한 요리는 여러 가지 해물과 야채, 라이스가 함께 들어있는 ‘파일리아(Paella)’ 요리이다. 우리들 부부는 이곳 매장에서 파일리아를 먹었는데 먹는 순간 바다냄새의 향긋한 부드러운 해물 맛이 너무 맛있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매장에서 먹기 보다는 포장해서 사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독자들이 마이오카를 방문하게 되면 ‘파일리아’를 꼭 시식해 보시도록 권하고 싶다.

팔마시가에서 남동쪽으로 10km떨어진 아름다운 해변가 S’ Arenal 12는 독일인들의 아지트다. 이곳은 언제나 독일인들로 북적거린다. 디스코, 바, 레스토랑 카페 등, 가는 곳마다. 온통 독일인들이다. 레스토랑에는 맥주, 그릴소시지, 싸우어크라우트(양배추절임) 등 독일 토속 음식들이 나온다. “이곳이 독일인가?” 착각될 정도다.

우리 부부는 야자수가 길게 늘어선 해변을 거닐면서 이곳에서 만난 독일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해변에서 만난 독일인들은 항상 퍼팩트, 완전해서 기계처럼 보이는 그들 이미지가 개방되고 자유스러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독일인들은 여행을 대단히 좋아한다. 그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여행이 주 테마다. 독일인들 중에는 집에 세계지도를 걸어놓고 여행이 끝날 때마다 핀을 꽂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목적은 세계여행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수입은 집을 장만하기보다 대부분 여행비로 지출된다. 그들은 여행을 다니면서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이해한다.

해변 남서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Magaluf 13은 영국인들의 아지트다. 그곳에 가면 가는 곳마다 영국인들이다. 디스코, 호텔, 바, 카페, 상점들이 줄줄이다. Cala Figuera항구에서 고깃배들을 볼 수있고 미로박물관(Cala Major)에서 생전의 미로가 그린 100점 이상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한적한 바닷가의 산마을(Bergdorf) Deja는 예술가들의 마을(Kuenstlerkolonie)이다. 산마을 정상 곳곳에 아담하게 지은 집들이 다정하게 보인다. 박물관, 갤러리, 레스토랑과 호텔들이 예술적이고 고급스럽다.

대사원(Kathedrale la Seu)


대사원(Kathedrale la Seu)

마이오카의 자랑거리이며 심볼인 대사원은 오랜 세월을 거쳐 지은 고딕 돔 양식의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다. 팔마항구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다. 이곳은 원래 아랍인들의 회교교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230년 스페인 왕이 그들을 추방하고 대사원을 지었다. 13세기 시작한 건축물이 20세기 초에 완성했다. 빨리빨리 일을 끝내는 우리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오랜 세월이다. 길

이가 120m이며 높이 40m인 대형건물이다. 특별한 것은 정문에 있는 대형 24면체의 로세텐(Rosetten-로즈꼴로 깍은 24면체의 보석)창문이다. 12.5m의 대형 로즈문양들이 100 m2 창문을 가득 메웠다. 저녁 해질무렵 해변가에서 석양 빛에 반사되어 마이오카를 지키는 대사원 로세텐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한 오색찬란한 색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발데모사(Valldemossa)

쇼팽의 연인 게으로게 산드
발데모사 수도원

작곡가 쇼팽이 연인인 저널리스트인 게오르게 산드(George Sand)와 1838년 3개월 동안 겨울을 마이오카의 북쪽 해변가 410m 높이 언덕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서 머물렀다. 1838년 늦가을 폐병으로 건강이 좋지 못한 쇼팽과 연인인 산드(Sand)는 전남편에게서 난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맑은 공기와 햇빛과 모래사장이 있는 발데모사로 왔다. 그들은 겨울 3개월 동안 카르토우센스 교단인 조그만 정원이 있는 오래된 수도원에서 머물렀다. 가정집 같은 아담한 수도원에서 쇼팽과 산드는 각각 다른 방에서 작업을 했다. 그들이 보냈던 마이오카의 겨울은 연일 비가 왔고 춥고 햇빛을 거의 보지 못했다. 쇼팽은 심한 기침으로 건강은 악화되었고 팔마시에서 3인의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지적이고 섬세하고 다정한 산드는 그를 극진히 치료했다.

쇼팽은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산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남자처럼 바지를 즐겨 입고 대담한 그녀에게 호감이 별로 가지 않았으나 깊이 사귈수록 내면의 깊숙한 아름다움에 사랑하게 되었다” 고 한다.

이곳에서 쇼팽은 많은 곡을 작곡했다. 저널리스트인 게오르게 산드( George Sand)는 “마이오카의 겨울(Ein Winter auf Mallorca)”소설을 썼다. 그녀가 쓴 소설에서 “마이오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라고 저술했다.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녀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당시 마이오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같은 섬이었는데 천명이상이나 방문객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마이오카는 계속 방문객들이 몰려오면서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한권의 소설이 ‘마이오카’의 놀라운 홍보역할을 한 것이다.

2020년 7월 10일, 1178호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