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해로(HeRo) 특별 연재 – 2020 자원봉사자 상

2015년에 시작된 HeRo(해로)는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코멘트에서 출발했다. 해답은 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활동의 필요성으로 귀결되었다. <해로>의 입술로 연재를 시작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독 동포들의 목소리를 그릇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고단한 삶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의 입구가 되길 바란다(필자 주)

20/ 2020 자원봉사자 상

방문을 슬며시 연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분명 얼굴은 보이는데,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다시 만지작거리니 목소리가 들리고 그제서야 세상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반가움에 손을 내밀지만 마치 영혼의 것처럼 맞잡을 수는 없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화면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만난다.

돼지해에 복을 가져올 줄 알았던 2020년은 바이러스의 무덤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분명 연초에는 덕담을 나눴을 터였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1년 내내 인질처럼 우리를 묶어놓았다. 그럼에도 할 일은 해야 했다. 사단법인 <해로>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어르신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해로에서 교육받은 봉사자들은 도움활동을 위해 현장을 나섰다. 이민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남과 함께 하는 연대에서부터 시작됨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어김없이 연말을 향해 달렸다.

해로에서는 이러한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작으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2020 해로 자원봉사자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물론 록다운의 강화로 온라인 속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2020년 12월 30일 오후 6시. Zoom 공간은 작았지만 무한의 에너지로 충만했다. 해로에서 돕고 있는 어르신 한 분도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지난해 해로의 그릇 속에서 함께 했던 자원봉사자들 중 총 5명을 선정했다. 담당자들 포함, 총 8명이 모인 자리였다. 수상자들에게 보이는 꽃 대신 마음의 꽃이 전달되었다.

오수빈, 황지영, 정선희, 임지영, 성현정. 이들 모두 해로에서 꽃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오수빈 씨는 유학생으로 코로나 기간에도 자신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어르신에게 장보기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힘든 시기에도 매주 꾸준히 방문해 어르신의 불편을 해소해준 이였다.

성현정 씨는 유학생 출신으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인이다. 그는 주로 독일인 환우들을 방문하고 있다. 어려운 이들의 필요에 맞는 체감적인 봉사활동으로 반응도 좋다. 현재 총 3명의 환우를 방문하는 그는, 여든이 넘은 여성 환우에게 때때로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등 소소한 기쁨을 선사한다. 호흡이 힘든 COPD(만성폐쇄성 폐질환) 환우를 위해 집안의 불편한 가재도구들을 고쳐주기도 한다.

황지영 씨와 정선희 씨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어려운 어르신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집안 일을 돕고 있다. 우울증과 외로움을 느낀 한 어르신은 자원봉사자의 방문으로 다시 건강과 활력을 되찾고 있다. 임지영 씨는 일반자원봉사자 교육을 수료하고 현재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까지 자발적으로 받는 등 봉사현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환우의 시선에 자신을 고정한다. ‘내 자신 스스로도 이들처럼 약해질 수 있는데 아픈 이들의 고통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에 봉사를 시작했단다. 그는 봉사를 한다는 생각보다 함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한다.

이날 모인 이들은 간단한 수여식을 가진 후 축하음악으로 가스펠 ‘소원’을 함께 들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내포된 가사였다.

“삶의 작은 일에도 그 맘을 알기 원하네

그 길 그 좁은 길로 가길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면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길 원하네”

온라인 행사의 말미에는 봉사자들은 돌아가며 한 마디씩 건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화면을 메웠다.

<성현정> “자원봉사자분들과 어르신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황지영> “봉사를 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 만남이 소중하고 따뜻합니다”

<정선희> “이러한 상을 받는 것이 부끄럽고, 단지 어르신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에게도 큰 의미가 되고 있어요.”

<오수빈> “2021년도 우리 모두 잘 지내보아요.”

<임지영> “다들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요. 내년에 더 예쁘게 지내요. 감사합니다.”

자원봉사자 상의 부상은 해로에서 마련한 소액의 상품권과 동전지갑 그리고 마스크였다. 아름다운 봉사에 대한 대가는 어떤 현물로도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땅의 포상이나 선물보다 하늘의 상급이 있고, 무엇보다 이 땅에서 어려운 이들을 돕는 기쁨은 무엇에 견줄 수 없다. 작은 공간 <해로>는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펼친 그들은 진정한 영웅이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Alltagshilfe 자원봉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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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호 12면, 2021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