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독감이 피해 간 스위스 마을

임진(독립 저널리스트)

1918년에서 1920년까지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A형 인플루엔자, H1N1)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다. 그로 인해 세계 인구의 30 퍼센트 이상이 독감에 감염되었고, 약 5천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된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군대들의 수송과 막사의 비좁은 공간, 피난민의 이동 등이 전염병을 옮기는 데 한몫 했다.

발원지가 어디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베를린 출신의 역사가이자 샤리테 병원의 수석 전문의 빌프리트 비테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독감 증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주에서 학생들과 군인들 사이에서였다.

그렇다면 왜 “스페인 독감”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인가? 당시 빠른 속도로 확산하던 인플루엔자 범유행을 스페인 언론에서 가장 먼저 보도했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참전국들은 언론의 검열이 심했던 반면 스페인은 비 참전국으로 언론보도가 자유로웠다.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스페인 독감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없었던 시절의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일종의 민간요법으로 위스키나 매실 케이크 섭취 또는 고망간산으로 입안 헹구기, 독감에 걸린 사람과 거리 두기와 모임 피하기 등이 권장되었다.

스위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당시 4백만 명의 인구 가운데 7십4만4천 명이 감염자로 등록되었고 그중 약 2만5천 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스위스 서부에 있는 장트갈렌 주의 작은 마을 방스에서는 놀랍게도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른바 ‘약초 신부’로 불리던 요한 퀸츨레 신부가 제조한 독감차가 인플루엔자 범유행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낸 것이다.

퀸츨레(1857~1945) 신부는 대체의학과 본초학 분야에서 독일의 세바스티안 크나이프 신부에 못지않게 권위가 있는 인물이었다. 1911년 발간된 그의 저서 ≪약초와 잡초(Chrut und Uchrut)≫는 수십만 권이 판매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일반 가정에서는 민간요법 교본처럼 소장하기도 했다.

그는 사제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자연요법 치료사로도 활동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치료법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건강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방스에 약초 센터가 세워진 동기이기도 하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자 퀸츨레 신부는 독감차를 제조해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매일 한잔씩 마시도록 했다. 스페인 독감의 1차 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그는 이미 그 증상을 진단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금 회중시계를 활용한 ‘추(錘) 진단법’으로 증상을 진단하고 질환을 치유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보도에 따르면 방스의 주민들 가운데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고, 이 전설 같은 사실로 인해 퀸츨레 신부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실제로 퀸츨러 신부의 ‘독감차’ 덕분에 방스의 주민들이 스페인 독감으로부터 안전했는지 아니면 이 모두가 우연의 일치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약물에 관한 연구가 수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독감차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1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의 독감차 제조법은 전승되고 있다. 차에 들어있는 주요 성분들이 가진 효능에 대해서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증명된 것들이다. 퀸츨레 신부의 독감차에는 샐비어 프라텐시스 잎과 약쑥, 홀리(서양 참호랑가시나무잎)가 주성분으로 들어있고, 그 제조법에 대해서는 아펜첼러 치즈 제조법만큼이나 철저히 비밀로 지켜지고 있다.

홀리는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의 대플리니우스가 관절염 치료에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인기 있다. 잎에 들어있는 성분에는 류머티즘과 통풍, 관절염 및 카타르성 질환을 완화하고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예쁜 보라색의 꽃을 피우는 샐비어 프라텐시스가 인후통과 목 잠김 증상을 완화하고 소염 및 항균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세와 근세 시대에 흔히 사용되었던 약초인데 당시 사람들은 말린 잎을 분말 형태로 만들어 감기약으로 복용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의사이자, 식물학자, 의학 전문 저술가였던 피에트로 안드레아 그레고리오 마티올리는 그의 저서 ≪약초 책(1563)≫에서 샐비어 프라텐시스의 약효를 설명했다.>

향쑥이라고도 불리는 매우 쓴 맛의 약쑥에는 해열 효과가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약초가 섞여 있지만 정확한 제조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에 불과하다. 퀸츨레 신부를 기리고 그가 개발한 묘약들의 비법을 전승하고자 2005년에 설립된 ‘약초 신부 퀸츨레 협회’의 의장인 휘피 씨가 그중 한 명이다.

협회는 온라인샵을 통해 퀸츨레 독감차를 비롯해 55종의 허브차와 꿀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독감차의 판매량이 평소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고 협회 관계자는 설명한다. 스위스 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 ‘퀸츨레 독감차’ 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뮌스터의 한 70대 부부는 2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소아과 전문의였던 부인과 저널리스트인 남편은 자가격리에 들어가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특별한 치료법이나 약이 없으므로 부부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식염수를 이용한 구강 소독과 퀸츨레 독감차를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100여 년 전에 개발된 묘약이 효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찻잔에 담아…… 차의 효능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부부는 열흘 후 완치되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독감차를 제조, 판매하는 퀸츨레 협회에서 스위스 이외의 지역에는 배송을 하지 않으므로, 독감차를 구입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공동구매를 하고자 합니다.

구입을 희망하는 분들은 이메일(duden0329@naver.com) 또는 카카오톡(ID: ascha63)으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1311호 18면, 2023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