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항상 앞으로만 흐르는가?

손병원

40대에는 시속 40km, 70대에는 시속 70km 속도로 세월이 간다. 여행가서 보낸 1주일은 일상의 1주일보다 길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은 그때까지 보낸 시간이 길지 않아 한 해가 길다. 나이 들수록 기억거리가 많아 여러 궁리를 모았다 풀었다 하다 보니 정리가 안되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탓한다.

습관은 시간의 속도를 가늠한다. 계획한대로 살면 미래의 시간을 예측하기 싶다. 나이 든다는 것은 과거는 길어지고 미래는 짧아지니 시간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시간이 빨리 간다는 불안감이 가중된다.

노년기의 불안은 건강 돈 고독이다. 병은 천 가지이나 건강은 하나이다. 건강은 아주 값지나 잃기 쉽다. 돈만이 재산이 아니다. 건강, 의지, 지식, 재능도 재산이다. 비록 천국일지라도 나 혼자만 산다면 외로울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생각은 나이 들수록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느려져 현실에 상황에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텃밭을 일구는데 반나절 걸렸다면 늙어서는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 젊은이의 반나절은 나에겐 하루 길이이다. 젊을 때의 1년과 올해의 1년은 산 경험에서 시간의 속도를 달리한다. 시간이 다르다. 낯선 곳을 지나다 보면 생소한 풍경에 마음이 멈추고 시간이 멈춘다. 여행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면 시간을 붙잡아 둘 수 있어 그 만큼 시간을 길게 사용할 수 있다.

친구를 만나면 살아온 세월은 비슷한데 더 살아온 듯한 친구가 있다.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고 괴로우면 시간이 더디 가는 느낌이다. 화살이 멀리서 올 때에는 느리게 보이나 가까워지면 번개보다 더 빠른 느낌이다. 일이 닥칠 때 감정의 잣대가 먼저 앞서면 그르친 판단이 나온다. 집 타는 것을 보고 우물 파거나 망건 쓰자 파장 날 일 아니니 매사 불여튼튼이다.

그러기 위해 항상 마음공부를 하여 내공을 다져야 한다. 당연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큰 병이다. 늙음에 대해 더욱 그렇다. 잠자리는 길어지고 잠은 짧아지는 걸 어쩌지 못하는데 억지 부릴 일 있겠나?

익숙한 것에는 시간이 빨리 간다. 습관은 몸이 익힌 반사작용이다. 몸은 주인의 인식 행동에 미리 준비하여 자동으로 나온다. 식사 후 담배 피우듯이. 재미난 골에서 호랑이 나온다는 속담이 벼락같다. 즐기다 보니 밝히다 보니 병이 생긴다. 자기 습관에 의해서 병을 만들고 키운다. 좋든 나쁘든 습관이란 몸에 배여 고치기 힘들다. 인이 박힌 탓이다. 습관은 제 2의 천성이다.

나이 들면 새로운 것 보다 익숙한 게 더 편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경험하면 인체의 대사과정에 자극을 주어 생기를 돋게 하여 즐거운 시간에 마음의 여유스러움이 풍성해진다. 배운 걸 자주 잊어버린다 해도 무한 반복의 인내심과 겸허함을 키운다. 이는 가정교육의 일환이며 교육적 가치를 부여한다.

축구선수가 골 넣는 걸 몰라서 슈팅 연습을 해야 하나. 나는 과정을 중요시하며 우보천리(牛步千里)로 가기에 결과에 매 달리지 않는다. 우연이 자주 쌓이면 필연이라는 심정으로 내 하기에 따른 결과물이기에 설익은 열매를 따는 우를 범 할 게 아니다.

대체로 TV 연속극 시청은 시간 죽이는 짓이다. 재미로 보았지 남들과 대화거리도 아니고 어떤 지식 하나 보태 주는 게 없다. 누가 말했듯이 인생은 짧게 보면 비극이고 길게 보면 희극이다. 희극의 주인공이 되 봄 직 한 게 인생살이이다. 세월이 묻어나는 한 마디라도 할 줄 알아야 나잇값을 한다. 처음의 큰 웃음보다 마지막 미소가 더 크다.

등불이 되는 소리를 어디서 들어야 하나. 대 낮에 등불 들고 찾아야 하나. 나는 49 유로 티켓으로 테마 여행을 자주 떠난다. 비상용으로 건빵 두 봉지는 항시 휴대한다. 가끔씩 소나기를 투덜대며 피하면 황당 유머가 떠오른다. 하나님에 제일 싫어하는 비는 사이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비는 낭비라는. 운동화속에 들어간 흙 먼지를 털 때면 퀴즈 하나 나오는데 – 서서는 도저히 못 찼지만 앉아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발바닥이다.

나는 문학기행 역사 따라가기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허물어진 망루나 성터 탐방 등등으로 정신을 충전한다. 나는 전생이 어느 고을 성주였는지 자연석으로 잔뜩 쌓아 올린 성곽을 따라 도는 걸 아주 좋아한다. 미술관의 그림들을 보면 그림 속에 들어가 작가와 만나고 싶다. 그가 어디서 나올지 한 동안 지켜본다. 역사 유물에선 앞서간 사람들의 그림자를 더듬어본다. 먼저 간 이들의 지혜와 저력에 힘입어 내가 길 하나 닦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아직은 엄청 역부족이다.

위대한 예술품은 영원 속에 멈추어진 순간이다. 우리에게 무엇을 일러주는가 되새겨 봐야 한다. 대자연의 장엄함이나 천재들의 예술품에서 뭔가 영감을 받을 수 있다. 기운을 얻게 된다. 그래서 여행은 즐겁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게 하는 것은 자연이 가르쳐준다.

고려 말 문신 우탁(禹倬 )의 탄로가(嘆老歌)를 음미해보자.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나의 행복은 오늘부터 란 심정으로 하루를 챙겨보자. 선수는 후반전이란 마음가짐으로 세월을 끼고 간다. 실현 가능성이 낮아도 하고 픈 일을 챙겨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겠다. 희망을 달고 지내는 게 삶의 가치를 더해준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흔들거리면 시끄럽고 마차 차체가 어긋난다. 꾀 있는 마부는 적당한 짐을 항시 싣고 다니듯 사람도 뭔가 걸고사는 게 긴장감이 있다. 무엇이라도 늦었어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다.

떨리는 젊음 그 이름은 청춘이다. 그 시절의 친구들은 바람이 되었나?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리움이 별처럼 쌓인다. 인연 있던 이들이 그리워지는 길목은 노래가 으뜸이다.

노래는 온갖 추억을 소환시켜준다. 좋은 노래는 눈길 달빛아래를 걷는 기분이다. 노래는 사람들이 만든 타임머신이다. 나이 들수록 감성 울리는 노래를 들으면 어깨가 내려앉는다. 청춘이 생각나는 뭉클한 노래는 몇 번씩 들어본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리고 출근하는 교통순경 아들에게 차 조심해라. 의사 생활하는 아들에게 밥은 제때 먹 어라는 말 건네는 부모 자리로 돌아온다. 올해는 갑진년이다. 역술인들의 갑진년 풀이가 아니라 내가 값진년이 되도록 차근차근 노력할 일이다.

흙이 많으면 큰 부처를 만든다. 선조님들의 경험과 지식 사유로 만들어진 속담 격언이라도 제대로 찾는다면 사람됨이 반듯해 지고 교양이 쌓인다. 딱히 할 게 없다고 인생이 허무 하다 느니 외롭다는 생각은 영혼을 갉아먹는 자학이다. 왜 하필 나만 이러냐는 불만은 환경 상황보다 받아들이는 성격문제이다.

쥐 없는 집 없듯이 누구나 약점은 있다. 곧은 나무도 굽은 뿌리를 갖는다. 서로 다른 것은 창조의 의미이다. 기도를 자주 길게 하면 그만큼 크고 많은 종합선물 세트를 바라는 욕심이다. 내 본연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금전을 잃으면 그 만큼 손해지만 용기를 잃으면 인생을 잃는다. 용기는 자신에게 발하는 빛이다. 맑은 가난 – 고통 없는 빈곤이 괴로운 부 보다 났다. 내가 소유한 것이 나를 소유한다. 죽었다 살아나는 게 바둑이고 예수님이다. 사람은 오뚝이 정신이다. 유지의성 (有志意成)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1374호 14면, 2024년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