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에서 말하는 인류의 기원이라고 하는 것은 문명발원의 시점을 기준으로 평가하며 인정한 것이다. 나는 창조론과 진화론에서 살짝 비껴나가며 “인류의 기원은 한국인이다” 라고 하는 표제어(Stichwort)에 더욱 매력을 느끼며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이에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알려진 것과 같이 인류의 발생지를 아프리카로 추정하고 있지만 인류문명의 발원은 한국인으로부터 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며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하는 미국인 죤 카터 코벨 교수의 주장을 살펴보며 정보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죤 카터 코벨교수(Jon Carter Covell, 1910-96)는 그의 저서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에서 여러 가지 증거를 바탕으로 고조선과 그 이전의 한국인 공동생활을 인정하고 인류의 기원은 한국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 근거는, 요동성 근방 만주지역(한민족의 고조선, 발해, 고구려 옛 땅)에서 대량의 탄미(炭米)가 발견됨으로부터 시작된다. DNA 검사결과 자연산이 아닌 교배종이란 것이 판명됨으로써 농사기술이 첨단과학을 이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것은 당시 군량미로 생각되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큰 전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이 쌀이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인류 최초의 것으로 1만 7천년 전으로 추정했다..
고조선 이 전의 왕국을 인정하며 노예제도가 없었던 환국(桓因/단군왕국 전, 하늘신 환인의 나라) 역사를 유네스코에서 인정, 사람이 하늘이라고 믿는 신앙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수 가 없는 사상임을 밝힌 이 책은 단군 실존의 이야기와 함께 일본 모든 문화의 뿌리는 한국 의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죤 카터 코벨 교수를 알게 된 것은, 언론인 김유경씨가 1980년대 초반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로서 코벨 교수의 칼럼을 받아 1년간 신문에 연재함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한국사학계에서 조차 받아드리기 어려운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유경씨는 제 3국 학자라는 객관적 위치에서 유물과 예술품을 통하여 고고학적으로 접근하며 누구나 알기 쉽게 칼럼형식을 통하여 코벨이 증언한 것을 번역하여 1999년에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 무속에서 신라불교까지] (학고재)를 출간했다.
이 책은, 바다건너 일본을 정벌한 부여 족과 가야에 대한 코벨의 글들을 묶은 것이다. 부여 족의 야마터 정벌과정과 왕권수립의 증거, 일본에 남아있는 한국문화의 흔적, 한국이 일본에 전한 영향, 일본의 역사왜곡 등이 62편의 칼럼에 수록되었다. 본문에서 “일본 역사학자들은 369년 가야 부여 족의 왜 정벌이래 700년 까지 한국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일본을 전적으로 지배했다고 하는 사실을 숨겨(313쪽)왔다”.
코벨은, 또 “4세기경 한국인들이 일본에 건너가 문화를 전수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건설을 주도했다.” “일본인의 조상 중 상당 수는 한국인이다.” “일본은 한국에서 말을 배에 싣고 건너간 모험가들이 건국한 왕실에서 시작된 것이다” 등을 발표하였다.
코벨은 부여의 일본정벌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수의 외국학자들을 동원한다. 미국의 그리피스, 페놀로사, 게리레저 등이 코벨 보다 앞서 일본문화의 근원이 한국이라고 주장했고, 일본 학자 중에도 에가미 나미오, 기다 사다기지 등이 기마민족 정벌론 을 인정했다. 한국 사학자로는 북한의 김석형과 남한의 천관우, 최태영의 연구 결과가 소개된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뿌리가 깊다. 8세기 초에 쓰여졌던 [고사기], [일본서기]에서는 조선보다 건국시기를 앞당겨 잡기 위해 실체가 없는 가공의 천황을 9명이나 만들어 놓았다.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신공황후의 신라정벌 설, 임나일본부 설을 통하여 자신들이 한국을 지배했다고 하는 등으로 조작하였다. 사실 신공왕후는 선단을 이끌고 왜를 침략하여 정벌한 강인한 의지의 한국왕녀였다.”
죤 카터 코벨의 책,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에서는 일본황실의 감추어진 비밀 몇 가지를 다루고 있다. 고고학과 어법분석 기술과 일본고서를 이용하여 일본천황의 혈통기원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대로 기원 전 660년이 아니라 서기 369년이라고 밝히고 있다.
코벨은 1978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일 고대사, 한국미술, 불교, 도자기 등에 대한 1,400여 편의 연구논문 칼럼을 썼으며 [한국이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 [한국문화의 뿌리] 등 5권의 한국문화 관련 책을 냈다. 한림출판사는 이 책들을 출판하며 ‘코벨의 ‘한국문화 시리즈’로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김유경씨에 따르면, 코벨 교수가 한국에 체류하며 한국문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지원은 전연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코벨이 6개월 마다 비자갱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한국에 머무르며 연구에 집념하고 싶어 했는데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것은 사실 상대적으로 역사의식이 좁은,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패권적 지배근성을 가지고 우리 나라 역사를 전적으로 왜곡 했으며,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하여 우리 역사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고조선, 발해, 고구려를 한낮 자기나라의 지방정부라고 하며 탈바꿈 하는 등 자체정부의 지원에 의하여 우리 고대왕조국가를 송두리째 자기네들 역사로 편입하려는 짓거리를 자행하고 있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 대외적으로는 국가위상을 높이고 자국국민들에게는 패권국가로 교육하며 자부심을 북돋으려는 사기행각이 아니겠는가?
반면에 한국인은 자존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식이 약한 것인가? 라고 하는 의문과 함께 의구심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역사왜곡사기행각에 우리학계나 정부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자존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역사관이 약한 것인가?
현실적으로 독도문제 만은 아니다. 여타 역사기록이 증거하고 있는 사실은 일일이 증명하며 철저하게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며 국민공감대를 형성하며 국제학계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며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국민들은 권력싸움이나 이념갈등에 국력이 더 이상 소모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역사를 지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국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권위 있는 외국학자들에게 연구를 지원하며 국제사회에 제 삼자로서의 신망 있는 증거를 제시하도록 하여 국제사회에 설득력을 제고(提高)하며 쟁점을 해소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정치계, 행정기관과 국민이 내나라 국체(國體)를 세우는데 마음이 모아져야 한다. 국가관이 없는 권력싸움, 국가관이 없는 이념싸움은 국체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역사를 바로잡고 적확한 역사가 교육되어야 한다고 하는 의견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역사를 바로잡고 적확한 교육이 있을 때 국가가 강건 강성해 지는 법이다.
개탄스럽게도 현재까지도 여전히 이어오고 있는 친일적 역사관을 하루 속히 정리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말하면 거짓말이라도 믿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고 강조한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깊이 새기며 기억해야 한다.
세계적인 석학인 죤 카터 코벨 교수가 죽기 직전에 “한국 없으면 일본은 지도에도 없었어”라고 한 말을 史實(사실)로 들어내는 내용과 함께 한국인이 인류의 기원이라고 하는 사실을 유엔에서 발표했다.
1980년대 유네스코강당에서 3대의 영사기로 칼라 슬라이더를 비춰가며 한, 중, 일의 예술형태를 통해 극동의 세 나라를 비교하는 세미나가 있었다. 여기에서 일본이 오래 전부터 한국문화의 산물을 일본국적의 것으로 기만하고 역사를 왜곡해 온 사실을 폭로했다.
동양미술사학자인 죤 카터 코벨은 미국 오벌린 대학을 나왔으며 서구학자로는 처음으로 1941년 미국컬럼비아 대학에서 일본미술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일본 교또 다이도쿠지 신주안에서 오랫동안 선(禪)미술을 연구했으며, 1959년부터 1978년까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과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한국미술사와 일본미술사를 가르쳤다.
코벨 교수는 일본문화사와 한국문화사를 연구하며, 여러 가지 근거를 살피는 중에 한국인이 인류의 기원이란 것을 알아내며, 그 기원을 1만 7000년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한편, [광주in]-[포토in] 은 “춘천중도에서 민족시원을 만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역사학계에 만연하고 있는 일제식민사관 청산을 주장하고 있는 “바른 역사 시민연대”의 연구 활약으로 춘천중도유적지에서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 유물 1,400여 점을 발굴하게 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다. 8,000년 전을 이어서 고조선시대 도시유적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서 UNESCO에 세계문화유산 등재운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 벌써 10년째라고 하며, 현지에서 천막을 치고 계속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고 한다.
세계인이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믿고 있는 세계 4대문명의 발원지라고 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BC4,000 년)을 기점으로 이어서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등이 발전했다면 약 6,000년 전이 된다. 그렇다면 인류문명 기원이 1만 7000년 전 한국인으로부터 라고 하는 인류문명사를 다시 써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1399호 16면, 2025년 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