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정당(2)
독일은 ‘정당국가’라고 칭해질 정도로 정당의 법적·정치적 위상이 높은 국가이다. 이러한 정당의 높은 위상은 독일 민주주의와 나치즘의 역사, 그리고 선거와 국가체제 등 제도적 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낳은 결과이다. 세계에서 정당정치의 모범으로 칭송받는 독일정당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먼저 독일 기본법상의 정당과 정당의 역사를 살펴보고, 연방의회에 진출한 각 정당을 살펴본다.
독일 정당의 역사
1)바이마르공화국까지의 독일 정당의 역사
독일 정당의 기원은 보불전쟁 후 수립된 독일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8/49년에 최초로 프랑크푸르트 의회가 개최된 이후 1860년대에 독일진보당, 전독일노동자협회, 사회민주노동자정당, 중도정당 등이 창당되었다.
전독일노동자협회, 사회민주노동자정당 등은 독일 사회민주주의당(SPD, 이하 사민당)의 전신으로서 노동조합과 같은 의회 외부 세력을 기반으로 등장한 좌파 이념정당의 전형이다. 독일사민당은 이후 정당연구에서 대중정당모델, 이념정당모델 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중도정당은 독일 기독교민주주의당(CDU, 이하 기민당)의 전신인 중도 우파정당이다.
19세기말 이후부터 독일 정당들이 대중적인 조직을 지닌 이익정당으로 변모함과 더불어 독일의 정당정치는 발전하게 되었고, 1919년 바이마르공화국의 등장은 이제 이러한 정당들이 의회를 넘어, 행정권을 장악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즉 19세기를 거쳐서 형성된 “아래로부터” 조직된 정당이 1919년의 바이마르공화국의 등장과 함께 이제 스스로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19년부터 1932년까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어떤 특정한 정당도 의회의 다수를 차지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경제 정책의 불일치를 비롯한 좌익과 우익 정당의 정치적 양극화는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단합된 정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반면 1930년 6월 이후, 수상 후임자들은 의회 다수 확보자체를 포기하고 만다. 불안과 소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독일 헌법의 긴급 법안(제 48조)을 통해 의회 동의 없이 대통령 칙령만으로 통치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바이마르공화국 시기 정당은 국가적 통합성을 해치는 이기적 행태의 상징으로 언급되곤 하였고, 이러한 불안정한 시기에 나치당은 국가적 자부심과 자긍심을 갈망하던 독일인들에게 “민족공동체”의 신화를 심어주며, 무명 정당에서 국가적 정당으로 약진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민주적인 제도 속에서 전체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기게 된 것이다.
2)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정당의 역사
2차 대전 이후 건국된 독일연방공화국은 나치정권이 민주주의 하에서 탄생하였다는 역사적 자성 하에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대폭 축소하고 정당을 비롯한 대의민주주의적 기제를 강화하였다. 특히 정당은 대의민주주의를 유지 하고 보호하는 핵심적 제도로 간주되었으며 다원주의적 정당체제는 권위주의체제의 출현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로 인정되었다.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오늘날까지의 독일 정당정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 양당체제
이 시기는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출범 이후 1950년대 후반 형성되어 1980년대 초반까지 20여 년간 유지되었던 양당정치의 시대이다. 양대 국민정당인 기민련(CDU)과 사민당(SPD)이 유권자 지지의 약 80-90% 를 장악하였던 시기이다.
기민련과 사민당은 1957년 선거 때부터 이미 총 82% 지지를 동원하였다. 70년대 중반에는 양대 정당으로의 집중이 최고조에 달하였는데 양대 정당지지율이 1972년도에는 90,7%, 1976년 선거에서는 91.2%에 달하였다.
두 정당은 각각 온정적 보수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이념적 성격으로 하고 있지만 이념적 갈등의 수위는 그리 높지 않았고 국가는 협의적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 1980년대 초반 – 1990년대 초반: 4당체제
두 번째 시기는 68운동을 배경으로 등장한 녹색당이 연방의회 진입과 정착에 성공하면서 형성된 4당 체제 시기이다. 녹색당(Grüne)은 기민련, 사민당, 자민당(FDP) 등이 포괄하지 못하였던 환경, 여성, 평화 등 신사회운동의 이슈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젊은 유권자 세대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녹색당은 기존 정치집단이 특권세력화하였 다고 비판하면서 보다 참여적인 ‘토대민주주의’를 주창하였고 이는 독일 민주주의의 근본적 쇄신과 개혁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독일 녹색당의 성공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녹색당 세력의 유럽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 1990년대 초반 – 현재: 다당제
이 시기는 독일 다당제의 성격이 보다 강화된 동시에 다양한 소수 정당의 부침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기이다. 이러한 정당체제 유동성 강화에 첫 기폭제가 되었던 요소는 민주사 회당(PDS)의 등장이었다. 독일 통일 이후 구 동독의 지배정당이었던 독 일사회주의통일당(SED) 세력은 민주사회당으로 전환하였다. 민주사회당은 구동독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역정당으로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재기하였으며 연방의회뿐만 아니라 구 동독 지역의 주정부에 대거 진출하였다. 민주사회당은 이후 사민당의 ‘제3의 길’ 노선을 비판하며 분당한 사민당 좌파세력의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과 합 당하여 좌파당(Die Linke)을 창당하였다.
독일 다당제의 유동성 증가는 2017년의 9월 총선 결과 더욱 심해졌다. 이번 선거결과는 전통적인 양대 국민정당의 약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한 때 총 91.2%에 달하였던 양대 정당 지지율은 53.4%로 급락하였다. 또한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극우파 정당들과 상당히 유사한 우파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의회진입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2021년 현재 독일에는 총 7개(CSU포함)의 정당이 연방의회에 진출하며 이념적으로 양극화가 보다 진행된 다당제가 등장하였다.
1204호 29면, 2021년 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