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30)
과거 청산과 피해자들의 복권과 보상

과거청산의 과제는 비단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독재 체제가 양산한 희생자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사통당 독재 체제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냈다. 수십만 명의 동독인이 정치적 이유로 구속되거나 유죄 선고를 받았고, 재산몰수, 시베리아 유형, 교육과 직업 면에서 부당한 차별과 대우를 받았으며, 끊임없는 감시에 시달렸다. 특히 냉전이 본격화되고 스탈린식 사회주의가 이식된 사통당 정권 초기에는 체제 비판세력을 정치범으로 몰아 처형하거나 투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심문 과정에서 자행된 가혹 행위로 사망하거나 자살하는 일도 발생했다.

더욱이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통일 후에도 과거에 겪은 탄압으로 부터 회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 따라서 사통당 독재청산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이들이 입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보상하는 것은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였다.

통일 전 동독에서 시작된 피해자들의 복권

이러한 작업은 통일 전인 1990년 초에 이미 동독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동독 검찰은 과거에 선고된 판결을 검토해 정치적 동기에 의해 부당하게 내려 진 유죄 판결을 무효화했다. 이를 통해 발터 얀카(Walter Janka), 볼프강 하리히(Wolfgang Harich), 루돌프 바로(Rudolf Bahro), 로버트 하베만(Robert Havemann) 등 과거 반체제 인사들에게 내려진 형사 판결이 무효화되었다.

이러한 동독 말기의 자정적 움직임은 1990년 9월 6일 최초로 실시된 자유선거에 의해 선출된 동독 의회가 ‘복권법’을 가결해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법적 피해자들의 복권을 공식화함에 따라 더욱 진전되었다. 나아가 통일 후 독일 연방 의회는 1992년 6월 17일에 사통당 정권 희생자를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명예 회복 선언을 채택했다.

“독일 연방 의회는 공산주의 폭정으로 인해 희생당한 자와 그 가족의 고난을 고귀하게 인정한다. 사통당 치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불법적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처벌되었다. 그들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구속되었다. 그들은 비인간적인 형무소에서 고문과 고난을 받았으며 생명을 잃었다. 그들은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았으며 모독과 멸시를 받았다. 그들은 고향으로부터 추방되었고, 그들의 재산은 파괴되었다. 독일연방 의회는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고 40년 간 분단되었던 독일이 자유와 평화 안에서 통일되도록 노력한 이 모든 희생자들에게 심심한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1차 사통당 불법 청산법(Das erste SED Unrechtsreinigungsgesetz)

이어서 1992년 11월 4일에는 제 1차 사통당 불법 청산법(Das erste SED Unrechtsreinigungsgesetz, 일명 형사복권법)을 가결했다. 이 법에 따라 1945년 5월 8일에서 1990년 10월 2일 사이에 동독 사법부가 자의적으로 내린 판결로 억울하게 수감생활을 한 사람들의 사례를 재검토해 판결을 무효화했고, 해당자의 전과 기록도 말소했다. 동독 시절 정치범은 약 25만 명~3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 외무부는 구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과 협상을 벌여 과거 정치적 이 유로 이들 국가로 유배당한 독일인 13,500명에게 복권과 재활 기회를 제공했다. 명예회복과 더불어 1992년에는 처음으로 보상법이 제정되어 부당하게 징역을 산 경우 수감 기간만큼 매월 250 유로(현재는 300 유로로 인상됨)를 보상금으로 받게 되었다.

1차 사통당 불법 청산법으로 정치적 구금자에 대한 보상과 복권의 토대가 마련되었지만, 사통당 정권의 피해자는 비단 이들만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구금되지는 않았지만 1970/80년대 사통당 정권이 국가안전부를 내세워 드러내지 않고 시행한 다양한 탄압으로 피해를 입은 동독인도 많았다.

– 제2차 사통당 불법 청산법

이러한 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1994년 7월 1일 제2차 사통당 불법 청산법이 발효 되었다. 이 법은 보상 청구를 할 수 있는 피해자의 범주를 기존의 정치적 구금자의 범위를 넘어 확대시켰다. 요컨대 징역은 살지 않았지만 사통당 정권이 다른 방식으로 자행한 탄압으로 인해 건강상의 장애를 안게 되었거나 재산 을 상실하고 직업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도 정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사통당 독재의 피해자의 유형을 보다 다양하게 인정함으로 써 보상의 수혜자를 확대시킨 것이다.

제2차 사통당 불법 청산법은 직업적 복권법(Berufliches Rehabilitierungsgesetz)과 행정법적 복권법(Verwaltungsrechtliches Rehabilitierungsgesetz) 두 개로 이루어졌다. 직업적 복권법은 사통당 정권 탄압의 희생자들이 직면한 직업적, 경제적 불이익을 조정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피해자들의 다수는 동독 시절에 아무런 저항 없이 살아온 대다수 신연방주 주민은 물론 심지어 이들을 억압했던 가해자들보다 더 궁핍한 환경에 처하게 된다.

직업적 복권법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 구금 전에 취업 활동을 한 피해자 의 경우 구금 기간을 연금 납입 기간에 포함시키고, 대학 재학 중 정치적 탄압으로 인해 졸업하지 못했을 경우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간주하는 등 사 후 조정을 통해 피해자들의 연금 손해를 보완할 수 있게 했다. 나아가 동독 시절 교육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해 통일 후 직업적,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피해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직업 교육, 재교육, 대학 교육 등 피해자가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일자리를 알선하는 등의 제도적 지원도 표방했다.

한편 행정법적 복권법은 과거 사통당 정권이 다양한 영역에서 자행한 행정적 불법 행위로 인해 야기된 피해에 대한 보상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과거 동독 정권의 행정조치가 법치국가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거나 당사자의 건강, 재산, 직업 활동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 또는 과거의 행정조치로 인해 발생한 손해가 현재에까지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그 행정조치는 폐기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보상 기준을 제시했다.

이처럼 독일정부는 여러 차례의 법 개정을 거쳐 피해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이어왔다.


교포신문사는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이를 위해 지면을 통해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6월 첫 주부터 연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 주

1206호 31면, 2021년 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