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후 동서독 정당지형 ③
민사당의 형성과 발전 3
민사당 정당지형 변화 요인
1990년 통일 이후 민사당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변화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통일에 따라 구 동독지역이 특수하게 겪게 된 지역성 요인이고, 다른 하나는 당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요인이다.
우선 지역성 요인은, 베를린 장벽 해체 이후 1년 후에 공식화된 통일과 그 이후 전개된 사회경제적 재편 과정에서 부각된 ‘구동독이라는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구동독 주민들이 통일과 함께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데 겪는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주로 유래된다고 본다.
실상 1990년 대 초에는 어떤 식으로든 통일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 주로 민사당의 지지기반을 이루었고 때문에 민사당은 ‘통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1994년과 1998년 연방선거에서 민사당 지지 유권자들의 지지기반 이 종래 불이익 인식 구동독 주민을 넘어 젊은 고학력 고소득 화이트칼라 집단으로 다원화된 점이 부각되면서 보다 다양한 원인규명을 요구하게 되었다. 즉, 1994년 1월과 10월 사이에 경제개선 인식 동독인의 비율은 약 3배 정 도로(인구의 약 20%에서 거의 60%로) 상승했으며, 미래의 경제상황에 대한 기대에서도 유사한 증가율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1998년 조사된 설문 조사에서 전반적인 경제상황과 개인의 경제 상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 리는 동독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을 통해 더 이상 지역성 요인을 단일 원인으로 삼기에는 설명력의 한계를 보인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이데올로기 요인은 거시적으로는 통일 시기와 결부되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경제적 재편 작업과 이에 적응하는 새로운 정치적 대응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독일통일 당시인 1990년대의 서독 자본주의와의 맥락 속에서 구 동독사회경제의 재편이 동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미시적으로는 유권자인 동독주민의 다수가 경제적인 부와 소유가 사회적 정의 차원에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통일 전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열광과 기대가 수그러들면서 동독지역의 주민들은 사회정의와 인간 간의 연대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가치들을 재평가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이 이념적으로 사회주의 가치인 평등과 사회 정의, 인간 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민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사민당과 녹색당이 이념적인 우경화로 인해 이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이 민사당으로 정당지지를 바꾼 점에서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특히 1994년 이래 젊고 도시적이며, 교육수준이 높은 화이트칼라, 즉 이들은 진보적 좌파정당 지지경향이 가장 높은 집단인데, 이들의 민사당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는 것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한편 서독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1994년 연방 의회선거에서 민사당 지지자의 1/4은 1990년 선거에서 녹색당과 사민당에 투표한 사람들이었으며, 약 10%는 새로이 선거권을 획득했거나 1990년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민사당은 사민당과 녹색당의 우경화를 통해 자신을 사민당 지지유권자들에게는 전통적인 복지국가정책 의 대변자로 표현하고, 녹색당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타협할 줄 모르는 평화주의자로서 강력히 제시하면서 유권자를 동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민사당은 통일 이후 독일의 근본적 사회갈등노선을 동-서독 간의 갈등과 사회정의-시장자 유의 갈등이란 프레임으로 설정하고, 통일 이후 서독 지향적이고 서독 의존적인 정당들에 대한 대안으로서 자신을 동독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동독정당’(Ostpartei)화하는 전략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통일 이후 민사당은 ‘통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 (Einigungsverliererinnen)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과 선거 전략을 취하였다. 이러한 ‘통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은 구 동독체제에서 가졌던 경력 및 지적 자산을 새로운 독일에서 시장가치를 가지는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직업 활동이나 사회생활에서 직 접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된 사람들(여기에는 구체적으로 구동독의 국가 및 당 관료들, 군대 및 비밀경찰, 사회단체, 대중매체의 고위직 출신들 그리고 특히 인문사회과학분야 대학교수와 교사들)과 통일독일에서 스스로를 ‘이등국민’(Bürger zweiter Klasse)으로 느끼는 다수의 동독지역 주민들이 속한다.
동독지역 주민들이 스스로를 이등국민으로 생각하는 근거는 우선 동서독 간의 경제적 불균형 및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차이, 동독에서의 보다 높은 장기적인 실업 등에 있는데 이러한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에 맞물려 서독인들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 또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제기되어야할 점은, 이러한 당의 지향점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접점을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알리고 지지를 동원해 왔다는 점이다. 즉, 문화 및 정치 토론회와 지역주민을 위한 행사 등을 통해 통일과 함께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거나 구동독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공간을 제공하며, 또한 통일 이후의 새로운 법률 및 제도에 관한 정보자료의 배포와 설명, 연금이나 주택임대처럼 생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조언과 조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것은 동독의 유권자들에게 민사당이 동독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를 통해서 민사당은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재빨리 파악하고 이에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1224호 31면, 2021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