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90
독일의 언론(1)

◈ 독일 언론의 역사

1644년 영국의 존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라는 글에서 당시 모든 출판물에 실시되던 국가 검열을 거부하고 언론 자유를 최초로 부르짖은 이후, 18세기에는 미국·프랑스에서 언론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기에 이르렀다.

독일은 이보다 늦은 19세기 중반(1848년 혁명) 이후 언론 자유가 신장될 기회가 주어졌으나, 1차대전과 나치 독재를 거치면서 언론은 정치 도구로 철저히 길들여졌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였을 때 독일의 언론은 매우 훌륭한 구조적 체계를 이룩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에서는 매년 4,700여 개가 넘는 일간지와 주간지가 출판되고 있었는데, 이는 다른 어떤 산업 국가가 보다 많은 수로서 총 판매 부수는 약 2천 5백만 부에 달하고 있었다. 이 중 베를린이 언론의 수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작은 도시의 언론들이 신문 판매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총 독일 신문의 약 81%가 지방 신문이었다.)

한편, 대도시에서 출판되는 8개 신문은 국제적 명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독일의 영화 산업은 세계 최고에 있었다. 독일의 영화들은 국제적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있어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고 수개월 후, 나치는 독립 언론 기관에 영향을 미치고 조정하는 기반마저 구축하였고, 집권 1년이 안되어 언론을 억압하고, 동시에 라디오와 언론 그리고 뉴스 영상을 이용하여 “사회주의 폭동”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대중의 불안감을 조성하였다. 이로서 언론의 자유는 사라지게 되었다.

2차 대전 이후 서독을 신탁통치한 연합국의 주요 과업 중 하나는 민주 언론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 제도를 본보기로 해서 도입한 공영 방송 ‘ARD’와 미국 <타임>을 모방해 탄생한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전파·인쇄 매체 분야에서 각각 대표적인 민주 언론으로 성장해 독일이 민주 국가로 재탄생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특히 <슈피겔>은 독특한 논조와 날카로운 안목으로 정치·경제·사회 분야 전반에 내재한 문제점들을 심층 보도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다른 언론 매체들조차 경쟁적으로 <슈피겔>의 기사를 인용해 보도하는 사례를 독일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다. 그것도 발행(매주 월요일)이 되기 전부터 말이다.

◈ 독일 언론 개관

1) 기본법 규정

독일 기본법 제5조는 “누구든지 자기의 생각을 말, 글 및 그림으로 자유로이 표현·전달하고,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알 권리를 가진다. 신문의 자유와 방송과 영상으로 보도할 자유는 보장된다. 검열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언론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즉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접근 가능한 정보 취득의 권리, 신문·방송의 보도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검열제도는 명백히 불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의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며, 청소년을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출판물과 영화로부터 보호하고 개인의 인격과 비밀을 보호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수반하고 있다.

또한 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권력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고 검열을 받지 않는 자유언론이 자유국가의 기본요소”라고 판결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연방헌법재판소는 공영방송 조직, 운영의 필요 요건 등에 관한 견해 표명, 신문의 표현의 자유와 제도상 가치를 보장하는 견해 표명 등 민주주의 하에서 출판과 방송의 중요성 및 임무를 강조하는 법적 해석을 부여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2) 신문·방송 관련 입법

독일 신문은 전통적으로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어 왔으며, 신문에 관한 입법은 주정부 소관 사항이다. 당초 방송은 공영 체제로만 운영되어 왔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상업방송을 허용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공·민영 혼합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공영방송 관련 사항은 주정부 법률 또는 주정부간의 국가 조약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는데, 방송의 경우 신문보다 엄격하게 시설·재정 등을 규제하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상업방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일정한 조건 하에서 상업방송을 허가하는 입법이 1984년 니더작센주에서 통과된 후 현재는 모든 주에서 상업방송 허용하고 있다. 특히 연방재판소는 1981년과 1986년 상업방송 설립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는데, 1986년 판결에서 공영방송은 “기본 방송매체”로서의 역할을, 상업방송은 “보조 방송매체”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3) 민주사회에서 신문·방송의 역할

정보 전달: 독일 언론은 필요한 정보들을 신속·정확하고 알기 쉽게 전달함으로써 시민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시민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신속히 파악, 대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제1의 임무로 하고 있다.

여론 형성: 독일 언론은 국가와 민주사회에 중요한 문제들이 공개 토론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이익 대변이 어려운 사회 계층들의 관심과 이해관계를 소개함으로써 소외받는 계층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제2의 임무로 하고 있다.

감시와 비판: 독일 언론은 의회·행정·사법부 등에 대한 공정한 감시자·비판자 역할을 함으로써 민주질서를 수호하고 민주사회가 부정부패자의 사리 등에 의해 병드는 것을 방지하는 임무를 제3의 임무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오락 기능과 교육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다음 호부터는 신문, 방송, 잡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1262호 29면, 2022년 4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