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원 박사의 언어와 정체성 이야기(4)

언어가 만드는 장소 (링구아 스케이핑, Linguascaping)

언어가 어떻게 공간을 꾸미는가

언어가 공간을 꾸미고 장소를 만들다니… 생경한 표현이다. 경관을 구성하는 것은 자연이고 건물이고 구조물이지 무슨 언어가 장소를 만든다는 것일까.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도시 경관을 이루는 도로 표지판, 안내 표지, 광고물, 간판, 현수막, 가게 입구의 안내 문구 등 거리에 펼쳐진 언어 사용 풍경은 도시경관을 더 아름답게도 혹은 지저분하게도 만들기도 한다. 즉 도시의 경관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니 문자가, 언어가 경관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특히 다양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항, 기차역이나 대규모 국제 행사장 등의 안내판에서는 다양한 외국어를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길거리나 상점 등에서도 쉽게 외국어 간판을 볼 수 있는데 갈수록 언어 경관에서 다중언어성이 심화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점점 더 많은 종류의 외국어들 간판, 표지판, 광고물들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들 언어 경관 (링구아 스케이핑, Linguascaping)의 특징은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외국어를 사용하거나, 외국어를 ‘장식의 용도’로 활용한 경우가 많다.

언어 사용 풍경이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의미 있는 이유는 한 나라가 외국어 문자를 얼마나 일상생활 속에 친근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자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이기에도 하기에 한 국가가 얼마나 외국인들에게 친절한가 (혹은 관광산업에 심혈을 기울이는가)를 나타낸다.

해당 언어의 사용은 그 언어의 힘, 더불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힘에 대해 한 국가가 얼마나 신경 쓰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외국인들이 독일에 입국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언어 경관을 생각해 보자. 비행기에 내려서 입국심사를 받기 전부터 각국의 말로 “환영합니다”가 쓰여 있다. 공항 입국자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나라말로 된 환영인사를 보게 되고 반갑게 생각할 것이고 다른 여러 외국어로 된 환영인사를 보면서 좀 아는 외국어가 있으면 벽에 쓰여 있는 모든 외국어가 환영인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에 읽어보며 즐거워할 수 있다. 동시에 거기 쓰여 있는 자신의 모국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세상에는 약 7천 개가량의 언어가 있는데 (전 세계 국가의 수가 분류기준에 따라 200개 안팎임을 생각해 볼 때 많은 분들은 우리 지구인이 사용하는 언어의 수에 놀라실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모든 7천 개의 언어로 환영인사를 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 언어의 사용자가 모두 공항을 방문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제 전 지구의 반 이상의 인구가 이중 언어자이거나 다중 언어자이기에 모든 언어가 공항 벽에 쓰일 필요는 없겠다.

어떤 언어를 선택해서 공항에 환영 표기를 할 것인가는 아마도 공항 이용객들의 사용 언어를 바탕으로 선택될 것이다 (혹시 활자 자체가 너무 아름답다면 사용자가 없어도 뽑힐지도 모르겠지만 잘 쓰이지 않는 언어는 공항 환영인사에서 빠지지 않을까).

삽화 : 노민선 작가

대부분의 공항에 빠질 수 없는 언어는 당연히 해당 국가의 모국어와 영어이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인접국가 중 관광객 수가 많은 국가의 언어, 그리고 강대국의 주요 언어 (나라마다 주요 언어의 정의는 다르지만)들이 쓰일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벽에는 수십 개의 외국어로 환영인사가 되어 있고 인천공항은 한국어와 영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 표지판이 대세이다. 반면에 환영인사에 저렇게 많은 언어들이 쓰여 있는데 자신의 모국어가 빠져 있다면 속상하다.

한글 환영인사는 이제 주요 관광지 환영인사에서 많이 찾을 수 있어 크게 신기하지 않은데 예전에는 외국에서 한글이 보일 때마다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젊은 세대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가 유학 시작하던 1998년 경 미국의 주요 공항에서 한글을 본 적은 없었다 (그 많은 미국의 모든 공항을 다 가본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에 한글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놀랍고 반가웠는데 이제는 국격이 높아지고 문화강국이 되다 보니 한글 환영인사를 보면 “음, 그래 반갑구나” 하면서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음이 그저 기쁘다. 이렇게 벽에 쓰인 단순한 환영인사로 국격과 국력을 논한다.

공항이 아닌 곳에서도 한글은 이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수년 전에 크로아티아에 가서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폭포와 호수가 장관을 이루는 크로아티아의 플릿체 비체 국립공원에서 꽤 떨어진 곳의 작은 레스토랑에 들린 적이 있었다. 사실 레스토랑이기보다는 작은 길거리 분식점 같은 곳이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화들짝 놀랐다. 화장실 문 앞에 한국어로 남자, 여자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삽화 : 노민선 작가

재미있는 점은 화장실에는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 있었는데 그 어느 나라 말이 아닌 딱 한국어로만 남자, 여자라 쓰여있었다. 일단 한국 관광객이 분명히 이 분식점에 자주 온다는 증거일 테고, 또 하나는 유럽식으로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그림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관광객들이 화장실에서 자주 곤란을 겪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셀도르프 시내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는 가끔 혁신적인 화장실 성별 표시 기호가 있는데 나는 매번 헷갈린다. 어느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나?)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국어 안내를 보면 반갑기 그지없지만 쓰여 있더라 하더라도 잘못 표기된 모국어를 보면 도리어 화가 날 수도 있다. 짧은 해프닝에 그친 일이지만 2017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한글 안내판이 잘못 쓰여서 논란이 인 적이 있다.

공항 입국 심사대로 향하는 길목에 세워진 안내판에 영어로 You Are Here, 스페인어로 ‘Estàs Aquí에 이어 한글이 함께 쓰였다. 참고로 조지아주는 약 15만 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한국어는 지역에서 영어, 스페인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쓰이는 언어이다. 우스우면서도 기막힌 것은 공항 입국 심사대를 찾아가는 안내 약도에 반말로 “너 여기있다”라고 쓰였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인터넷 번역기를 돌려 사용했음을 쉽게 추측해볼 수 있는데 현지 한인들과 우리 항공사의 요청으로 공항 관리 공단이 시정조치하여 이 약도는 추후에 올바른 한글 표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바뀌어서 다행이지만 잘못된 우리말로 쓰인 안내 글이나 간판을 외국의 공공장소에서 보게 되면 만감이 교차한다. 일단 “너 여기 있다”라는 말을 보면 실소가 퍼져 나오겠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왜 현지의 한국어 원어민에게 한 번이라도 저 표현이 맞는지 체크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면서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한다. 돈을 들여 저렇게 공식적으로 표기할 때에는 그 정도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담당자가 세상의 모든 언어를 알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잘 모르는 언어로 공공안내시설을 만들때 주변 원어민에게 잠시 교정을 받을 정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에 관광객이 폭증하면서 2020년도에 도시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언어경관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고 한다. 정비의 내용은 시민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잘못 표기되었던 길거리 표지판, 쓰레기통, 안내문과, 광고 간판, 현수막 등의 외국어 번역 오류를 바로 잡는 일이었다.

보통 영어 철자 오류 등 표기의 오류, 조금 더 전문적으로는 표기 지침을 위반했거나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을 사용한 것을 고치고 내용에 맞지 않은 번역이나 적절하지 않은 어휘 사용 등을 고친다. 이를 위해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전공자들과 원어민을 포함한 전문가의 감수를 거쳤다고 한다. 그동안 검증되지 않은 외국어로 번역기를 돌려 사용한 간판, 안내문 등의 외국어 표현들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것이다.

많은 비용을 감내하면서 이러한 정비가 필요한 이유는 언어 경관이 수많은 문화적 코드를 담고 있고 외교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관광 안내판은 해당 관광지 또는 문화재에 대한 홍보뿐 아니라 외교관처럼 국가의 문화를 홍보하고 외국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에게는 걸어다니면서 생활 속에서 언어에 노출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러기에 간판이나 안내물에서 올바른 외국어 및 우리말 사용은 그 도시와 나라의 위신과 관계있다. 잘못된 외국어로 망신당하거나 공공간판을 통해 잘못된 우리 말을 외국인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

올여름방학 오랜만에 한국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십 대인 아이들답게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독일에서 자주 보지 못하는 형형색색의 티셔츠들을 사고 싶어 해서 여기저기 옷 상점에 데리고 갔었다. 나는 쇼핑을 잘할 줄 모르고 트렌드를 몰라 여기저기 물어보니 한국 보세 옷을 사고 싶으면 두산타워에 가거나 동대문에 데리고 가라는 조언을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요즘 청소년들은 온라인이나 다른 힙! 한 곳에서 옷을 산다고 주변 비슷한 동년배의 친구들한테 물어본 것을 후해하고 말았다).

한참을 옷 구경을 하던 아이들이 잘 사지를 않길래 왜 그러냐 짠순이 엄마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했더니 아이들 왈, 티셔츠 색도 예쁘고 디자인도 예쁜데 잘못 쓰인 영어가 너무 많아서, 혹은 독일에 가져가서 입기에 어색한 영어 표현이 너무 많아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얏호! 돈이 굳었다”.

순간 유럽에서 잘못 표기된 한자 문신을 한 사람들이나 혹은 우리 같으면 절대 장식을 위해서 쓰인다고 생각할 수 없는 한자 – 예를 들어 힘 력(力)자- 타투를 한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실소가 나왔다.

뒤셀도르프의 이머만슈트라사는 “리틀 도쿄”라 불리며 많은 독일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 거리에 들어서면 일본 상점과 더불어 일본어로 된 간판들과 레스토랑의 입간판 및 메뉴판까지… 독일어, 일본어로 버무려진 거리다. 근처에는 한국식당, 카페, 슈퍼 등이 있는데 독일 관광 온 한국인들은 한국어로 된 간판과 가게 유리문의 한국어와 독일어로 뒤엉킨 광고나 메뉴를 보면서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것이다. 한국의 간판과 표지판은 영어와 한국어 혹은 중국어가 뒤엉켜 있을텐데 말이다.

이렇게 도시의 언어 경관은 도시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보여준다. 다시 정체성 이야기로 돌아왔다. 공공장소에서 쓰이는 문자에는 힘이 있어서 보는 사람을 자랑스럽게 만들기도 혹은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기분을 오락가락하게 하고, 자신의 모국어, 심지어 국제사회에서 여러 나라들의 힘겨루기까지 볼 수 있으니 언어경관은 사뭇 아니 대단히 정치적이다.

사회언어학자인 다니엘 롱은 “언어경관은 눈으로 보이는 형태로 언어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언어의식의 척도이며 중요한 사회언어학적 현상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가? 독일 도시에서 한국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작은 코너라도 내 나라 글자를 보게 되면 기쁘고 힘이 난다. 다른 나라 도시에 우리의 글자를 마구잡이로 심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만 사는 독일이 아니지 않은가).

도시의 구석 구석에서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향취를 느낄 수 있고, 다문화와 다언어가 아름답고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를 가질 수 있다면 글로벌 시티즌으로써 모두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삽화 : 노민선 작가

1285호 14면, 2022년 10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