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 190

독일, 재생에너지 확대로 나아가다 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인구가 많은 산업국가 중 독일처럼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가면서도 탈원전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에는 오랜 역사가 있으며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2000년 사민당·녹색당의 적녹 정부가 당시 ‘전력매입법’을 대대적으로 확대 개혁해 제정한 ‘재생에너지법’이 에너지 전환의 기초가 되었다.

1990년 만들어진 전력매입법은 이미 소규모 재생에너지 생산자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 대형 송배전 사업자들은 재생에너지 생산자가 전력망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독일 정부는 전력매입법을 통해 송배전 사업자에게 소규모 재생에너지 생산자의 전력을 매입하는 의무를 지웠다. 또한 시장가격이 아닌 고정가격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매입하게 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전력매입법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지 못했다.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자의 수익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적녹 정부는 재생에너지법과 함께 탈원전을 통과시켰다. 핵발전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여겨졌지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명되었다.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또 다른 대안이 되었다. 창당 시기부터 탈원전을 가장 중요한 정치 의제로 내세운 녹색당은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촉진을 연결했다.

재생에너지법은 대형 송배전 사업자들로 하여금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를 우선 구매하고 공급하도록 했다. 또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확대해 송배전 사업자가 재생에너지 전력을 20년간 고정가격에 매입하도록 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매입 가격과 전기 시장가격의 차액을 모든 전력 소비자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재생에너지 부담금(EEG-Umlage)’ 제도를 도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재생에너지법은 2000년 당시 6%에 불과하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10년까지 12.5%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2007년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이미 14%에 도달했다.

2001년 연방 환경장관이던 녹색당의 위르겐 트리틴은 “재생에너지 사용은 생태적으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환경부 보고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법 통과 이후 이 분야에서 1년 동안 새로운 일자리 약 7만 개가 만들어졌다.

2005년 탄생한 메르켈 정권 또한 재생에너지법을 유지했고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재생에너지법은 그사이 여러 차례 개정되었지만, 에너지 전환을 뜻하는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는 에너지 전환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독일의 성공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정책 방향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자민당으로 구성된 메르켈 2기 정부는 2010년 탈원전을 철회했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구상’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원전 사용 기한 연장이 강조되어 있었다.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원전의 사용을 연장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상황은 다시 뒤집혔다.

기민당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탈핵을 지지해온 녹색당의 지지율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인 2011년 3월27일 치러진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선거에서 녹색당은 과거보다 두 배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녹색당은 다수당이 되었고 당 역사상 최초로 주지사를 배출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오랫동안 기민당의 텃밭이었다. 결국 메르켈 정부는 같은 해 5월 다시 단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메르켈의 임기 동안에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2005년 10.3%에서 2020년에는 45.3%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메르켈의 임기 동안 독일 정부는 기후보호와 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변했고 기대보다 낮은 성과를 거뒀다.

2021년 12월 출범한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립정부는 기후보호를 정책의 핵심 과제로 표명했다. 기후문제를 당의 중심에 둔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다른 정당 또한 기후보호가 독일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 중 하나임을 인정했다. 새로운 정부는 메르켈 총리의 16년 임기 동안 속도가 느려진 에너지 전환과 기후보호 정책에 가속도를 붙여야 했다.

2022년 4월6일 녹색당 소속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은 재생에너지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재생에너지법, 해상풍력에너지법 등의 개정을 포함한 총 56개 법안의 변경과 조치가 담겨 있었다. 새로운 정책 패키지를 통해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전력 사용량의 80%, 2035년까지는 사용량의 대부분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던 목표를 공식화했으며 재생에너지 설비의 대규모 확장을 약속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는 독일의 기후보호 목표 실행에 방해가 되었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확보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야 했을 뿐 아니라, 높아지는 에너지 가격에 따른 시민의 부담을 덜어줄 정책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보수정당을 비롯해 기후보호 정책에 반대하던 세력들이 에너지 가격을 포함한 물가상승에 따른 어려움의 원인을 에너지 전환 정책에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런 압박 속에서도 독일 정부는 기후보호를 위한 정책 방향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2024년 기후변화 대응지수’에서 독일은 14위를 차지했다. 2023년 지수보다 2계단 상승한 것이다.

해당 지수는 2009년부터 1~3위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기후보호를 위해 충분히 잘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는 의미다. 2024년 지수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나라는 2023년과 동일하게 덴마크였다. 유럽연합은 전년도 대비 세 계단 상승한 16위를 기록했다.

1365호 29면, 2024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