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특집

1924 파리 올림픽: 100년 전 빛의 도시파리는 올림픽 역사를 어떻게 바꿔놨나 (2)

파리 하계 올림픽은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진행되며, 1만500명의 선수가 32개 부문, 329개 세부종목에서 메달을 놓고 겨루게 된다. 이번 올림픽에는 총 206개국이, 패럴림픽에는 184개국이 참가한다.
이어 패럴림픽은 8월 28일부터 9월 8일까지 진행되며, 22개 종목에 4400명의 선수가 참여하고, 549개의 메달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다.
교포신문에서는 100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개최되는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4회에 걸쳐 100년 전인 1924년 파리 올림픽과 이번 파리올림픽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실

폐막식

1924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지금과 비슷한 폐막식 형식을 갖추게 된다. 참가국에 메달을 수여하는 한편, IOC 깃발, 1896년 근대 올림픽을 최초로 개최한 그리스의 깃발과 더불어 개최국인 프랑스와 다음 개최국인 네덜란드의 깃발이 나란히 게양되는 행사가 진행됐다.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1924년 파리 올림픽부터 처음으로 독립된 참가국으로 인정받아 출전했다.

동계 올림픽

1924년 1월 25일~2월 5일까지 프랑스 동부 샤모니에선 파리 올림픽과 연계해 몇몇 스포츠 경기가 열렸다. 그리고 이는 이후 최초의 동계 올림픽으로 인정받게 된다.

당시 16개국의 선수들이 모여 컬링, 봅슬레이, 피겨 및 스피드 스케이팅, 스키 등 16개 종목의 경기를 치렀다.

예술 부문

1924년 올림픽에선 건축과 조각, 문학, 회화,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부문에 대해서도 메달이 걸려 있었다.

1924년 올림픽에선 이후 아카데미 수상작으로도 선정된 1981년 작 영화 ‘불의 전차’의 영감이 되는 이야기도 탄생했다.

조금 각색된 부분도 있으나,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국의 전설적인 육상 선수인 해럴드 에이브러햄스와 에릭 리들의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선 에이브러햄스가 100m 결승전에서 10.6초의 기록을 세우며 먼저 금메달을 쟁취했다. 총 6명이 출전한 경기에서 1920년 금메달리스트였던 찰리 패덕 등 미국 출신의 강력한 경쟁자 4명을 제쳤다.

이후 에이브러햄스는 4x100m 계주에서도 활약하며 영국에 은메달도 안겨줬다.

한편 마찬가지로 영국 육상팀 소속이었던 리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100m 경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예선전 경기가 일요일로 예정됐었는데, 기독교 교리상 일요일은 휴식을 취하고 예배를 드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어진 200m 결승전에서 리들이 동메달을, 에이브러햄스가 6위를 차지하자 리들이 독실한 신앙심으로 물러나지만 않았어도 100m 결승전에서도 에이브러햄스와 금메달을 놓고 경쟁을 벌였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리들에겐 또 다른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400m 경기였다.

400m 결승전에서 외곽 레인에 당첨됐음에도 리들은 파리 올림픽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참고로 레인은 은퇴 이후 1945년 중국 내 일본군 수용소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생애 대부분을 선교 활동에 바쳤다.

리들은 경쟁 선수들이 바짝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끝까지 선두 자릴 놓치지 않았고, 결국 47.6초라는 세계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가장 유명한 올림픽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두 선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불의 전차’는 음악가 반젤리스가 작곡한 주제곡이 음악상을 받는 등 작품상을 포함해 198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파리 올림픽의 육상 경기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 단거리 육상 선수인 리들과 에이브러햄스뿐만이 아니다.

핀란드의 누르미와 리톨라 선수

그 해 경기에선 어쩌면 더 놀라움을 자아낸 선수 2명이 있었다. 핀란드 출신의 이들은 중장거리 육상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온갖 메달을 휩쓸며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파보 누르미는 1500m 경기에서 3분 53초 6의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5000m 경기에서도 14분 31초 2의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누르미는 크로스컨트리 개인 및 단체전, 3000m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하며 금메달 총 5개를 목에 걸었다.

한편 당시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열린 날, 폭염으로 기온이 45℃까지 치솟으면서 참가 선수 38명 중 15명을 제외한 전원이 경기 중 포기했으며, 소문에 따르면 결승전을 통과한 8명도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한편 1924년 누르미의 위대한 성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선수는 마찬가지로 핀란드 출신의 육상 선수 빌레 리톨라다.

리톨라는 10000m 경기에서 경쟁 선수를 반 바퀴 차이로 앞지르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는 한편 자신이 이전에 세웠던 세계 신기록도 12초 이상 앞당겼다.

게다가 리톨라는 3000m 장애물, 3000m 단체전, 크로스컨트리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땄으며, 크로스컨트리 개인전과 5000m에선 누르미에 0.2초 뒤지며 은메달 총 2개를 획득했다.

누르미와 리톨라는 1920년대 내내 중장거리 육상계를 지배하며 ‘플라잉 핀(‘하늘을 나는 핀란드인’이라는 뜻)’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366호 34면, 2024년 6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