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나가는 우리 문학, 그 뒤엔 이들이 있었다

‘2019 한국 문학 번역 신인상’ 수상자 8명 중 6명이 외국인

지난해 한국 문학 번역 신인상 수상자 8명 중 6명은 외국인이었다. 신진 번역가를 발굴하기 위한 신인상 응모작이 작년의 2배에 가까운 342건 몰린 가운데 수상작 8건을 결정했다.

독일어권 수상자인 마르틴 무르지글로트씨는 고등학생 때 헌책방에서 한국 문학과 처음 만났다. 독일어로 번역된 황석영 작가의 작품을 보고 “문체가 자연스럽지 않고 뭔가 빠진 것 같다”고 느끼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분단이나 전쟁을 다룬 소설이 독일 상황과 비슷해 관심이 갔다”고 했다. “북한 문학도 번역해보고 싶어요. 이혼 소송을 다룬 백남영의 ‘벗’을 읽고 깜짝 놀랐거든요.”

프랑스어권 수상자인 클로에 고티에씨는 현재 마포구에 살면서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 그는 파리 소르본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현지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김혜진의 ‘다른 기억’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신인상을 받았다. 고티에씨는 “한국어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아서 남성과 여성이 구별된 프랑스어로 번역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처럼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번역가가 번역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아카데미는 2008년 개설 당시 지원자가 28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10명까지 지원자가 늘었다. 한류 영향으로 어렸을 때 K팝을 듣고, 한국 드라마 보고 자란 세대가 문학까지 관심을 넓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권 수상자인 이토 마키씨는 드라마 ‘겨울 연가’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10년 정도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한국에 살았다”면서 “요즘은 한국 시도 좋아해서 천상병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고 했다.

’82년생 김지영’을 영어로 옮긴 제이미 챙 번역가는 “1세대는 미군이나 봉사 활동가로 들어와서 처음 한국 문학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2세대는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원어민 교사가 많았다면, 3세대는 K팝이나 드라마, 영상 매체를 통해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한 외국인들”이라면서 “또한 90년대에 태어나 이전 세대와는 다른 영어 교육을 받은 한국 학생들도 확연히 다른 영어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과 외국인 번역가가 팀을 이뤄서 번역하는 경우도 많다. 스페인어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옮긴 윤선미 번역가는 “과거엔 한국인 번역가가 1차 번역을 하고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 번역가가 문법을 교정하는 정도였다면 요즘은 반대”라고 했다. “한국어에 능숙한 외국인 번역가가 1차 번역을 하고 한국인 번역가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인지,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기 때문에 번역 질이 높아질 수밖에 없죠.”

윤부한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본부장은 “2000년대 초반엔 외국에 나가면 한국 문학은 일본어로 쓰냐 중국어로 쓰냐 물을 정도였다”면서 “한류 덕분에 한국 문학 인지도도 함께 높아진 가운데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나,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처럼 좋은 원어민 번역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했다.

사진 1: 2019년 한국문학번역 신인상을 받은 수상자들. 왼쪽부터 마르틴 무르지글로트(독일어), 장기남(중국어), 클로에 고티에(프랑스어), 박정효(스페인어), 이토 마키(일본어)씨.

사진 2: 한국문학번역원 번역 지원 건수

2020년 1월 24일, 1155호 2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