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광장 (2)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2

로마시내 한복판 비아 델 코르소와 테베레 강 사이에 남북으로 246m, 동서 폭이 65m의 공터인 나보나 광장. 원래 용도가 전차경주장이었다는 것을 항공사진으로 지난 호에서 확인해보았다.

(사진 위) 북쪽에서 바라본 나보나 광장의 화려한 분수와 조각들

로마 시민의 중요한 오락경기인 이륜전차 경주, 또 이를 위해서 마련되었던 타원형 경기장 터는 나보나 광장 외에도 로마 제국 내 곳곳에서 지금도 발견된다. 나보나 광장이 남북 길이 광장이라면 동서 길이 광장의 제일 좋은 예는 콘스탄티노플의 히포드롬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의 광장이라는 뜻의 이 경기장은 동로마제국의 유서 깊은 성전 <하기야 소피아>의 앞 마당구실을 하며 동서로 길이 400m, 폭이 120m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당시 동로마 제국 시민이 이륜차 경주에 얼마나 열광했는지는 지금 남아있는 히포드롬의 스케일로도 짐작할 수 있다. 40열 관객석에 10만 명까지 관중을 수용했던 거대한 경주장에서는 한때 응원단의 응원 열기가 과열되어 경기 후 폭동으로 번진적도 있었다. 그 폭동으로 동로마제국의 상징인 <하기아 소피아> 사원이 전소 되었던 적이 있었다. 바로 황제 유스티아누스1세(AD 537)시절 니키의 대란이었다. 그 일로 하기아 소피아 성전은 두 번째로 재건되어 지금 바라보는 모습은 그때 새로 지은 건축물의 모습이다.

광장은 로마시대 경주장이자 기독교인의 순교지

다시 서로마 제국의 전차경주장이었던 나보나 광장으로 돌아가 보자. 광장 서쪽면에는 중앙에 바로크시대의 성 아그네스성당이 자리를 잡아 그 무게를 더하고 있다. 동로마제국의수도 콘스탄티노플의 히포드룸에 <하기아 소피아>가 지어졌다면 나보나에는 <성 아그네스>가 지어진 셈이다. 이탈리아 바로크의 최고 건축가인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Sorenzzo Bernini, 1598-1680)와 쌍벽을 이루었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의 작품이기도 한 이 성 아그네스성당(Sant, Agnese in agone, 죽음의 고통에 빠진 성 아그네스)은 로마시대 순교한 성 아그네스를 기념하기 위한 성당이다. 그런데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한 성전을 굳이 경기장 터에 자리 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로마의 경기장은 그리스 경기장과는 달리 오락과 흥행거리를 위한 경기장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때로는 기독교인들의 박해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공개적인 처형이 좋은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잔혹하게 처형되거나 사나운 맹수들에게 잡혀 먹히는 그 모습이 충분히 로마 시민들에게 스릴 있는 오락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의 황제들은 종종 기독교인 박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셈이다.

성 아그네스 성당의 돔과 종탑 : 오빌리스크 뒤에서 보이는 종탑에서 3층은 4각형, 4층은 변형이 심한 원형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바로크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성 아그네스성당은 로마시대에 바로 이경기장에서 처형된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성 아그네스 성당 터는 그녀의 순교지인 셈이다. 아그네스는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인 3세기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시절 귀족의 딸이었다. 당시 황제는 귀족의 기독교 전파에 대한 충격으로 잔인한 본보기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따라서 가급적 잔인한 처형방법을 골랐고 처형 전 여성에게 최대의 수치심을 느끼게 할 생각으로 모든 시민이 보는 가운데 전신 나체로 처형장에 끌려 나오도록 했다. 그런데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끌려 나오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갑자기 자라나기 시작해 그녀의 온몸을 감싸 수치심을 막아주었다. 결국 그녀는 참수형으로 처형은 당했지만 치욕스러운 일은 하늘의 도움으로 피할 수 있었다. 지금 볼 수 있는 성당은 이러한 로마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그녀가 벌거벗겨져 세워졌던 그 자리에 1653-1657에 지은 바로크식 성당이다. 내부에 들어가 보면 깊이와 폭이 비슷한 중앙집중식 성전이다. 외부모습을 보면 전면에는 그리스식 삼각 페디먼트를 만들었고 중앙에는 르네상스의 전통을 살려 원개지붕을 만들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바로크를 기념하는 건물임을 알아보게 하였다.

좌우에 위치한 4층 종탑이 층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불규칙한 장식과 변형을 보이는 것이 그러한 예이며 전면 아키트레이부가 단절된 면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은 예이다. 또 전면이 타원형으로 움푹 패인가도 바로크 양식임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정면 앞에 위치한 베르니니의 4대강의 분수와 어울려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최고의 조각가가 만난 광장임을 실감나게 한다. 살아생전에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이 오늘날 로마에서 최고의 관광상품(?)인 <나보나 광장>이라는 공동작품을 함께 남긴 셈이다.

베르니니의 재능은 타고난 재주

다양한 포즈의 인체조각과 거기에 어울려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들, 폰타나 데이 피우미 분수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분수의 주인공 베르니니는 조각과 건축에 있어서 천부적 재능을 유감없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천부적인 재능도 아버지가 이미 이름난 조각가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왕 베르니니의 분수를 감상하였으니 그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아들보다 명성은 얻지 못해서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로마에서 그의 유작을 찾은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역시 로마의 관광객들이 꼭 한번은 들리는 곳에 있지만 잘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알고 나면 꼭 눈여겨 볼만하다. 바로 그 유명한 스페인 광장이다.

2020년 3월 6일, 116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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