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의 향토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4) 향토영화(Heimatfilm)

향토영화(Heimatfilm)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영화 장르이나 독일에서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일반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장르이다.

이달 문화세상에서는 첫 번째 순서로 향토영화를 소개하고, 이어 독일 다큐멘터리영화 전반과 다큐멘타리 감독으로 잘 알려진 재독감독 조성형 감독의 작품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도록 한다.


조성형 감독

현재 Sarr 조형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조성형 감독은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계에서는 이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중진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교수이자 재독한인 영화감독이다.

조성형 감독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6년 발표된 그의 첫 장편다큐멘터리영화 ‘Full Metal Village’를 통해서이다. 다큐멘터리영화와 향토영화(Heimatfilm)의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영화의 새 지평을 연” 영화, “영화관에서 상영하기 좋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 “독일인들이 미처 모르던 독일인의 고향을 보여준다”는 호평을 받았다.

조성형 감독은 이 작품으로 헤센 주 ‘헤센영화진흥원의 최고영화상’,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 영상작품 진흥협회의 최고기록영화상’,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영화예술전시회의 기록영화 부문 길드영화상’ 그리고 독일 최고의 다큐멘터리영화제인 ‘막스 오퓔스 영화제의 막스 오퓔스 대상’ 등을 수상했다.

특히 1980년부터 시작한 ‘막스 오퓔스 영화제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기록 영화로 대상을 받았고 ‘외국인 최초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다.

또한 조성형 감독은 제59회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비경쟁) 에 초청되었으며, 2007년에는 12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돼 금의환향하기도 했다.

또한 2009년에는 한독가정 세 가정이 한국 남해마을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Endstation der Sehnsuechte’를 발표하였다. 당시 독일 전역에서 상영된 이 작품은 재독동포들에게 조성형 감독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고 고향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재독 동포의 가슴속에 남아 긴 여운을 남긴 작품이다.

2016년에는 다큐멘터리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을 발표, 개봉 당시 독일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고, 프랑크푸르트 리히터 국제영화제 최우수상을 비롯 2016년 크고 작은 독일 내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부산 출신인 조 감독은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미디어학, 미술사, 철학을 공부했다.

1997년 다큐멘터리 ‘문(門)들’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9년과 2000년에는 오펜바흐

산업디자인대학에서 영상 수업을 받았고, 각종 영화 제작에 10여 년간 참여했다.

이제 그의 대표작 ‘Full Metal Village’를 살펴보도록 하자

Full Metal Village

해마다 7, 8월에 독일 북단에 위치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조그만 시골마을 바켄(Wachen)에서 3일간 개최되는 국제적인 헤비메탈 페스티벌 ‘Das Wacken Open Air’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페스티벌 직후 외지인들이 모두 떠난 후에 왁자지껄 웅성거리는 현장음이 그대로 살아있는 가운데 마을사람들이 대대적인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 다음 본 영화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업에 종사하는 마을사람들의 일상이 앞으로 있을 마을의 거대한 헤비메탈 페스티벌 행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며 인터뷰를 통해 조각조각 드러난다.

바켄에서의 축제로 인해 조용하던, 때로는 지루해 보이던 시골의 일상이 분주하며 활기찬 모습으로 변해가며, 마을 전체의 풍경이 동일한 시간대에 정반대되는 비동시성의 모습으로 나열된다. 영화는 헤비메탈 페스티벌에서 행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형폭죽 하나가 쾅 하는 굉음을 내며 밤을 화려하게 수놓는 것으로 어떠한 결말을 맺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페스티벌 직후 외지인들이 모두 떠난 후에 마을사람들이 대대적인 청소를 하는 장면으로 열림과 닫힘이 교묘히 혼재된 채 끝을 맺고 있다.

조성형 감독은 영화제에서 수상 후.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Full Metal village>는 1800명 정도가 사는 무척 작은 마을 ‘Wachen’이란 곳의 이야기다. … 이 마을에서는 매년 유럽에서,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큰 헤비메탈 야외음악축제가 열리고 헤비메탈 애호가들이 4만 명 정도가 모여든다. … 신기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다른 문화가 부딪히는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두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했다. 마을주민들과 헤비메탈 애호가들이 만나고 사귀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 … 난 바켄마을에서 공존의 모형을 보았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공존의 모형이다.”

조감독은 ‘Full Metal Village’에서 바켄 고향의 자체문화와 이와 대립되어 경계 지어질 수 있는, 물밀듯 몰려오는 타문화와의 열린 공존의 방식이 페스티벌이라는 소통의 매체를 통해 탐색되고 있다. 조그만 바켄 마을은 ‘바켄 오픈 에어’ 페스티벌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홀로 고립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이런 바켄의 느긋하며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풍경과는 정반대되는, 묵직한 전자기타 헤비메탈의 거침없는 음악을 배경으로 밀물이 밀어닥치듯 급속한 속도로 몰려오는 것은 고향 반대편의 이질적인 것들이다.

거대한 메탈의 고층 무대구조물들, 플라스틱 간이화장실들 그리고 검은 티셔츠, 검은 바지, 검은 가죽재킷, 귀걸이와 코걸이 등 갖가지 피어싱과 화려한 문신을 몸에 아로새긴, 피부와 인종을 달리하는 다양한 젊은이들이 밀려온다. 금방이라도 충돌하여 폭발할 듯한 상이한 문화는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고향의 표상으로서의 바켄마을에서 떠들썩한 축제 가운데 평화롭게 공존한다.

마을 사람들도 풀 메탈의 젊은이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함몰되거나 흡수됨이 없이 그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실현하면서 서로 어우러지고 있다. 그렇게 페스티벌을 함께 즐기는 방식은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서로서로를 그 자체로 인내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다름을 통해 적대적 차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차이로 인정하고, 이 다름을 다양하고 풍요로운 삶을 이끌 수 있는 상호문화적 대화의 가능성으로 삼는 것이다. 상호문화(Interkultur)는 공존하는 집단들 사이에서 추구되는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고, 상호문화성은 개인 각자의 주관이 다르지만 공통된 주관성이 존재하듯이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각각의 문화들 사이에도 공통된 보편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1190호 23면, 2020년 10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