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39)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 ③

조지 오웰이 이미 TV를 일방적인 정치 도구로 예고하였듯이, TV는 보급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송신상의 일방적으로 현대인의 사고를 규정하는 위압적 존재로 군림하였다. 스크린과 방송망이 세계를 지배하는 가운데 현대인은 상상력과 표현력이 위축되고, TV이미지는 현실을 반영한다기보다는 현실의 일부가 되어 이미지 세상을 구축하여 온 것이다.

비디오 예술은 TV의 이와 같은 소통상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용 TV’로 등장하였으며,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은 관객을 작품에 끌어들임으로써 상호적인 매체’참여TV’가 되려는 예술적 노력이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호에서는 백남준의 중기시대로 볼 수 있는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 특성을 살펴보도록 한다.

중기 : TV설치(새로운 매체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1974년부터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설치 작업을 다양하게 진행했으며, ‘TV 부처’,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TV 정원’, ‘TV 물고기’ 등등 많은 대표작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비디오 아트와 자연물을 음악적으로 혼합하여 테크놀로지로 물든 현대 사회의 새로운 혼합적 생명력을 추구했다는 평판을 얻었다.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최된 ‘백남준 회고전’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가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사회에 많이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뉴욕 WNET 방송국, 보스턴 WGBH 방송국과 협력하여 자신의 비디오 아트를 공중파 TV에서 방송했고, 이는 예술 세계의 영역 확장이었다. 나아가 1984년 1월 1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를 뉴욕 WNET 방송국과 파리 퐁피두 센터를 연결한 실시간 위성 생중계로 방송하여 전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위성 아트에는 로리 앤더슨, 피터 가브리엘,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이브 몽탕 등이 참여했으며, 전 세계 2천 5백만명(재방송 포함)이 시청하였다. 이후에도 ‘위성 아트’ 3부작으로 명명된 ‘바이 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등이 이어졌다.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은 그 표현과 양식에서 어떠한 변화를 보인다 해도 항상 관객과의 상호 소통을 다루는 참여의 문제로 귀결된다. 참여 TV로 고안된 초기의 ‘장치된 TV’나 말기의 위성 작품들은 물론, 가장 형식주의적인 테이프 작품들도 그 색다른 이미지의 효과가 관객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참여 TV의 수행이었다.

백남준의 작업은 기술의 진보와 그 발전적 양상을 함께 하기 때문에 기술 발전에 따른 시대적 분류를 가능케 하고 있다. 즉, 60년대에는 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TV수상기로 작업하는 ‘장치된TV’로 시작하여 ‘수상기 설치 작업’으로 발전하고, 70년대에는 휴대용 비디오 사용과 함께 비디오 신디사이저의 도움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테이프 제작에 집중하고, 80년대에는 보편화된 인공위성의 활용과 함께 그의 우주 작업이 전개된다.

TV설치 예술

1963년 부터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회-전자 텔레비전>은 백남준의 첫 개인전이자 비디오 예술의 문을 여는 효시적인 전시회였다. 백남준은 이 전시회를 통하여 전자 비전으로 전자 음악의 영역을 확장시키겠다는 그의 복합 매체 이상을 실현했을 뿐 아니라, 전자 비전을 비디오 예술로 구현시킨 최초의 참여 TV인 ‘장치된 TV’를 제작, 전시함으로써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로 등단하였다.

백남준의 장치된 TV는 주로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경시켜 방송 이미지를 왜곡시키거나, 브라운관을 조작하여 스크린에 추상적 선묘를 창출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그는 그 조작 과정에서 예술적 의도나 기술적 테크닉을 배제하고 순전히 기계적 과정에만 의존하여 예측할 수 없는 비결정성의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었다.

부퍼탈의 13대의 장치된 TV들은 우연 작동에 의해 각기 다른 13종류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보여짐으로 문학이나 공연 같은 시간 예술에서는 불가능한 동시적 시각을 제시하였다. 결국 동시에 제시된 13개의 이미지들은, 그 미묘한 차이들을 함께 보이는 동시 시각적 감흥을 유발함으로써 기존의 지각 경험과는 다른 새로운 지각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1975년에 선보인 <물고기가 하늘을 날다>는 20개의 수상기들이 바닥을 향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색다른 설치 작업이었다. 비디오 테이프가 방영하는 물고기, 비행기, 댄서들의 나는 동작을 보기 위해 관중들은 바닥에 누워야 한다. 물고기를 공중에 띄워 문맥을 벗어나게 하고, 앞을 보는 대신 위를 보게 하여 감상의 시각을 바꾸고, 또한 여러 장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동시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이 작품은 몇 차원에서 관객의 지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같은 해의 <비디오 물고기>에서는 물탱크에 담긴 산 물고기와 투명한 물탱크 뒤에서 어른거리는 비디오 영상 물고기를 병치하여 일종의 전자 수족관을 만든다. 백남준은 여기서 산 물고기와 전자 물고기를 함께 놀게 하여 자연과 문화의 조화를 시도할 뿐 아니라, 물고기의 영상적 재현과 현실적 제시를 통하여 재현과 제시라는 현대 미술의 미학적 문제를 부각시킨다.

1986년에 작고한 요셉 보이스에게 바치는 <보이스/보이스>(1987)는 50개의 수상기가 하나의 거대한 사다리꼴 화면을 이루는 기념비적 규모의 설치 작업이다. 새로운 확대 기술이 보이스의 이미지를 사다리꼴 대형 화면에 클로즈업시키고, 다양하고 화려한 이미지들이 무기체적 구조물에 활력을 불어넣어 하나의 전자 생명체를 만든다. 관객은 이러한 압도적인 전자 환경 속에서 눈으로 본다기보다는 몸으로 느끼는 새로운 지각경험을 맛보는 것이다.

다다익선(1988)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하여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에 설치한 <다다익선>은 무려 1,003개의 수상기로 만든 탑 모양의 초거대 조형물이다. 3개의 테이프가 방영하는 이미지들을 최신 기술을 사용하여 반복, 병치시킨 이 기념탑은 그 규모뿐만 아니라 시각적 효과에서도 생태를 변화시키는 마력의 탑으로 변한다. <다다익선>에서는 복수 이미지들의 동시적 시차적 방영으로 시각적 다양성을 산출하다.

이렇게 이미지의 파편화 혹은 복수 화를 통하여 미시적 시각을 제시하고, 또 단일 이미지의 확대를 통하여 거시적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백남준은 새로운 지각 형태를 개발하고, 참여 TV강령을 수행하여왔다.

1208호 23면, 2021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