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아 아동을 소개 합니다

한국 기독교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 분의 목자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을 추천할 것입니다. 오늘은 손양원 목사님을 함께 회고해 보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문둥병자들을 참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의 발바닥 속에 들어 있는 썩은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면서 그들의 괴로움을 덜어주려고, 무슨 일이던 마다하지 않고 다 하셨습니다. 1948년도에 발생한 여순 반란사건 때, 공산당이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잡아서 총살시켜 버렸습니다. 나중에 국군에 의해서 공산당 반란군이 진압되자,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총살시킨 공산당은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때, 손양원 목사님은 판사에게 청원을 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나의 두 아들을 죽인 학생을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내 아들을 죽인 학생을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데려다가 나의 아들로 삼고 회개시켜서 새사람이 되게 하겠습니다.

감동을 받은 판사는, 사형선고가 내려진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에게 내려진 총살형을 취소하고, 손양원 목사님의 청원대로, 그 공산당 청년을 손양원 목사님에게 맡겼는데, 손 목사님은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마를 진짜 자신의 양자로 삼아 버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안재선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에 실제로 대한민국의 남과 북의 전쟁 때 일어났었던 실화입니다.

새사람이 된 안재선씨는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에 감동되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참으로 열심히 착하게 살아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흘렀는데도, 안재선은 공산주의자라는 낙인과 함께,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흉악한 살인마라는 꼬리표가 어디를 가도 따라다니면서 배척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은 양아들 안재선을 무척이나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할 수없이 양아들 재선씨를 서울에도 보내보고, 부산에도 보내 보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는 빨갱이요,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로 몰려서,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할 수없이 안재선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은둔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경선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안재선 씨가 죽기 얼마 전, 안재선 씨는 아들 경선을 불러놓고,“너는 꼭 하나님의 종이 되어라” 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아들 경선씨는 고등학교 3학년 겨울에, 책을 읽고 나서야, 그 책의 주인공이 손양원 목사님과 자기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던 그는 <왜? 내가 목회자의 길을 가야하지? 왜? 내가 아버지의 짐을 저야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유언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경선씨는 세상에서 방황하면서, 자학과 자포자기의 허망함속에서,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았습니다.

어느 날, 가슴이 몹시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한 쪽 허파가 다 썩어서 잘라내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 침상에서 지내고 있던 어느 날,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회심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지 못한 벌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라도 아버지가 못다 하신 일을 해야겠다> 라고 결심하고, 신학을 공부하고 결국,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목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아무리 파하려고 해도, 결국에는 목사가 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제가 목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저를 향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목사가 되기 전에도 전도지를 들고 나가서 예수 믿으라고 외치고 다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목사가 된다는 것은 너무도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1986년 6월 어느 여름날, 찝차를 새롭게 구입해서 고속도로를 한 번 멋있게 달려보겠다고 마음먹고 아우토반 입구로 진입 하는데, 마주오던 자동차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해서 나를 향해 달려오더니, 정면충돌을 하는 것입니다. 가이스터 화러(Geister Fahrer)였습니다. 상대방은 두 다리가 부러졌는데 우리 가족들을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완전한 상대방의 실수였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89년 8월9일, 도르트문트에서 프랑크푸르트를 향해서 오던 중, Siegen 근처를 지날 때였습니다. 핸들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비행기가 곡예를 하는 것처럼, 제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고속도로 바닥에서 대굴대굴 굴렀는데,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사고였습니다. 저는 3일 동안 완전히 죽은 사람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고도 저의 과실이 아니었습니다. 내 뒤를 따라오던 다른 차가 나의 차를 뒤에서 받으면서 제가 운전하던 자동차는 균형을 잃어버리고 때굴때굴 구르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천둥 번개와 비, 바람이 무섭게 불어대던 날, 제가 쓰고 있던 우산에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우산이 불덩어리가 되었는데도 저는 멀쩡했습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역시 천둥, 번개와 벼락과 비바람이 몹시 불었는데, 저의 집 정원에 20m가 넘는 나무 4구루가 벼락을 맞는 순간 나무의 목이 부러지면서 저의 집을 덮쳤습니다.

그때 저에게 깨달음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종으로 부르고 계시는데도, 내가 순종하지 않으므로, 몇 번씩이나 신호를 보내신 것이었구나! 그러한 연유로 저는 목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제 나이가 47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2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는 인생은 참으로 복된 인생입니다. 그러나 한없이 우둔한 저는 그렇게도 많은 매를 맞고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76세가 되어가는 저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고 외치며,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안지아 아동의 아버지는 사업실패로 인한 파산으로, 2012년에 이혼하였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가버린 후, 지아는 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라고 있지만, 아버지의 수입이 전혀 없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동은 2020년 3월이면 중학생이 됩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조용하고 야무진 성격으로 일찍 철이 들었으며,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시는 아빠를 위로할 줄도 아는 속이 깊은 아동입니다.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장래에 훌륭한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고난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에 큰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교민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은 안지아 아동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2020년 1월 31일, 1156호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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