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158

유럽 건축의 역사를 둘러보다: 2부

독일과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양한 건축 양식이다. 한국에서는 궁궐이나, 사찰 등의 문화유적은 그 건축 양식이 각기 일정한 데 반해, 독일과 유럽의 교회나, 궁전, 대저택의 건축 양식들은 그 건축 시기에 따라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특별히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문화사업단에서는 다양한 유럽 건축의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그 기초가 된 고대 그리스, 로마의 건축을 살펴보고, 이후 이른바,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로코코’ 양식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건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서양 고대의 건축 2 :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 건축(2)

독일의 로마네스크양식의 교회 ➀

로마네스크 건축은 900년경에 시작되어 12세기 후반까지 계속된 초기-중기 중세 건축으로 알프스 이북 지역의 전통 목조건축과 로마의 석조건축을 합한 새로운 건축술을 기본 구조로 삼아 교회가 중심을 이루었던 기독교 양식이다. 교회에서는 카롤링거 왕조 때 자리 잡았던 확장, 발전된 라틴 크로스를 기본 평면으로 삼아 세 개의 랑으로 구성하고 그 위에 석조 리브 볼트 천장을 덮는 발전이 있었다. 이 가운데 로마의 전통은 석조 벽체와 볼트 천장이며 나머지는 모두 카롤링거 왕조에서 초기 로마네스크를 거치며 새롭게 발명된 것이다.

볼트 천장을 리브 볼트 천장으로 발전시킨 점과 이것을 세 개의 랑 구성과 한 몸으로 유기적 구성을 이루게 한 점은 로마와 중세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이다.

초기 로마네스크는 900년경에 프랑스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어 11세기 중반까지 계속되면서 로마네스크 건축의 기본 구성을 완성시켰다. 프랑스는 900~1050년, 독일은 950~1060년으로 보는 것이 통례이다.

두 나라를 가른 결정적 차이는 지붕 구조였다. 독일이 전통적인 목조 평천장에 머문 데 반해 프랑스는 석조 볼트 천장을 도입해서 정착시켰다. 중세 건축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가 석조 리브 볼트 천장인 것을 보면 프랑스가 한 발 앞서 나갔다 할 수 있다.

독일 로마네스크 성당의 초기 양상을 잘 보여주는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성당

힐데스하임에 있는 성 미카엘 성당(Michaeliskirche, Hildesheim)에 대해 건축사가 니콜라우스 페브스너(Nikolaus Pevsner)는 “진정한 로마네스크 외관이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사례”라고 평하고 있다.

이 성당은 힐데스하임의 주교 베른바르트가 1010년에 착공하고 1022년에 미완성인 건물을 봉헌했으나, 완공된 것은 1031년이었다. 시기적으로 독일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으로, 독일 로마네스크 성당의 초기 양상을 잘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성당의 하나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외관은 모두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사면체, 원기둥 등 기하학적인 형태가 단순하게 조합되어 있다. 중심에는 높고 커다란 부분이 있고, 이보다 낮고 작은 부분이 차례로 더해진다. 전체는 가산적(可算的) 구성이다. 이런 구성 방식은 전체를 나누어가는 고딕 성당과는 반대다. 이렇게 하여 내부 공간에는 차별화된 새로운 형태가 생기고, 외부에는 매우 다양한 구조물이 땅에 뿌리를 내린 듯이 묵직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이 성 미카엘 성당 외관은 이런 로마네스크의 입체 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동쪽과 서쪽 교차부 위에는 두 개의 큰 탑을, 동과 서의 수랑 끝에는 네 개의 탑 등 모두 6개의 탑을 세웠다. 큰 탑 밑으로는 수랑(袖廊)과 반원 제단의 입체 등이 차례로 낮게 덧붙여져 있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가장 큰 발명은 성당의 동쪽 끝의 제단 부분을 새롭게 배열한 것이었다. 첫째, 원형 제단 앞 교차부에 성가대석(choir, 또는 성단소 chancel)이 놓여 중랑 쪽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둘째, 원형 제단을 감싸며 사람의 이동을 받아들이는 주보랑이 놓였다. 셋째, 산 비탈레 대성전처럼 전례에 필요한 분리된 방을 원형 제단 좌우에 두었다. 그렇게 되면 이 두 방은 좌우 측랑 열의 끝에 놓이게 되어 회중석이 3랑인 평면이 된다.

이것이 외부의 높은 탑과 함께 바실리카식 성당에 ‘로마네스크’라는 이름이 붙게 되는 요인이다.

평면을 보자. 동쪽 끝 반원 제단(도면의 오른쪽)과 서쪽 제단 앞에는 각각 횡랑이 지나가며 교차부(crossing)를 만든다. 이 교차부에는 성가대석이 놓였다. 그래서 이 성당에는 성가대석이 두 개 있다. 서쪽 끝 지하 경당에는 베른바르트 주교의 유해를 안치했는데, 정교한 교차 볼트로 덮인 홀에 주보랑을 두었으며, 그 위의 원형 제단 위로 거대한 높이의 공간이 솟아 있다.

동쪽의 반원 제단 좌우에는 두 개의 반원형의 공간을 따로 더 두었다. 동쪽과 서쪽의 횡랑은 교차부와 두 수랑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 결과 회중석은 대(大) 아케이드로 세 개의 ‘랑(廊)’으로 나뉘었다. 대(大) 아케이드는 사각형의 피어 사이에 두 개의 원기둥이라는 형식을 반복하고 있다.

정사각형 교차부에는 폭과 높이가 같은 네 개의 아치를 붉은 돌과 밝은 돌이 번갈아 쌓아 그 경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중랑, 수랑, 제단 등 네 방향으로 열려 있으며, 구조적으로 안정되어 상부에 높은 탑을 세울 수 있다. 이를 분리형 교차부라 부르는데, 이 성당은 이런 분리형 교차부를 최초로 보여주었다.

이 교차부의 정사각형은 회중석, 남북의 수랑에서 반복되어 성당의 주요부가 교차부의 정사각형을 기본으로 지어졌다. 이는 독일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중앙 유럽의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도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다.

다만 이 성당에는 로마네스크의 큰 특징인 수직적 강조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아케이드 위는 고창이 있을 뿐 하얀 벽면이 넓게 확장되어 있어서, 아케이드, 흰 벽, 고창이라는 수평 띠만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더구나 천장도 편평한데, 독일에서 유일한 평평한 성당 천장이다.

1361호  23면, 2024년 5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