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 (1)

류 현옥

후덥지근한 습도 높은 한여름이다.

가영이는 수영장에나 갈까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영복을 찾아서 가방에 넣었다. 그런 다음에는 수건을 손에 들고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가방 챙기는 일을 착수하지 못한 채발코니에 나가서 서성거렸다.

왜인지 알 수 없는 불안이 뱃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혼자 수영장에 간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오래전부터 익숙한 불안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수영장의 캐비닛에 소지품과 옷을 넣고 풀에 들어가는 순간에 일어나는 근거 없는 불안이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한 것으로 기억 속에 잠재하다가 순간 다시 일어나곤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수영을 가기위한 준비 도중에 끼어들곤 했다.

이런 느낌은 그녀의 심신에서 의지력을 앗아가면서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한없는 외로움이 그녀를 끌어안아 쓸쓸하게 만든다. 더운 여름날 야외 수영장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잔디에 누워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온몸에서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서 일어설 때 그녀를 엄습하는 같은 불안이다.

동행한 친구가 있어 “그대로 두고 갔다 와! 내가 여기 누워서 지키고 있을 테니” 할 때면 그대로 물속에 뛰어 들어갈 것이다. 별거 아닌 소지품 몇 개를 잔디 위에 펴고, 누웠던 담요 위에 그대로 버려둔 채 가야 할 때의 뒤숭숭함과 같은 것이다. 수영장 건물에서 불이 난다던지 어떤 사고로 급하게 피신을 해야 할 경우, 그녀는 반나체로 거리를 달려 나가야 할 텐데, 집 열쇠가 수영장 캐비넷에 있고 잠겼으니 집으로 달려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기우 같은 것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는 이 낯선 대도시에 도착하여 정착한 후 겁 없이 자주 근처의 수영장으로 갔었다. 그 당시는 공포심보다 오히려 외로움이 동행하여 유독 혼자 수영장에 갈 때면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초라함을 느끼기도 했다. 세월이 갈수록 외로움이 짙어지고 겁이 생기고 공포심이 강하게 마음속을 채우곤 했다. 이런 경우 한번 생기기 시작하여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 어두운 불안에 심취하면 시간을 낭비하고 뒤이어 하루를 망치게 된다는 것도 안다.

한번 빠져 들어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경험도 여러 번 했다. 이미 시작된 불안이 더 강하게 발목을 잡기 전에 털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머릿속에 기어들며 외치고 있었다.

“훌훌 털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아무래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으니 야외 풀에는 안 가 는 게 좋아!”

그녀는 스스로에게 혼잣말 채찍질을 했다. 목적 없이 시내에 나갔다. 상가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이것저것 기웃거리는데 칸트 영화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샬로텐부르크에 살 때 자주 들어간 영화관이다. 그러고 보니 시내 복판에 살 때가 훨씬 더 문화생활을 한 것 같다. 그녀는 영화제목을 보지도 않고 무작정 영화관에 들어갔다. 7개의 작은 영화 상영관이 있는 곳이다. 그녀는 입장권을 사기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뒤에 섰다. 그녀 앞에선 노부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집에서 나오기 전부터 영화 내용에 대해 옥신각신한 것 같고 계속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감독이 몇 살이나 되는지 몰라도 죽음을 앞둔 노인네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 고 막무가내로 노인들의 이야기를 영화한 것일 텐데 감동을 하게 될까?”

부인의 말이다.곧 보게될 영화는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한 치매에 걸린 아내를 죽이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이라는 것을있는 것을 가영 이도 알게 되었다.

토론의 대상이 될 만도 한 영화라는 것을 남편이 강조했다.

“…깊은 잠에 빠진 아내를 베게로 얼굴을 눌러 질식시키고 난 후의 살인자 마음으로 더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정당방위 같은 거지. 더 이상 같이 살수 없으니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한 것으로 결국 자신도 같이 죽는 거나 마찬가지지.”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살인 한다는 도덕성이 법의 한계를 넘어서서 오직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살인을 감행한다고 정당화 해보는 것같은데 …글쎄?“

“살인은 살인이야! 살인까지의 단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 지가 영화의 본질인것 같기도 하고 .. 관객들에게 오랜 인생의 반려자를 죽이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심각성을 보여주는 거겠지.”

가영은 고개를 숙인 채 경청했다. 대열에서 잠시 빠져나와 사방을 돌아보며 사람을 찾는 척 하며 슬쩍 노부부를 훔쳐보았다. 둘 다 치매 환자같이 보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들을 잊게 되는 것을 경험하며 치매에 대한 기우로 이 노부부는 예방책을 찾는 지도 모른다. <망각은 인생을 씻는 비누!> 라고 하지 않던가! . 좀 잊어가며 살면 어떤가? 세상에 잊었다고 큰일 날 일이 뭐 있을 것이라고. 애써 온갖 일들을 잊지 않고 기한에 쫓겨 아등바등 처리하며 살다가 사라질 운명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이 들어 시나브로 약해지는 기억력에서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치매에 걸리면 남편 얼굴은 물론 거울속의 자신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니 모두 겁을 낸다. 평생을 함께 산 노부부로 동고동락을 같이한 동반자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낯선 사람으로 대하는 병에 대한 방비대책은 없을까? 모든 것을 다 잊은 부인을 위해서였다기보다 아내가 알아보지 못하여 잃어가는 자신의 존재를 붙들기 위한 시도로 부인을 질식시킬지도 모른다. 같은 운명의 관광객들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법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인은 한평생을 한솥밥을 먹으면서 산 반려자를 베개로 질식시킨다? 그럴 권리가 있나? 자신의 일부인 아내가 치매로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 음식도 물도 삼키지 못하여 굶어죽는 단계까지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이 아닐까?

영화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서둘러서 출구를 나서는데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은 품고 있던 구름속의 물을 대책 없이 대도시의 지붕위에 쏟아 붓고 있었다. 빗속을 뛰어서 지하철로 가는데 소낙비를 맞으며 길거리에 누운 한 사람과 우산을 펴서 빗줄기를 막아주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서있는 사람 중 하나가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앰뷸런스를 부르고 있는 듯 했다.

그녀가 다시 바쁜 걸음걸이로 지하철을 향하는 데 길에 누운 사람이 손짓을 했다. 그녀를 알아보고 하는 듯 했다. 그녀는 마음이 바빴다. 비 쏟아지는 길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서성거리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으며 걸음걸이를 재촉하는데 누운 사람이 그녀를 불렀다.

“영아, 나를 알잖아? 그냥 가지마!”

그녀가 돌아보았다. 우베였다. 오랫동안 못 본 그였지만 그녀 역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런, 아니, 우베가 무슨 일이야?”

“갑자기 두 다리가 말을 안 들어 주저앉았다가 일어나려다 다시 쓰러졌어!”

“이제 곧 앰뷸런스차가 올 겁니다. 아시는 분 같은데 우리는 가야하니 여기 좀 있어 주실래요?”

두 남자는 그 자리를 떠날 자세를 취했다. 가영은 당황했지만 이미 목덜미가 잡혔다. 우베! 그와의 과거가 남긴 불신이 그녀를 패닉 상황으로 몰아갔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젊은 남자들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잠깐만요, 약속이 있어 가야 해요! 누군가가 병원에 같이 가야 할 것인데?“

“우리는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날 수가 없어 도와준 것뿐이에요. 아시는 분이니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두 남자는 우산의 대열 속으로 사라졌다. 빌머스토프 거리 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가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보호자가 되었다. 앰뷸런스 차 안 그의 옆에 앉았다. 십 년 전에 결별한 후 한 도시에 살면서도 상면하지 않은 그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꼴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우베와의 재회가 중단된 인연의 재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가영은 안절부절 했다.

지난 세월은 우베의 비수같이 날카롭던 눈빛을 흐려놓았다. 머리 위에는 셀 수 있을 만큼의 몇 개 않 되는 머리카락만 남았고 이미 십 년 전에 자리 잡은 대머리의 면적은 뒤통수 쪽으로 면적을 넓힌 모습이다. 뾰족해진 광대뼈 아래로 홀쭉해진 두 볼이 골을 파고 있어 중병환자의 모습이다. 한 도시에 살면서도 부딪친 적이 없는 우베를 다시 만난 것은 운명인지도 모른다. 어수선하게 시작한 하루가 정해진 제 길을 가고 있는 듯도 했다. 앰뷸런스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였고 그가 치료실로 옮겨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다시 집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집착했다. 의미 없는 그와의 대화에 화가 끓고 있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그런대로 잘 지내”

“학교는 끝냈어?”

“벌써 몇 년 전인데? 잘 끝내고 사학을 시작한지 3학기에 다니고 있어”

“사학이라니?”

남자 간호사 두 사람이 와서 우베가 누운 들것을 밀고 치료실로 향했다. 작별할 여지도 없어 그냥 손을 들어 흔들며 그가 진료실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오히려 잘 됐지!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다시 끈이 연결 될지 모르니 다행스런 일이야. 그녀가 일어나 출구 쪽으로 걸어 나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여보세요, 잠시만요. 우베 림베르그 씨 보호자 아니세요?”

“나는 보호자는 아닌데요.”

“림베르그 씨가 부탁해서 데리려 왔어요. 보호자가 필요하거든요.”

“저는 친지가 아니고 우연하게 지나치다 붙들린 것뿐이에요. 보호자를 부르세요!”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데요.”

자영은 간호사를 따라 치료실에 들어갔다. 우베는 진찰 침대에 누웠고 챠트를 든 젊은 의사가 자리를 권했다.

“환자의 증상으로 봐서 약물중독인 것 같아서 친지의 정보가 필요하거든요.”

역시 그랬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었다. 그녀는 영화관 앞에서 길에 누운 10년 전에 헤어진 남자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계받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우베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젊은 의사는 검사실로 보낸 혈액검사의 결과가 오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투덜거렸다. 수액공급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원인은 검사결과가 와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를 위한 정보로 주치의사의 의견도 필요한데 금요일의 늦은 시간이라 불가능하다고 했다.

심전기와 연결된 모니터링에 의해 보이고 있는 심장기능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얼굴색이 푸르게 변해가고 있었고 눈을 감고 있는 얼굴 모습은 죽음의 그늘로 덥혀가고 있었다. 불과 반시간 전, “어떻게 지내?” 하고 묻던 우배가 아니었다. 짜증스런 물음으로 받아들여 성의 없이 대답한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의사가 전화를 받기위해 일어서며 당분간 대기상태로 복도에서 기다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우베와 10년을 동거하면서 종종 있었던 다툼의 원인이 된 마약의 중독일 것이라고 생각하자 올 것이 온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 번도 그녀는 우베가 무슨 약을 어디서 구해서 복용하고 주말을 침실에서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가영이 근무를 하는 주말이면 친구들까지 불러와서 마약파티를 즐겼다. 신분이 대학생이었던 우베는 택시기사로 용돈을 벌어 쓰는 정도였고 가영의 수입으로 얹혀살고 있었다. 그녀가 근무를 하는 주말파티 후의 이틀 동안은 비틀거리며 강의를 등한시했다. 공부가 끝나면 갚아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녀가 고등학교 과정을 를 시작하면 도와주겠고 대학 졸업 후 취직이 되면 그녀가 대학에 가도록 해 주겠다는 약속을 여러 번 했다. 세월이 갈수록 우베의 신빙성 없는 태도에 사랑은 증오로 바뀌어 갔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마지막 우베를 위해 그들의 사랑을 위해 피임약을 끊었다.

그녀가 임신을 알렸을 때 우베는 그녀의 단독 결정은 무책임하다고 비난하였고 결국 그의 강요로 임신중절을 했다. 그녀는 우베를 떠났다. 자영은 자신도 놀랄 만큼 큰 힘으로 자신을 되찾은 것이라고 종종 생각했다. 우베는 약속대로 그녀가 야간고등학교를 시작하도록 도와주었고 경제적인 도움도 주었다. 헤어질 때의 약속대로 모든 것은 그들은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정말 우연하게 영화관 앞길에서 만나게 된 것은 운명적인지도 모른다. 한 번씩 만나서 피자를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지난 10년을 보냈더라면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서 가벼운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

전화를 받고 온 젊은 의사는 서둘러 우베를 격리실로 옮겨야 한다고 지시를 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은 듯 급하게 침대를 밀고 엘리베이터 속으로 사라졌다. 30분을 더 복도에서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온 자영은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데 폰이 울렸다.

그녀를 보지도 않고 우베가 누운 침대를 밀고 사라진 젊은 의사였다. 우베가 숨을 거두었다고 알렸다. 사인이 불투명한 일이라 신고한 경찰이 곧 도착할 것인데 그녀가 유일한 증인이니 다시 병원으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가영에게 우베를 넘겨준 두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고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동안 여러 겹을 싸서 묻어 두고 생각하지 않겠다는 우베와의 과거를 파헤치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우베를 떠난 후 새 출발을 위해 천신만고를 겪었다. 그녀가 아직도 우베와 서류상의 부부로 되어있다는 사실도 배제하고 살았다. 몇 번인가 법적으로 이혼수속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다가 지난날의 아픔을 건드리는 일이라 얼른 두 눈을 감았다. 우베 역시 함구무언으로 불규칙하긴 해도 여유가 조금 생겼다는 문자와 함께 그녀에게 송금을 했다.

(다음호에서 이어집니다.)

2020년 2월 14일, 1158호 14-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