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36)

동서독 문화통합(6)

통일독일의 문화통합 작업은 분단에 따른 동서독 간의 문화적 이질화 현상을 되돌리는 작업임과 동시에 통일국가로서의 새로운 문화공동체적 기반을 조성하는 작업이었는바, 독일의 제도적 통합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년 안 에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심리적 통일에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독일통일 과정에서 문화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통일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제공하는 동인(動因)이었으며, 통일을 촉진하는 촉매제로서도 기능을 하였다. 통일 이후에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심리적 통일을 강화하는 주요한 기회이자 수단으로서도 문화통합이 기능을 하였다.

통일 이후의 문화정책

독일의 연방제 체제하에서 문화정책은 연방주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영역이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문화를 담당하는 부처나 청 단위의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총리실에 차관급의 문화담당관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통일 이후 연방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문화를 전담하는 부처가 신설되지는 않았지만, 연방정부는 신연방지역의 문화예술 지원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구동독지역 에 새롭게 구축된 신연방주들이 지역 문화예술의 구조전환과 구축 업무를 담당할 역량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연방정부는 통일조약을 근거로 구 동독지역의 문화정책에 개입할 수 있었다.

– 통일조약과 문화

1990년 8월 29일에 동독과 서독이 체결한 통일조약 8장에는 문화, 교육, 학문, 스포츠에 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개의 독일이 서로 상이한 발전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분단시기 동안 문화예술은 독일 민족의 통일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 준 기반이었다. 문화와 예술은 유럽연합으로 가는 길에 서 이루어진 동서독의 국가적 통일과정에 독자적이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여를 했다. 세계 무대에서 통일된 독일의 위상은 정치 적 비중과 경제적 성과 외에도 문화국가로서의 역할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

통일조약의 8장 35조에는 구동독지역의 문화 제반시설을 비롯한 문화영역이 통일로 인해 그 어떤 해를 입어서도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통일조약 협상과정에서 동독 측 협상대표들이, 특히 동독의 문화유산 중에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관철시킨 것이었다.

실제로 통일조약 8장 35조의 내용은 동독 문화부가 통일조약 협상을 앞두고 동독의 입장을 정리한 문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통일조약 8장 35조에는 동독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문화활동이 동일한 형태로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신연방지역에서 문화활동의 토대는 유지·보존되어야만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동독의 법체계에 따라 중앙정부가 관리해 오던 문화시설은 새로이 구축될 주정부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며, 연방정부는 신연방지역의 문화정책을 위한 재정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문화정책의 최종적인 결정권과 책임은 연방주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연방정부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공동으로 재정을 부담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신연방지역에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분단시기 서독에서 시행되었던 접경지역 지원 프로그램과 같이 제한된 기간 동안에 재정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신연방주 문화정책을 위한 연방정부의 지원

연방정부는 1991-1993년 사이에 문화영역의 과도기 재정지원의 틀에서 신 연방주와 기초단체의 문화시설 유지를 위해 33억 마르크를 제공하였다. 1993년 연방의회의 토론에서 연방정부는 신연방지역 문화시설의 기본적인 조건은 이미 서독지역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신연방주를 위한 과도기 재정지원의 틀에서 시행된 문화 인프라 프로그램은 특히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시설과 청소년 지원을 위해 중요한 문화시설을 유지하는데 기여하였다고 자체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기본적인 문화틀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대부분의 재원이 전통적인 문화시설을 위해 쓰여 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연방주들은 통일 이전에 서독보다도 높았던 인구 비례 오케스트라, 예술극장 등과 같은 문화시설 보급률을 통일 이후에는 그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 여기에 소속된 인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이러한 열악한 재정상황에도 불구하고 신연방주 정부들이 이런 문제를 단순히 오케스트라를 해체하고 예술극장을 폐관하는 방식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연방지역 주정부와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은 소도시의 시립예술극장과 오케스트라를 주 단위의 오케스트라로 통합하거나 몇 개의 도시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기관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사업의 경우 연방정부를 통해 별도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연방도시계획건축부가 작센안할트주의 ‘도시 건축유적 문화보호 및 역사적 구도심의 보존과 유지’ 프로그램을 위해 1991년 5월 23일에 도시 건축유적을 보수하기 위한 전문가그룹을 구성한 것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연방정부는 나아가 동독 국립박물관을 프러시아 문화재단 산하 국립박물관으로 인수했다. 동베를린의 국립중앙도서관과 서베를린에 소재한 국립중앙도서관을 하나의 기구로 통합하고 중앙문서국 또한 연방문서국으로 통합했다. 데사우시에 창립된 바우하우스재단이나 바이마르 고전재단의 설립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문화국가로서의 독일 전체에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사업에는 연방정부가 지속적으로 관여하기도 했다.


교포신문사는 2020년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연재를 통해 살펴보며,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편집자 주

1212호 31면, 2021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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