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허가 2년 연장, 사실상 영구 존치에 다가선 베를린 소녀상

그동안 많은 논란을 뒤로 하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베를린 소녀상이 일단 2년 더 머물게 되었다. 최초 설립 이후 또다시 1년 연장된 설치 허가 종료 시점은 9월 28일, 2년 연장이 공표된 것은 11월 9일이니 늦어도 한참 늦은 결정이었다.

소녀상에 대한 베를린 미테구 구의회의 의원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소녀상 존치를 반대해왔던 슈테판 폰 다셀 구청장이 돌연 채용 비리 스캔들로 해임된 후, 새로 구청장직을 맡은 슈테파니 레믈링어가 내놓은 획기적인 결정이었다. 레믈링어 구청장은 “나는 소녀상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며 “베를린 소녀상의 설치허가를 2년 더 연장하기로 공식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날 한정화 대표는 베를린 미테구 문화분과위원회의 초청으로 소녀상을 세우게 된 배경과 소녀상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어떤지에 대해 발표했는데, 그 직후에 구청장이 연장 결정을 선언한 것이다. 구청장의 발언 후에는 구의회 의원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소녀상과 아이가 함께 있는 사진. 캡션: 미테구 주민들의 사랑이 끊이지 않는 소녀상

그동안 코협은 소녀상의 거취를 궁금해하는 많은 분들께 정확한 답변을 드리지 못하고, 청장이 바뀌었으니 곧 긍정적 회신이 오리라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내비치긴 했지만 예상외의 자리에서 들려온 낭보라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다.

레믈링어는 추후 “평화의 소녀상을 거점으로 그동안 소홀하게 다뤄진 전시 성폭력 피해라는 주제를 더욱 부각할 수 있도록 하는 기념물 등을 공모하는 방안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소녀상이 한일 간의 역사적 갈등에만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문제인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고, 침묵을 깨고 세계평화를 위해 활동한 피해생존자들의 용기를 기리고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또한 소녀상을 시작으로 독일사회도 이 주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자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결정이 나오기까지는 그동안 소녀상 존치를 위해 힘을 보탠 지역구 구의회 진보정당 소속 의원들의 목소리도 한몫했다.

이 날 문화분과위원회 토론에서 기민당 소속 올라프 렘케 의원은, 화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국가에 대한 피해자들의 원망을 상기한다는 것이 소녀상의 문제라고 말하자, 전시 여성 성폭력을 상징한다는 소녀상이 보편적인 형태의 기념물이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쳐온 자민당에서도 여전히 소녀상은 보편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 의원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그 중 녹색당 소속 젊은 의원, 루시 슈뢰더는 성폭력의 모습은 전시 성폭력 뿐 아니라 가정 폭력, 성추행 등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표현하기는 어렵고, 소녀상과 같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통해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상징할 수 있다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진보당 의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녀상을 베를린 모아빗에 설립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까지 하였다. 지금까지 코협 한정화 대표가 정당인들을 대상으로 한 로비활동에 들여온 공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회의가 끝난 후 한정화 대표는 “일단 2년간 설치허가가 연장됐지만, 사실상 영구 존치나 마찬가지”라며, 이제는 한시름 놓고 독일 학교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평화•인권 교육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소녀상은 소녀상만 세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녀상과 함께 하는 다양한 시민사회와의 연대활동과 청소년 평화인권교육사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협은 재정난으로 인해 3년여간 공개하지 못하고 있던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공사를 시민들의 기부로 마무리 짓고, 최근에 공식 개관한 바 있다. 코협의 미래 핵심사업인 청소년 교육과 시민사회 연대활동이 이뤄지는 산실이 바로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인 셈이다. 베를린 소녀상은 이렇게 또 성큼, 역사적인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베를린 소녀상 설치 2년 연장 축하 및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 기념 연대집회

때: 11월 26일(토) 17시

곳: 베를린 소녀상 Bremer Str. 41, 10551 Berlin

프로그램:

-2년 연장 축하의 의미로 촛불과 함께 사진 촬영 (촛불 지참 요망)

-짧은 집회 후 3분 거리인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다과와 함께 이야기 모임

문의: 코리아협의회 mail@koreaverband.de

1292호 17면, 2022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