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12)

나치 약탈 부대 ERR ➃

이 그림을 누가 본 적 없나요? (2편)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속속 원래의 합법적 소유자나 그 상속인들을 찾아간다. 특히 반환 문제가 제기된 예술품과 문화재 소장자가 그 취득 경위와 역대 소장자의 획득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워싱턴 원칙’ 합의 이후 나치 시대 약탈품의 회복이 가속화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군국주의 일본에 의해 약탈당한 나라가 어디 한국뿐이랴. 중국과 대만을 비롯해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그렇다. 아프리카와 아시아권의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해 이젠 식민제국주의를 거쳤던 국가들이 답할 차례이지만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 그냥 돌려주지 않는다.
약탈 문화재 환수는 유물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단순한 물리적 위치 변경이나 한 나라의 컬렉션 부족 부분을 채운다는 문화적 자존심 높이기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창조자들이 만든,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제자리 찾기라는 도덕적 당위성뿐만 아니라 약탈에 스며든 역사적 핏빛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힐링의 길이다.

현 소유자 샀던 가격대로’, 로젠버그 가문 인질 몸값 요구

1980년대 후반 스위스 소장가는 한스에게 작품 판매를 의뢰했다. 이에 한스는 국제적인 미술 잡지에 광고하면서 폴 로젠버그가 소유했던 그림이라고 게재했다. 이 광고가 로젠버그의 며느리 일레인의 눈에 띈 것이다. 한스는 일레인에게 자신에게 판매를 의뢰한 고객이 1974년에 샀던 가격인 350만 스위스프랑(350만 달러 상당)에 사라고 제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스는, 일레인은 대화에 관심 없이 자신을 ‘나치 돼지’라고 비난하면서 경찰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림 판매를 의뢰한 고객은 판매를 철회하고 그림과 함께 잠적해버렸다.

350만 스위스프랑 요구와 관련해 로젠버그 손녀 마리안느 로젠버그(Marianne Rosenberg)는 “그림을 인질로 붙잡고 석방 몸값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스는 “몸값 요구 주장은 난센스”라며 40여 년 전에 샀던 가격 그대로가 합리적 해결책이라고 맞섰다.

한스는 “현재 그림 소장자는 범죄자가 아니며, 그림에 얽힌 역사에 매우 슬퍼하며, 타협점을 찾고자 한다”라고 하면서도 “그는 보상 없이는 그림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마리넬로 ARI 설립자는 “한스는 근본적으로 이해충돌에 빠져 있다”라며 그림 문제에서 발을 빼고, 변호사가 그림 소장자의 문제를 대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판매 시도한 초상화  ⋯ 독일 정부에 개입 당부

‘가브리엘 디오트 양의 초상화’ 소장자가 2003년 다시 판매를 시도했던 사실을 마리넬로가 우연한 기회에 들었다. 독일 기업인 크리스티안 폰 벤트하임(Christian von Bentheim)은 한스가 자신에게 접근해 비밀 거래로 문제의 초상화를 460만 달러에 판매를 제안했다고 마리넬로에게 털어놓았다.

예술품 거래 경험이 없는 벤트하임은 예술가 친구에게 이 그림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친구는 약탈품이라는 것을 알고 벤트하임에게 “약탈 미술품이니 아무것도 관련하지 마라”고 충고했다. 이에 한스에게 화가 난 벤트하임은 실물 크기의 복제 그림을 돌려주면서 “아무것도 관련하고 싶지 않다”라며 관계를 끊었다.

도난 예술품은 몇몇 국제단체의 정보자료에 등록되어 있어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거래가 쉽지 않다. 로젠버그 후손들은 이미 1944년, 1947년, 1956년에 분실 신고를 해둔 상태다. 문제의 초상화가 다시 한번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 로젠버그 후손들의 회복 노력이 한층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뉴욕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로젠버그 손녀 마리안느가 2016년 한스에게 다시 접촉해 그림소유자의 이름을 물었지만, 한스는 답변을 거부했다. 이에 그녀는 새로운 추적 경로로 독일 문화부에 서한을 보내 ‘디오트’를 되찾는 데 독일 정부가 개입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가브리엘 디오트’가 로젠버그 가문에서 나간 것은 불법이고, 그 가문이 한 번도 팔거나 돌려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날까지 이 그림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손녀 마리안느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실망스럽습니다. 한번 나타난 그림이 사라지면 또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나타나니까요”라고 말한다.

전쟁 전,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품 거래상을 하던 폴 로젠버그는 나치에게 약 400점을 약탈당했다. 그 가운데 70여 점에 대해 위치 파악과 회복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의 뮌헨 아파트에서 발견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1921년 작품 ‘앉아 있는 여인(Seated Woman)’, 2014년 노르웨이 헤니 온스타드(Henie Onstad) 아트센터에서 마티스의 또 다른 1937년 작품 ‘벽난로 앞 푸른 옷을 입은 여인(Woman in a Blue Dress in Front of a Fireplace)’을 되찾았다.

1291호 30면, 2022년 1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