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11)

나치 약탈 부대 ERR ➂

이 그림을 누가 본 적 없나요? (1편)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속속 원래의 합법적 소유자나 그 상속인들을 찾아간다. 특히 반환 문제가 제기된 예술품과 문화재 소장자가 그 취득 경위와 역대 소장자의 획득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워싱턴 원칙’ 합의 이후 나치 시대 약탈품의 회복이 가속화하고 있다.

약탈 문화재 환수는 유물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단순한 물리적 위치 변경이나 한 나라의 컬렉션 부족 부분을 채운다는 문화적 자존심 높이기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창조자들이 만든,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제자리 찾기라는 도덕적 당위성뿐만 아니라 약탈에 스며든 역사적 핏빛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힐링의 길이다.


– “누가 이 그림을 본 적 없나요?”

나치가 약탈한 수많은 작품은 은밀하고 복잡한 예술품 시장에 수십 년 동안 사라졌다가 예기치 않게 등장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전쟁 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유대계 미술품 거래상 폴 로젠버그의 며느리 일레인 로젠버그(Elaine Rosenberg, 1921~2020)는 1987년 12월 미국 뉴욕의 예술 전문 도서관인 프릭 아트 레퍼런스(Frick Art Reference)에서 예술 잡지를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미술품 거래상 마티아스 한스(Mathias Hans)가 대가의 작품과 현대 회화를 판매한다는 광고를 보자 눈이 번쩍했다.

렘브란트와 티에폴로, 브라크의 작품들이 경매 예정이었지만, 일레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판매에 나온 작품 사진 한 점이었다. ‘인상파 창시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1834~1917)가 1890년에 그린 ‘가브리엘 디오트 양의 초상화’였다. 잡지 광고에서 이 그림은 파리의 마지막 소유자로 로젠버그라고 밝혔지만, 그 출처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일레인은 40년 전 프랑스에서 나치에 약탈된 가문의 분실 예술품임을 바로 알아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즉시 독일 거래상에게 전화해 이 작품에 얽힌 진실을 밝혔다. 거래상은 작품 소유주에게서 판매를 의뢰받은 것이라면서 비밀 준수 규칙 때문에 소장자의 이름은 밝히지 못하지만, 작품에 얽힌 매우 중요한 정보를 그에게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일레인은 전화를 받았다. 거래상인 한스는 그림 판매 의뢰자가 로젠버그 가문이 되사기를 바란다고 전했지만 일레인은 “자신의 것을 돈으로 되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며 이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자 며칠 뒤 함부르크의 거래상 한스는 고객이 그림 판매를 취소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일레인에게 전했다.

‘가브리엘 디오트 양의 초상화’의 약탈 이야기는 1940년 6월로 거슬러 간다. 파리의 유명 미술품 거래상인 로젠버그는 프랑스 남서쪽 보르도 근처의 시골에서 여름 별장으로 주택을 빌렸다. 그런 뒤 파리의 화랑 사무실에 걸어두었던 ‘가브리엘 디오트 양의 초상화’를 비롯한 몇몇 작품을 이곳으로 옮겨 두었다. 하지만 나치의 침입으로 프랑스의 함락이 다가오자 로젠버그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포르투갈 리스본을 거쳐 1940년 9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작품들은 빌린 여름 별장에 그대로 둔 상태였다.

아들 알렉상드르는 영국으로 넘어가 드골 장군의 부름을 받고 자유프랑스군(FFF)에 들어가 나치 독일과 싸웠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알렉상드르는 가문의 컬렉션을 찾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1944년 8월, 나치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약탈한 미술품을 기차에 실어 독일로 가져가려는 것을 알렉상드르의 명령을 받은 레지스탕스가 파리 북부의 철로를 폭파해 이동을 막았다.

알렉상드르가 기차에서 확보한 그림을 들여다보니 일부는 가문의 소장품이었다.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는 버터 랭커스터와 폴 스코필드, 잔느 모로가 출연한 영화 ‘대열차 작전(The Train, 1964)’의 소재가 되었다. 문제의 초상화 판매 광고를 발견한 일레인은 알렉상드

르의 부인이다.

영화 같은 초상화 운명거래상, 출처 확인에 높은 기준 세워야

파리가 나치에 점령된 후 하인리히 오토 아베츠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의 명령으로 이 초상화를 포함한 로젠버그 개인 컬렉션과 화랑의 작품 등 수백 점이 ‘주인 없는 문화재’라는 이유로 압수되어 트럭에 실려 갔다.

이때 ‘가브리엘 디오트 양의 초상화’는 ERR의 수장이자 악명 높은 전범 알프레트 로젠베르크가 대사관에서 빼앗아 파리의 주드폼미술관으로 보냈다. 그러곤 이 초상화를 다른 그림과 교환했다. 이후 그림은 1942년 스위스 마조레 호숫가에 사는 어느 스위스 가문에 들어간 것으로 로젠버그 후손들은 믿고 있다.

이 초상화는 1974년 거래상 한스가 현재 소유자인 스위스 유명 컬렉터에게 판매를 중개했다. 한스는 “1974년에는 나치 약탈 예술품은 쟁점이 아니었고, 나는 나치 약탈에 관한 어떤 것도 몰랐으며, 마지막 출처가 분명해 더 점검할 이유도 없었다”라며 “믿기지 않겠지만 돌이켜보면 시대가 달랐고, 인터넷도 없었으며 나는 미술품 거래를 막 시작한 애송이였다”고 주장했다. 거래 당시 자신도, 구매자도 도난품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도난 예술품 위치 파악과 회복을 전문으로 활동하는 조직인 ‘아트 리커버리 인터내셔널(Art Recovery International, ARI)’ 설립자 크리스토퍼 마리넬로(Christopher A. Marinello)는 이미 한스는 문제의 그림이 1942년에 획득된 사실을 알았으며, 따라서 ‘의심스러운 그림’ 이라 당시 소유자에게 적합한 출처 질문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마리넬로는 “한스는 ‘1942년 나치 점령 기간의 파리, 출처가 어디인가’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했는데, 오히려 1974년 도난재산을 처리했다. 아트 딜러는 어떤 단계에서든지 출처 확인에 높은 수준의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1290호 30면, 2022년 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