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선물”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우리는 매일 엄청난 선물을 받으며 살고 있다. 오늘이라는 시간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공간을 누리며 사는 것은 우리가 이생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때로는 힘겨운 하루를 살아간다고 해도 ‘오늘’은 정말로 소중하다. 어제 죽은 수많은 사람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간절히 살고 싶어 했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 소중한 시간이 바로 ‘오늘’이라는 시간이다.
‘오늘’이라는 큰 선물을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는 것은 커다란 손해이고 낭비다.
일이 있으면 늙지 않는다고 한다. 성경에서도 사명의 사람들은 대체로 장수하였다. 모세는 80세에 출애굽의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고 120세까지 장수했다. 지금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는 80세에 세상을 떠나면 조금 더 살아야 하는데 너무 일찍 죽었다고 말한다.
정년까지 열정을 다 바쳐 일하다가 은퇴 후에 모든 일을 내려놓고 무력감에 시름시름 병을 앓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나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아서 나이와 체력에 맞게 일을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은퇴 후에도 인생 3막, 4막을 써 내려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며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우리가 그 나이가 되면 이분들처럼 왕성하게 봉사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은퇴한 지 10여 년이 되어서도 기쁨으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공동체에도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하는데 이런 어른들이 많아질수록 본받고 싶은 어른들이 많아질 것이다. 다음 세대를 섬기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어른들이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희망이 넘치고 밝게 발전하게 될 것이다.
지난 6월 19일에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파독근로자 보건의료지원사업을 주관하는 봉사자들이 베를린에 와서 ‘건강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날 세미나에는 베를린 지역에 사시는 건강 취약계층 25명이 참석하여 해로하우스에서 준비한 맛있는 식사와 함께 ‘건강 세미나’를 하였고, 변경된 ‘의료제도’에 대한 교육도 하였다.
10여 년 동안 베를린 지역의 수혜자들을 섬기며 봉사해온 신성식 봉사자에 대한 감사장과 선물을 드리는 시간도 있었다. 봉사단이 준비한 선물을 모두에게 드리며 내년에도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며 폐회할 때는 모두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이날 세미나는 재독한인간호협회 박영희 회장과 김춘토 수석부회장, 김옥순 고문, 김옥배 간사 등이 베를린을 방문하여 진행하였는데, 은퇴 후에도 열심히 봉사하시는 모습에 모두 감사하며 부러워하였다. 이렇게 독일 전역을 돌면서 건강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아주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분들이 건강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하니까 마음이 즐겁고, 몸은 피곤하지만 깊은 단잠을 잘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하셨다. 일이 있어서 늙지 않으시는지 만날 때마다 예전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으시다. 나이가 들수록 적당한 일을 찾아야 하고, 할 수만 있으면 즐겁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 믿는다. 사명, 곧 일이 있으면 장수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해로’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서정희 이모님은 90세가 넘은 연세에도 ‘석양을 바라보며’라는 새로운 시집을 내셨고, 한국 전통 수묵화를 지금도 그리고 계신다. 지난 4월에는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한국적인 정서가 듬뿍 담긴 담백한 그림이 인기가 많아서 찾는 분들이 많았다. 요즘도 몇몇 인기 있는 그림을 그려 달라고 주문하는 어르신들의 요청으로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일과 함께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고 계시는 덕분에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신다. ‘해로’에서 가장 먼 곳에 살고 계시지만, 매주 일요일과 화요일마다 가장 먼저 ‘존탁스카페’와 ‘노래교실’에 나오신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삶에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하지만, 우리 파독 1세대 어르신 중에 연세가 들어가면서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 너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전에는 잘 찾아왔던 ‘해로’를 이제는 찾아오는 것조차 힘든 어르신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경우는 그나마 돌볼 가족이 있기에 다행스럽지만, 가족끼리도 소통이 잘 안되어 문제가 생기는 일도 많다.
그러나 혼자 사시는 분들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혼자 사시는 분 중에도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들의 경우는 치매도 적고 건강도 잘 유지하신다. 반면에 혼자 집에만 계시는 분들의 경우는 한 마디도 대화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날도 많고 식사도 대충 건너뛰는 경우도 많아 인지능력은 나빠지고 점점 더 병세가 나빠지시게 된다.
‘해로하우스’가 이분들을 효과적으로 섬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대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해로’에서 도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많아서 염려가 많다. 나이와 상관없이 함께 섬기는 건강한 분들이 많아져서 우리 파독 1세대가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게 되기를 바란다.
“너의 물질을 후하게 나누어 주어라. 언젠가는 그것이 너에게 되돌아올 것이다.”(전도서 11:1)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416호 16면, 2025년 6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