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회 자치권 무시하는 카셀대… 총학생회 “대학, 정치적 압력에 굴복”
3.8 세계여성의날 바로 다음날인 3월 9일 새벽, 헤센주 카셀 주립대학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철거됐다. 카셀대학 총장단 측이 코리아협의회와 총학생회에 통보도 없이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 조치한 것이다.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던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이 현재 어디인지도 모르는 창고에 있다는 사실을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됐다.
갑작스러운 철거
카셀대학 총학생회 학생들이 주도해 2022년 7월 8일, 최초로 독일 대학 캠퍼스에 설립한 카셀 소녀상 ‘누진’(쿠르드어로 새로운 삶을 뜻함)은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사례를 보고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세워진 뜻 깊은 평화비다.
앞서 이 소녀상은 학생회 의결로 세워졌다. 이러한 학생들의 뜻에 감동받은 소녀상 작가들이 소녀상을 선뜻 기증하고자 해, 코리아협의회는 현지 시민단체로서 권한을 위임받아 총학생회와의 소녀상 영구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전 세계 3000여 명 시민들 또한 소녀상 운송비, 제막식, 동판식, 방문단 여행경비 및 학술회, 영화 시사회 등을 위한 후원금으로 학생들을 응원했다.
코리아협의회 측은 지난해 9월 소녀상을 위해 후원해준 시민들의 이름을 새긴 동판 전달식을 개최할 당시, “카셀대 총장단이 소녀상 제막식 직후부터 일본 총영사의 방문 및 극우들의 이메일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대학 측의 소녀상 철거 의사를 전달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2월 중순, 소녀상 철거 위협 소식을 총학생회를 통해 알게 돼 대학 측에 철거 보류를 요청했었다. 철거는 곧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 대한 2차 가해임을 대학 총장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부총장에게 소녀상 이전을 준비할 계획임을 알리고, 실제로 대학총장단과 협상 단계에 있었다.
대학 총장단은 “소녀상 설치는 애초 국제현대미술축제 카셀 도큐멘타 기간(6월 중순부터 약 100일)에만 한정한 임시 허가였다”고 주장하면서, 되레 대학 측은 전시 기간을 계속 연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소녀상을 설치했던 총학생회는 당시 총학생회가 대학 측과 소녀상 관련해선 계약을 맺은 적이 없기 때문에 연장이나 임시 허가란 말 자체가 궤변에 불과하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임시 허가였다”는 대학, 반발하는 총학생회
소녀상 설립 당시 총학생회와 코리아협의회 간 체결한 소녀상 영구 임대계약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대학 측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 계약은 심지어 대학 내 법률부서에 의한 사전 검토 및 조언을 받아 성사됐었다. 한편 이와는 별개로, 총학생회는 대학 측과 학생회관 앞에 있는 캠퍼스 공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양도 계약서를 맺고 있다. 소녀상 설치를 위해 필요한 부지 공사 역시 이 계약에 따라 대학 내 건설부서가 공식적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대학 측은 ‘영구 존치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일본 정부의 압력으로 철거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 총장단은 소녀상 영구 존치를 원하지만 대학평의회가 연장에 호응하지 않고 있으며 새로 설치될 총학생회가 소녀상 영구 존치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거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그동안 코리아협의회 측이 관계자에게 전해 들은 일본 정부의 압력 외에는, 소녀상을 이렇게 기습적으로 철거해야 할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소녀상을 설치했던 카셀대 총학생회는 3월 13일 공식 인스타그램 입장문을 통해 “총학생회는 대학이 (일본) 우익 보수 정부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학 측은 특히 소녀상 영구 존치가 카셀대학 학생의회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의결된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즉 기습 철거는 총장단이 카셀대학 학생회의 자율권과 자치권을 명백히 침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본다. 총학생회는 소녀상을 매개로 해 과거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행한 전 유럽에서의 성노예 제도,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지배 역사 등 과거를 청산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기에 대학 측의 처사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 또한 카셀대학 총장단을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놓고 있지만 베를린 소녀상 철거 사례와 마찬가지로 시민과 함께 하는 연대 없이는 소녀상 원상 복구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코리아협의회 산하 일본군 ‘위안부’ 행동, 카셀소녀상 지킴이(Initiative Friedensstatue für Kassel) 등은 식민주의와 파시즘의 맥락에서 발생한 성폭력이 더 이상 가해자의 편에 서서 은폐되지 않도록,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 ‘누진’을 캠퍼스 정원에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을 요구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3월 15일 카셀에서는 한국 언론인들과 카셀대학 학생회 측, 한인 유학생과 시민들이 <카셀소녀상 ‘누진’ 되찾기 설명회>에 대거 참여했다. 행사에 참가한 이들은 이후에도 매주 수요일마다 카셀소녀상의 빈 자리 앞에서 수요모임을 이어갈 예정이다. 시민의 연대가 베를린 소녀상을 지켜냈듯, 카셀 소녀상을 되찾는 데 다시 한 번 연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카셀소녀상 ‘누진’ 되찾기 활동을 위한 후원:
Korea-Verband e.V.
IBAN: DE74 4306 0967 1223 1367 00
Paypal : mail@koreaverband.de
[카셀대학 평화의 소녀상 <누진> 되찾기 서명운동] https://www.openpetition.de/petition/online/kaseldaehag-pyeonghwaui-sonyeosang-nujin-doechajgiseomyeong-undong
기사제공: 코레아협의회
1307호 17면, 2023년 3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