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34)

폴란드, 그단스크 컬렉션 반환 거부 ➀

폴란드가 반환을 거부하는 네덜란드 작품들

폴란드 발트해 연안 도시 그단스크(Gdansk) 미술관에는 나치가 유대계 네덜란드인 미술품 거래상 자크 구드스티커(Jacques Goudstikker, 1897~1940)에게서 약탈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풍경화의 대가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1596~1656)의 1638년 작품 ‘수로 옆 오두막집(Huts on a Canal)’을 비롯한 두 점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그동안 행방불명된 것으로 여겨진 네덜란드 작품 일곱 점이 국립그단스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네덜란드 전문가들이 강조한다.

그단스크 미술관 큐레이터들도 네덜란드가 세계대전 당시 분실한 것으로 여겼던 호이엔의 이 두 점 외에도 네 점이 더 있다고 인정한다. 대표적으로 피테르 데 호흐(Pieter de Hooch, 1629~1684)와 렘브란트의 제자인 페르디난트 볼(Ferdinand Bol, 1616~1680)의 유화로, 이 작품들은 나치와 소련에 의한 약탈 문화재와 예술품을 추적하는 네덜란드 정부기구에 분실 작품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는 약탈 예술품이 7점이라고 주장한 네덜란드측 연구자들과는 그림 한 점이 차이 난다.

또 그단스크 미술관에 있는 야코프 판 라위스달(Jacob van Ruisdael, 1629년경~1682)의 풍경화 한 점은 베를린에 있던 유대인 출판업자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독일 학자들이 찾아냈다. 전쟁 기간 그단스크 미술관장 윌리 드로스트는 네덜란드 ‘올드 마스터’를 숭모한 광적인 팬으로, 이들의 작품을 열렬히 수집했다.

그단스크 미술관도 약탈품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폴란드는 호이엔의 그림 두 점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반환과 관련해 폴란드 정부는 국제법에 근거한 정부의 공식적 절차를 통해 대응할 뿐이고, 개인은 법적 소송을 통해서 반환을 요청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방침은 네덜란드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환 요청을 한 적이 없고, 후손들도 반환 소송을 쉽게 제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는 반환은 국가가 아닌 개인이 법원을 통해야 한다면서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적절한 지원을 하겠다”라며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네덜란드 작품이 폴란드에 남은 역사의 아이러니

제2차 세계대전은 ‘자유 도시’ 단치히(Danzig, 폴란드 지명 그단스크) 반환을 주장하던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이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4분, 군사적·전략적 가치가 거의 없는 폴란드 서부 도시 비엘룬(Wieluń)에 대대적으로 포격을 가하면서 공식화되었다. 폴란드 침공 이틀 뒤인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히틀러는 그단스크를 독일로 돌려달라는 협상에 실패하면서 무력 행동을 개시했다.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한 다음 날 그단스크 시의회는 독일 합병을 선언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 2주 뒤인 1939년 9월 17일, 이번에는 소련 적군이 동쪽에서 폴란드를 침공했다. 폴란드는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양쪽에서 협공을 받는 이중 침략의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단스크는 폴란드로 귀속되었다. 이곳의 얽히고설킨 역사만큼이나 유럽에서도 나치가 약탈한 문화예술품의 반환 문제가 복잡하다.

나치에, 소련에 이중 약탈’, 폴란드는 반환 거부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게르만족 우월주의에 빠져 폴란드에 있는 서부 유럽 문화재와 예술품을 약탈하고, 슬라브 문화재를 파괴했다. 소련도 침략 후 폴란드 예술품과 문화재를 약탈하고, 파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소련이 장악한 지역의 미술관과 공공기관의 거의 절반이 해체되어 수많은 약탈품이 모스크바 역사박물관과 반종교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소련의 약탈이 1947년까지 계속되면서 폴란드는 나치와 소련의 ‘이중 약탈’에 신음했다. 2010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전쟁 기간 폴란드가 파괴와 약탈로 상실한 문화유산은 전체의 75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폴란드 화가 작품 1만 1000점, 유럽 다른 국가 출신의 화가 작품 2800점, 조각 1400점, 원고 7만 5000장, 지도 2만 5000장, 1800년 이전에 출판된 도서 2만 2000권, 판화 30만 점,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 수십만 점 등이다. 약탈되거나 파괴된 도서는 적게는 150만 권에서 많게는 2200만 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945년 폴란드에서 나치 점령자들을 몰아낸 소련은1 989년까지 바르샤바에 고분고분한 공산정권을 수립했다. 전쟁 후, 폴란드 분실 및 훼손 예술품 신고기관이 1945년부터 1951년까지 운영되었지만, 냉전과 위성국가라는 현실 속에 약탈된 문화유산의 회복은 어려웠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면서 국제질서가 바뀐 1990년대에 들어서자 상황이 변했다. 1991년 약탈품 회복을 목적으로 새로운 기구인 ‘국외 소재 폴란드 문화유산 정부 대표부’가 문화예술부에 설치되었다. 약탈 예술품의 위치가 파악되면 폴란드 정부는 반환을 요구했고, 거의 모든 요청은 성공적이었다.

폴란드 정부는 2001년부터 2012년 사이 환수한 30점의 중요 목록을 공개했다. 회복된 예술품들 가운데 폴란드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로 꼽히는 알렉산데르 기에림스키(Aleksander Gierymski, 1850~1901)가 1880년에서 1881년 사이에 그린 ‘오렌지 바구니를 든 유대인 여성(Jewess with Oranges)’은 2010년 11월 독일의 한 경매회사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주름진 얼굴이 무기력해 보이지만 바구니에 든 노란 오렌지는 생명과 열정, 희망이 엿보인다. 이 작품은 2011년 7월 말 국립 바르샤바 미술관으로 반환되었다.

1315호 30면, 2023년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