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천명관의 <고래> 낭독회 및 사인회”가 9월 7일 베를린, 11일 뮌헨에 이어 9월 14일(목) 19시에 한국문학번역원, 베르텔스만 북클럽의 후원하에 Galerie Hanna Bekker vom Rath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낭독회는 Katharina Borchardt(작가, 문학 비평가, SWR 문학 편집위원)의 사회와 박술(철학박사, 번역가, 작가)의 통역으로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천명관의 <고래>는 2023년 세계적인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영문판, 독어판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마술적 사실주의로 평가된다. 사회자의 질문과 천명관 작가의 답변이 한국어, 독일어 순차통역으로 진행되었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인 1950~1980년대는 전쟁, 분단, 고속성장이 주제가 되는 시기이다. 벽돌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 벽돌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새로운 시기의 핵심적인 것으로 간주된 요소라고 천 작가는 말했다. 나이 많은 여성들이 주인공인 이유는 소설 배경 자체가 작가가 태어나기 전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한국의 역동적인 변화의 시기를 다루다보니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이 나이 많은 여자가 되었다고 전했다.
작가가 어릴 때는 서울 근처에서 거주했다. 그때는 전기불이 없고 땔감나무를 사용했었는데 빠르게 변화했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했었는데 20대에 자동차를 타게 되었다. 초가집에서 출생했는데, 얼마 안 되어서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정신적으로도 큰 혼란을 겪고 의식에 대한 큰 변화를 겪은 시대이다.
이 이야기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폭력적이어서 가출해서 살아가는 ‘금복’이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금복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는 남성같기도 하고 여성같기도 한 중성적인 이름이다. 작가가 살던 동네 누나의 이름이었고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쓴 이름이라고 밝혔다.
어릴적 동네 누나가 모델이 아니라 한국에는 이런 캐릭터가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여성들이 생활력 강하고 억척스러우며 집안을 책임지는 여성들이 많고 이것은 멋진 자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서는 자신 또한 욕망에 휩싸여서 스스로 파멸해가는 인물로 이야기가 그려졌다고 설명했다.
금복은 위험하지만 빠져들 수밖에 없고 목숨을 걸어 사랑해서 파멸에 이르게 하기도 하는 팜므파탈인데, 남자들은 이런 여자들을 사랑한다면서 천 작가는 캐릭터로는 좋아하는 경우라고 전했다.
금복과 생선장수에 대한 이야기 부분에 대한 낭독이 이어졌다.
금복이 생선장수와 헤어진 후 거대한 체구를 가진 ‘걱정’을 만나는데, 걱정은 신화적인 인물이다. 걱정은 현대 인물이 아닌 전설과 신화에 나오는 듯한 비현실적 외모의 인물로 설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현대는 사회 부적응자가 소멸하는 슬픈 존재의 측면이 있어서라고 밝혔다. 특히 책에는 거인, 애꾸눈, 곰보, 쌍둥이 등 특이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데, 즉 장애인, 정신 지체인, 신체적 결함을 지닌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어릴 때 그런 인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어렸을 때는 손가락이 6개인 자, 다리 저는 사람, 동네 바보 형, 머리에 꽃을 꽂은 미친 여자 등이 생활 속에 많았고 이상하지 않았고 함께 존재하는 너그러움이 있었는데, 현대에 와서는 그런 포용력은 없어지고 분리되어진 게 안타까워 그렇게 표현했다고 전했다. 거인 뿐 아니라 거대 동물로 고래가 등장한 이유는 자연스런 설정이었다고 천 작가는 설명했다.
금복이 좁고 답답한 생활을 하다가 생선장수의 차를 타고 넓은 부둣가에 가서 처음 고래를 보게 된다. 여기서 자기 안의 본능적인 욕망과 꿈을 건들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어릴적 고래를 좋아했고 대양에서 헤엄치며 다녔지만 현대에 와서 그 거대한 육체 때문에 서서히 멸종해갔다. 걱정 등도 거대함 때문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육체의 비극성에 연결된 이미지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소설의 화법이 유랑극단이나 판소리처럼 이야기꾼 느낌의 전근대적 목소리의 서술자 느낌이 있는 이유는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대소설 이전에는 입으로 전해지는 구비문학이 있었고 판소리 등 퍼포먼스 예술과 연기와 설명을 하여 스토리를 전달하는 무성영화 변사가 있었다. 소설의 배경이 이 시기여서 그 시대 형식인 변사의 화자 형식을 띤 것이고 현대 배경인 춘희에 와서는 현대 문체를 사용했는데 이렇게 여러 문체를 사용한 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서술 방식이 미래진보 발전의 힘을 보여 주는 것과 과거회상의 서술 방식으로 대비되는데, 이는 인생은 돌고 도는 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이야기 서술 방식을 썼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 ‘세상은 둥글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네모가 모여지면 다시 둥그러워지듯 시간의 흐름도 그렇고 ‘환갑(육십갑자가 다시 돌아온다)’은 돌고 돌아 다시 시작한다는 한국적 개념도 포함하는데 이러한 개념을 반영한 것이라고 전했다.
‘춘희’라는 인물은 현대적 개념으로는 언어장애를 가진 정신 지체아 이지만, 민감한 감각과 자연과 뛰어나게 교감할 수 있는 인물이다. 매우 혹독한 시련을 겪은 후에야 완벽한 벽돌을 만들 수 있는데 이러한 시련은 예술가의 고행과 같은 것이라고 언급했다.
춘희의 친구인 ‘점보’라는 코끼리가 죽고 나서 ‘문’이가 춘희를 아버지처럼 돌봐주는 부분을 낭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춘희라는 인물은 어릴적 만났던 어느 여학생에 대한 경험으로 만들어졌다고 언급했다. 어느 추운 겨울밤에 가출한 듯한 어느 여학생을 만났는데 덩치가 매우 컸고 먼 길을 물어보며 걸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차비를 주며 버스 타고 가라고 했는데 끝내 걸어가던 모습에서 삶의 무게가 매우 무겁게 느껴졌고 벽돌 만드는 이야기에서 이 여학생의 이미지를 떠올려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대한 질문에는 30대에 영화를 먼저 시작했지만 영화감독이 되지는 못하고 40대에 소설을 쓰다가 다시 영화 일을 하게 되어 최근에 영화감독이 되어 영화를 개봉하는 영광까지 안게 되었다고 전했다.
독일 감독의 “양철북”을 인상 깊게 봤다고 전하며 사회자의 질문 시간과 작가의 대답시간을 마쳤다.
김미연기자 my.areist@daum.net
1332호 20면, 2023년 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