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중반에 들어와 로마는 가톨릭 부흥과 더불어 대대적인 도시 재건사업에 들어갔다. 도시 <로마>의 대규모 재건사업으로는 제국 <로마> 몰락이후 거의 1000 여 년만의 일이다. 중세 오랜 기간 동안 방치되었던 수로를 정비하고 새로운 도시 계획에 따라 거대한 공공 건축물들이 들어선다. 대도로 인근에는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고 기존 건축물에도 리모델링 사업이 강력히 추진되었다. 그때 세운 대다수의 건축물들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에게 사랑받은 곳이 되었다. 여러 개의 광장과 분수들 중 관광객들이 가고 싶은 곳 으뜸으로 친다면 스페인 광장이 아닌가 싶다. 분수로 시작되어 길고 긴 계단으로 이어지고 언덕으로 마무리 되는 스페인 광장. 영화 <로마의 휴일>로 더욱 더 유명해진 이 스페인 광장은 어떤 유래가 있는지? 이번호에는 분수부터 자세히 알아보자.
넘치는 아이디어는 분수의 매력
애초에 이 분수는 17세기 초 마페이 바르베리니가 교황 우르바누스8세(Urbanus 8, 1624-1644)에 즉위하자 피에트로 베로니니(Pietro Bernini)에게 의뢰해 만들어졌다
폰타나 델라 바르카치아(Fontana della barcaccia, 난파선)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조그만 분수는 크기도 작고 물줄기도 적어 볼품없이 보이지만 그래도 로마를 방문했을 때 눈여겨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분수가 로마 바로크식 분수 중에서 원조격이기 때문이다. 피에트로 베르니니는 로마의 바로크를 이끌어온 지안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zo Bernini, 1598-1680 )의 아버지이며 훗날 아들 베르니니는 교황의 부름을 받고 조각가로서 활약하는데는 아버지의 명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하지도 않고 시원스럽지도 않는 분수에서 보아야할 것이 있다면 분수를 만든 피에트로 베르니니의 참신한 재치이다. 분수의 형상을 보면 마치 배가 침몰하여 제목 <난파선>에서 말해주듯이 물에 잠긴 형상을 하고 있다. 뿜어 나오는 물줄기는 힘없이 뱃머리의 작은 구멍 한 두 개에서 흐르듯이 졸졸 넘쳐 나온다. 이런 분수가 무슨 볼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알고 보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재미있는 장면이다. 처음부터 이 지역은 분수터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분수를 만들 때 제일 중요한 조건중의 하나는 힘차게 뿜어나오는 물의 양과 세기인데 이 지역은 분수터로서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분수에서는 수원지와 분수와의 표고차이가 중요한데 스페인광장은 로마시에서 비교적 높은곳에 자리잡은 까닭에 처음부터 힘찬 물줄기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전기 모터를 사용할 수 없었던 예전에는 분수의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자연낙차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때 베르니니가 생각해 낸 것이 난파선이었다. 어차피 힘찬 물줄기가 뿜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힘찬조각은 있으나 마나한 상황이였고 주어진 상황에 가장 잘 맞는 테마는 난파한 배에서 겨우 물이 넘쳐 흘러나오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로 재미있는 아이디어였고 반응도 좋았던 모양이었다. 여기서 흘러 나온 물은 그 아래 퀴리날레 언덕 아래로 흘러 그 유명한 트래비 분수를 이루고 그 다음 피에트로 베르니니의 아들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가 만든 나보나 광장의 4대하의 분수로 이어지니 베르니니 가문은 실로 로마의 분수 조각의 일가를 이룬 셈이다.
계단아래는 스페인영토, 위는 프랑스 영토, 일찍 이루어진 세계화
분수보다 100년 뒤에 프랑스 대사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지는 스페인계단은 프란체스코 데 산크티스(francesco de sanctis)에 의해 설계된 로코코시대의 대표적 계단이다. 프랑스 영토인 언덕 위와 스페인 영토인 광장을 연결하기 위하여 137개로 이루어진 이 계단은 상당히 높고 많은 수의 계단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철죽 화단을 설치해서 특유의 형태를 이루고 있고 지루한 감을 없앴다. 계단 아래보다 위가 좁아지게 하여 착시현상에 의한 원근법을 노렸고 올록과 볼록의 곡선을 연속 연결해 로코코특유의 경쾌함을 살렸다.
로마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이 계단에서 사진 한번 안 찍고 돌아오는 사람은 드물지만 정작 계단의 아름다움은 항공촬영 장면을 보아야만 그 형태미를 실감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이 광장에서 정말 눈여겨 볼 것은 분수가 아니겠는가.
137개의 계단을 세면서 다 밟고 올라가면 오베리스크와 함께 산 트리니타 데이 몬티(성 삼위일체)교회가 마주친다. 르네상스부터 프랑스 영토였던 이 언덕의 교회는 지금도 프랑스소유의 교회로 남아있다. 특히 17세기 초부터 이탈리아 문화를 동경해왔던 프랑스는 루이 14세때 절정에 달해 적극적인 문화 교류를 꿈꾸어 로마주재 프랑스 아카데미도 설립하는데 현재도 그 당시 설립했던 건축물이 남아 있다. 바로 이 교회에서 왼편으로 5분 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빌라 메디치(Villa Medici)이다. 1666에 설립된 이 아카데미는 처음에는 화가들에게 로마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1803년부터는 음악가들에게도 적용 되 베를리오즈, 드뷔시도 여기서 수학했다. 오늘날에도 당시 북유럽의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분위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언덕이다.
야경이 더욱 아름다운 바르카치아. 물줄기가 약한 조건을 그대로 잘 이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분수주변에 화려한 조각이 장식되었더라면 과연 빈약한 물줄기와 어울렸을까하는 생각을 해보면 대단히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아니겠는가?
2020년 3월 20일, 1163호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