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 (4)

후기 르네상스 회화: 매너리즘

이탈리아 예술사가 바자리(G. Vasari)가 <미술가 열전, Le Vita De’ Piu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 >에서 사용하였던 매너리즘 명칭은 이탈리아어로 양식, 기법을 뜻하는 ‘Di Maniera’란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미술의 방식이나 형식을 계승하되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매너 혹은 스타일)에 따라 예술작품을 구현한 예술 사조로서, 후대에 이들의 미술을 ‘매너리즘’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이들이 자신만의 개성적인 스타일에 따라 그렸기 때문이다.

후기 르네상스 미술이라 불리기도 하는 매너리즘은 1520 년경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후반에 등장한 것으로, 바로크 양식이 이탈리아를 대체하기 시작한 이탈리아에서 약 16 세기 말경까지 지속되었다.

매너리즘 탄생 배경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갈 무렵, 젊은 예술가들은 위기를 겪 게된다. 르네상스 전성기를 통해 회화가 달성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해부학, 빛, 물리학 및 인간이 표현과 몸짓에 감정을 등록하는 방식, 비유적 구성에서 인간 형태의 혁신적인 사용, 색조의 미세한 그라데이션 사용가지 모든 부분이 완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젊은 예술가들은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했고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만 하였다.

정치적으로도 이시는 데 혼란의 시대이기도 하다. 매너리즘이 유행하던 시대(15세기 중반~16세기 중후반)의 유럽은 서로마 멸망 이래 최대의 격변기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광풍은 전 유럽으로 퍼지고 있었으나, 정작 르네상스의 출발점이었던 이탈리아는 발루아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경쟁 속에 파묻혀 버렸다. 중세의 정치제도는 마키아벨리로 대표되는 현실적인 정치론에 파묻혔다. 또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기존의 중세적 질서가 통째로 흔들리기에 이른다.

한편 르네상스 예술의 주요한 후원자 중 하나였던 가톨릭교회는 그 세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시기이다. 이러한 격변기 속에서 르네상스적인 가치었던 조화롭고 이상적인 미의 기준은 조금씩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매너리즘 회화의 특징

매너리즘의 단초를 처음으로 제공한 예술가는 미켈란젤로였다. 나이가 들면서 점자 신앙에 깊게 빠져들었던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들에서는 르네상스적인 안정감이 무뎌지고 격정적이고 비례를 일부 포기한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최후의 심판>이 대표적인 이 무렵의 작품으로, 이 그림은 구도에 따라 사람들의 크기가 다르고, 통일성보다는 격정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틴토레토, 엘 그레코 등의 예술가들에 의해 본격화되어 전 유럽을 휩쓸게 된다.

매너리즘 작가들은 과장된 단축법과 원근법으로 불안정한 공간, 이상적인 비례에서 벗어나 길게 늘려진 인물, 부자연스런 포즈, 튀는 색조 등을 사용하여 ‘르네상스‘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들은 때로는 과도하게 기이하고 이상 심리적인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특한 매너리즘 주의의 특징들은 미술사상 처음으로 작가의 개성이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근대 미술의 원류로서 재조명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매너리즘은 부정적인 어휘로 알려져 있지만, 미술사에서는 획일화된 표현에서 다양한 표현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황금비율처럼 공식화된 구도가 아니라, 인체 비율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식으로 화가의 느낌을 살려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화가의 개성을 담은 매너리즘은 곧이어 등장하는 극적인 표현을 추구하는 바로크 시대의 발판이 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피렌체의 폰토르모(Pontormo)로부터 파르미지아니노(Parmigianino), 로소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 브론치노(Agnolo Bronzino), 후기의 ‘미켈란젤로, ‘틴토레트(Tintorette), 그레코 (Greco) 등의 화가들이 ‘매너리스트’로 분류된다.

매너리즘에 대한 평가

원래 매너(Manner)란 특정한 양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매너리즘은 특정 기법이나 양식을 따라 작업하는 것을 의미했다. 미술사에서 이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전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나온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같은 거장들에 비해 이후에 등장한 미술가 세대의 작품들이 보잘 것 없거나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대표적인 미술사학자가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이다. 그는 1520년 라파엘로가 사망한 후 회화에는 더 이상 고전적인 작품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당한 기간 동안 뵐플린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매너리즘을 말기적 또는 퇴폐적이고 비창의적인 것으로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적 의미는 20세기 초, 막스 드보르작(Max Dvořák)을 위시한 독일 학자들의 재평가로 일소되고, 매너리즘 주의는 한 시대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전 시대의 천재들이 ‘신고전주의‘ 양식을 완성한 시점에서 후배 화가들이 그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고자 한, 새로운 양식 창조의 시도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이 대두된 현대미술에 와서, ‘완성도’보다 ‘메시지’ 혹은 ‘정제된 표현’ 내지는 ‘혁신’ 등의, 반기교주의가 형성되면서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에 긍정적 의미가 추가되었다. 조금 이상해보이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정해진 것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1209호 28면, 2021년 3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