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업단에서는 ‘20세기의 지휘자’를 주제로 8명의 지휘자를 선정하여 그들의 생에와 음악세계를 살펴보도록 한다.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바렌보임은 파리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와 시카고심포니의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2000년에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지휘자 자리에 오른 세계적 지휘자로.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쇼팽 등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진 천재형 피아니스트. 게다가 그는 피아졸라의 탱고를 맛깔스레 연주해내는 크로스오버 연주자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그는 <평행과 역설>, <음악 속의 삶> 등을 통해 정치와 문화의 관계를 통찰해온 평론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는다”고 항의하면서, 분쟁지역을 찾아가 베토벤을 연주하는 지식인이다.
그래서 그에게 ‘전인적’(全人的)이라는 수식어가 어 있다. 전인적 음악가 바렌보임. ‘전문화’라는 구호 아래 정치와 경제는 갈수록 막강해지고 개인의 능력과 시야는 점점 협소해지는 세상. 그렇게 인간의 삶이 갈수록 왜소해지는 21세기에 특별하면서도 빛나는 존재이다.
바렌보임은 나치의 공포를 피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한 러시아 유대계 집안에서 1942년에 태어났다. 피아니스트이던 아버지에게 음악을 사사한 바렌보임은 어린 나이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이미 7세 때 무대에 선 바렌보임은 그의 가족이 이스라엘로 이주하자 장학금을 받고 홀로 유럽을 돌면서 대가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후일 그가 “인생의 9년간은 아르헨티나에서 보내고, 나머지 인생은 다른 곳을 떠돌았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떠돌이인생은 10세 때부터 시작됐다.
1973년에는 에든버러 음악제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를 지휘해 오페라 무대에도 데뷔했다. 1975년에는 게오르그 솔티의 뒤를 이어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해 처음으로 중요한 상임 직책을 맡게 되었다. 바렌보임은 이 악단과 협업으로 자신과 악단의 연주 곡목을 상당히 넓혔고, 또 피아니스트로서도 악단 단원들과 실내악 공연을 개최하는 등 강한 친화력을 보여주며 1989년까지 14년간 역량을 마음껏 펼쳤다.
1981년에는 바그너 오페라 공연으로 유명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처음 초빙되었다. 이후 1999년까지 계속 바이로이트 축제에 출연하면서 바그너 해석의 권위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1988년부터 1992년까지 공연된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은 마지막해인 1992년에 실황 음반 및 영상물로 제작되어 큰 호평을 받았는데 이것은 바렌보임의 경력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간 유망주로 평가받던 바렌보임은 이 음반을 통해 정상급 바그너 지휘자로써 입지를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거장의 반열로 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즉시 베를린으로 날아가 3일 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이는 동베를린 사람들에게 더 이상 공포와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환희의 진실을 알려주는 특별한 음악회였고, 세계인에게 평화와 자유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 베를린 국립오페라단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방문한 바렌보임은 앙코르 곡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서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히틀러가 바그너의 추종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바그너 곡을 연주하기 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앙코르 곡을 듣기 싫은 관객은 나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지만 결국 관객들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이 일로 이스라엘 국회는 그를 기피 대상으로 규정하고 바그너 연주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에서 연주활동을 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이후 그의 콘서트가 평화를 기원하는데 있다는 진정성이 알려짐에 따라 점차 관계가 회복되었고, 2004년 그는 이스라엘의 울프재단이 수여하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울프상’의 예술 부문 수상자가 되었다. 시상식 자리에서 바렌보임은 “이스라엘의 중동정책은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에 상치된다. 팔레스타인과 아랍국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90년대에는 독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심취했다. 독일 낭만음악의 서정적이면서도 중후한 매력을 세련되고도 여유롭게 표현하며 느린 템포로 시작해 정점을 향해 점차 고조되는 음악을 힘 있고 격정적으로 연주했다. 그는 독일 낭만주의, 그중 특히 바그너 음악의 독보적인 일인자로 올라섰다.
철학 문학 등 인문학에 조예가 깊고 날카로운 평론가답게 이성적이며 때로는 독설가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남미 특유의 열정과 유희는 그의 음악을 통해서 나타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르헨티나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케스트라와 펼치는 정기 공연에는 국민적 음악이 된 탱고를 수만 명 관객에게 선사한다. 아르헨티나에서 그는 조국을 빛낸 대표적인 음악가로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 못지않은 환영을 받고 있다.
바렌보임의 지휘에는 강하고 빛나는 역동적인 선율의 움직임과 인간의 깊은 내면을 탐구하는 은은한 음색이 그대로 배어 있다. 바렌보임의 음악은 화려한 기교와 능숙한 테크닉에 의존한 수동적인 연주가 아니라 지휘봉을 내젓는 순간 음향에 시적인 영감까지 불어넣는 내면적이고 창조적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고 있다.
한편 바렌보임은 한국 국민들에게도 친숙하다. 1984년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또 우리나라의 통일을 기원하며 2011년 8월 15일 비무장지대(DMZ) 내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공연장에서 베토벤교향곡 9번 ‘합창’교향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다니엘 바렌보임은 한국을 방문한다. 약 한 달 뒤인 5월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1215호 23면, 2021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