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26)

세기말(19세기) 화려함이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Wiesbaden) ⑤

도시 스스로가 빚어내는 유럽 문화의 아름다움을 체험하자
고대 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알려진 비스바덴, 중세에는 북구의 니스(독일어로 Nizza)로 유럽 귀족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던 비스바덴, 근대 건축의 정수인 신고전주의, 역사주의, 유겐트스틸 등 세기말의 화려함이 원형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
이번 비스바덴 역사산책을 통해 독일의 전형적인 제후국가의 하나인 나사우 공국(Herzogtum von Nassau)을 중심으로 격동의 19세기의 독일 역사, 오늘날 헤센주의 탄생을 살펴보며, 더불어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한다.


빌헬름 가(Wilhelm Strasse): 비스바덴 최고 명성을 지난 거리 ②


Kurhaus가 들어서다
온천휴양이 19세기초 상류층과 귀족을 위한 오락 시설로 점점 유명해지면서 비스바덴의 중요성도 매우 커졌갔다.
나사우공국이 출범하고 4년 뒤 나사우공국은 밀려드는 온천 휴양객들을 위한 휴양, 오락 시설 확충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고, 비스바덴 시를 건축한 Christian Zais가 1810년 오늘날 Kurhaus 자리에 Kurhaus(구 쿠어하우스)를 건축한다. 구 쿠어하우스는 고전주의 양식으로 중앙과 측면에 출입구를 만들었고, 당대 최고의 건축물로 찬사가 이어졌다. 요한 볼프강 괴테 역시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 구 쿠어하우스는 약 100년 뒤, 결국 헐리게 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다름 아닌 휴양객들의 폭발적인 증가 때문이다.
19세기에 온천 휴양지로 명성을 얻은 비스바덴은 온천 이용객의 수는 1840년 20,000명에서 1910년 10배인 200,000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구는 10,000명에서 1906년 100,000명으로 증가하여 곧 다른 휴양지인 바덴바덴(Baden Baden)을 추월했다. 이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더 크고 현대적이며 대표적인 쿠어하우스가 필요했다.
이러한 발전으로 기존의 Kurhaus는 증축이 필요로 하게 되었고, 비스바덴 시는 증축보다는 기존의 건축물을 헐고, 새로운 Kurhaus를 건축하기로 결정했고, 1905년 결국 구 쿠어하우스는 헐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구 쿠어하우스의 흔적은 쿠어하우스 뒤편 정원인 Kurpark 입구, 도스토예프스키 흉상 뒤편, 그리스식 기둥만으로 남아있다. 두 기둥으로 받쳐진 부조에는 로마숫자로 구 쿠어하우스의 건립연도인 1810년(MDCCCX)이 새겨져 있어, 구 쿠어하우스의 옛 영화를 조금이나 느낄 수 있다.


오늘날의 Kurhaus
비스바덴 시는 1905년 건축가 Friedrich von Thiersch에 새로운 쿠어하우스 건축을 의뢰, 600만 골드 마르크에 아르누보 모티브를 사용하여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새롭고 웅장한 건물을 지었다. 새로운 쿠어하우스 건설을 추진한 카이저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II.)는 1907년 개관식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온천장(das schönste Kurhaus der Welt)”이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비스바덴 시의 상징이 된 새로운 쿠어하우스(이후 쿠어하우스)는 본관 앞 잔디정원(Bowling Green)에 삼단 분수대가 있고 양 옆으로 바로크 양식의 열주(Kolonaden)로 장식된 두 건물(Kleine Casino, Hessisches Staats-theater Wiesbaden)이 서 있다. 이 열주는 129m로 유럽에서 가장 긴 열주이다.
쿠어하우스 본관을 들어가면 로비 중간에 21미터 높이의 반원 천장이 있다. 그 주변에 황금색과 파란색의 화려한 천장이 돋보이는 대형 연회장(또는 콘서트홀), 노란색 대리석으로 만든 와인방(Weinsalon), 조개와 조약돌,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조개방(Muschel-saal), 루이 16세 스타일의 방(Salon-Carl-Schuricht) 등 총 12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각종 콘서트, 회의, 모임, 결혼식, 파티 등이 열린다.
비스바덴 시는 이 가운데 가장 큰 연회장은 Friedrich-von-Thiersch Saal, 두 번재로 큰 연회장은 Christian Zais Saal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쿠어하우스를 건축한 두 건축가를 예우하였다.
가장 큰 연회장 Friedrich-von-Thiersch-Saal의 기둥 위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때로는 라틴어 비문으로 인해, 로마시대부터 있었다는 오해를 낳곤 한다.
여기서 라틴어 비문 전문과 해석을 소개한다.
“IMP GUILELMO II AEDEM ANTE HOS CENTUM ANNOS CONSTITUTAM UT RECREARENTUR AEGROTANTES A SOLO IN MELIOREM STATUM ET ASPECTUM REFECERUNT EXORNAVERUNTQUE ORDO ET CIVES MATTIACI HYGIEAE CONSECRATA EST IPSO PRAESENTE IMPERATORE ANNO P CHR N MCMVII FUNDITUS RESTITUTA ANNO P CHR N MCMLXXXVII”
“카이저 빌헬름 2세 치하에서 비스바덴 시민과 평의회는 100년 전에 병자들이 고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어진 쿠어하우스를 더 나은 상태와 모습으로 재건하고 장식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탄생 후 1907년에 황제의 면전에서 여신 Hygieia에게 봉헌되었습니다. 1987년에 완전히 복원되었다.”
Kurhaus는 건물 구조는 중앙 현관과 같은 크기의 두 개의 날개로 구성되어 있다. 남쪽 별관에는 세공 마루와 기둥이 늘어선 대형 연회장(Friedrich-von-Thiersch-Saal)이 중앙에 있다. 콘서트 장으로도 사용가능한 이 연회장은 최대 1350개의 좌석을 갖추고 있으며 크기는 40m×18m×17m이다.
북쪽 날개에는 작은 연회장(Christian- Zais-Saal)과 레스토랑 및 카지노(룰렛, 블랙잭, 포커)가 있다. 이 카지노 공간은 초기에는 와인 살롱이었다.
쿠어하우스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중앙 로비와 만나는데, 21m 높이의 돔으로 덮인 큰 홀 형태로 북쪽과 남쪽 날개 사이에 있다. 쿠어하우스 정문은 이오니아식 기둥 주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구의 Aquis Mattiacis (Mattiakers의 물에 봉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Mattiacis는 로마가 이곳을 점령할 때, 이곳에 거주하던 켈트족 Mattiakers 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로마는 정복지에 그 원주민과 관련된 이름을 짓곤 하였다. Aquis는 물이라는 Aqua 단어가 격변화 된 것으로, 이 명칭에서고 고대 로마시대부터 비스바덴은 온천지였음을 알 수 있다.
쿠어하우스 본관 뒤로는 영국식 정원이 펼쳐지는데, Kurpark이다.


Kurpark
Kurpark는 1807년부터 1810년 사이 구 쿠어하우스의 건립과 함께 그 부속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Kurpark보다 규모도 작았고, 구조도 오늘날과는 많이 달랐다.
오늘날의 형태로 공원이 조성된 것은 1852년경으로 영국식 조경 정원 스타일로 많은 부분이 개조되었다.
Kurpark은 도심의 Kurhaus 에서 Sonnenberg의 중심까지 Rambach 계곡의 75,000m²에 걸쳐 확장되었는데, Kurpark의 울타리 구역을 지나 끝없이 펼쳐지는 녹지인 Kurpark와 Rambachtal은 측면으로 북쪽의 Sonnenberger Strasse와 남쪽의 Parkstrasse로 둘러싸여 있다.
쿠어하우스 본관 뒤로 나서면 앞에는 조그만 호수, 측면으로는 콘서트를 개최할 수 있는 조개 모양의 야외 행사장이 있어, 이곳에서는 다양한 주요 이벤트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최대 60명의 오케스트라를 수용할 수 있으며, 행사장 앞 공간에는 최대 3,200석의 좌석이 마련될 수 있다.
호수를 중심으로는 계절에 따라 목련, 철쭉, 진달래,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원예사의 손길에 잘 가꾸어져 있으며, 호수에는 6미터 높이의 분수대와 오래되고 이국적인 나무들로 운치를 돋우고 있다.
Kurpark 입구 근처인 작은 니스 광장(Nizzaplätzchen)에는 앞에서 소개한 사암 기둥을 비롯한 여러 예술품과 기념물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Fyodor Dostoevsky의 흉상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비스바덴을 자주 방문하였으며, 방문할 때마다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겼고, 이 경험을 토대로 “도박꾼(the Ganbler)”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Kurpark에는 말년을 비스바덴에서 보낸 독일의 대문호 Gustav Freytag의 동상이 호수 뒤편 울타리 경계 부분에 서있는데, Kurpark에서는 가장 큰 동상이다. 이외에도 Ferdinand Hey’흉상, 플루트 연주자 동상 등이 있다.
오늘날에는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초창기에는 쿠어하우스 방문객들에게만 공개되었었고, 1873년 도박 금지령이 발효되자, Kurpark는 수입증대를 위해 입장료를 내는 조건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였다. 입장료를 받던 건물은 아직도 Kurpark 입구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Kurpark를 나와 국립극장으로 발길을 옮기며 빌헬름 가(Wilhelm Strasse)를 계속 살펴보도록 한다.(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