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51)

중세의 전통이 가득한 뷔르츠부르크(Würzburg) ➂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뷔르츠부르크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중세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라는 점이다.

독일이나 유럽에서 도시이름에 “ burg, berg, burgh” 등이 들어가면 몇 도시의 예외를 제외하면 중세시대 성장한 도시로 보면 틀림이 없다. 우리가 잘 아는 Nürnberg, Bamberg, Heidelberg“ 등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다.

이러한 도시이름의 특징뿐만이 아니라, 도시 구도가, 산위에 건축된 전쟁 방비용 대규모 성, 그리고 직선으로 다리를 가로지르면, 대성당, 그리고 시장 광장, 도시 새내의 거주 궁전 등 도시의 구조도 전형적인 중세도시이다.

뷔르츠부르크는 이외에도,1719년까지 대주교가 통치를 했던, 제정일치의 도시이기도 했다. 중세 시대 교권이 강한 지역의 특징이다. 이에 해당하는 도시들은 마인츠, 트리어, 쾰른 등 우리가 잘 아는 대도시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독일로만 국한해도 20여 군데가 넘는 지역을 대주교가 세속적 통치자로서 군림하였다.

이와 더불어 유럽 중세를 개창했던 칼 대제 시절, 당시 5대 가문(부족), 즉 작센, 로트링엔, 슈바벤, 프랑켄, 바바리아 가문이 다스렸던 지역이라는 점이다.

프랑켄은 아샤펜부르크로부터 뷔르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뉘른베르크 지역을 아우르고 있는데, 이들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바이에른 의식보다는 프랑켄 인(人)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다. 그러기에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주 이름도 ‘Frankenwein’인 것이다.

뷔르츠부르크의 특징을 또 하나 든다면 화려한 바로크 건축의 가득한 도시이며, 독일에서 가장 많은 성모상이 건축물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뷔르츠부르크는 ‘마돈나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마리엔베르크의 성을 시작으로 뷔르츠부르크 시를 둘러보며, 이러한 특징을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뷔르츠부르크 시내로 들어가다

지난 회에서는 뷔르츠부르크를 방문하면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은 마리아산(Marienberg) 정상에 웅장하게 자리잡은 성채, 즉 마리엔베르크 요새(Festung Marienberg)를 함께 둘러보았다.

이제 우리는 마리아산을 내려와 중세 뷔르츠부르크의 숨결이 살아있는 구시가지로 들어가 본다.

마리엔베르크 요새에서 도보로 내려오면 마인강과 마주하게 되고, 그곳에는 뷔르츠부르크에서 마인 강을 건너는 다리 중 가장 오래 된 다리와 만나게 된다. 옛 마인 다리(Alte Mainbrücke)이다.

Käppele

Alte Mainbrücke에 오라서면 다리 저편에 중세풍의 뷔르츠부르크도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면의 중세도시뿐만 아니라 뒤를 돌아 마리아산 맞은 편 언덕을 보면 그림과 같은 예배당이 보인다. 바로 Käppele이다.

정식 교회가 아니라, 개인의 후원으로 지어진 예배당을 뜻하는 Kappelle가 올바른 명칭인데, 이 예배당은 프랑켄지역 방언에 따라 Käppele로 불렸고,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마리아산 옆의 니콜라우스산(Nikolausberg)에 자리 잡고 있는 Käppele는 Balthasar Neumann의 설계에 따라 1747년에서 1750년 사이에 기존의 예배당 위에 세워졌다.

Balthasar Neumann의 명성에 걸맞게 바로크영식의 아름다운 건축과 내부 장식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예배당에 오르는 계단과 그 계단 옆 벽면에 세워진 예수 수난의 조각이 더욱 유명해, 오순절 주간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Käppele를 방문하고 있다.

시간을 넉넉히 갖고 뷔르츠부르크를 방문한 독자분들은 이 Käppele를 방문할 것을 적극 추천한다.

옛 마인 다리((Alte Mainbrücke)

뷔르츠부르크에서 마인 강을 건너는 다리 중 가장 오래 된 이 다리의 역사는 113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무너진 다리를 1488년 다시 복구하였다. 그 역사성 때문에 ‘옛 마인 다리(Alte Mainbrücke)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행자 전용 돌다리로 오늘날에도 사람이 이 다리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다닌다. 다리의 양편으로는 총 12개의 석상이 서 있다. 모두 그 수준이 범상치 않은 정교한 조각으로서, 뷔르츠부르크의 왕이나 주교, 또는 성자를 모델로 하고 있다. 1728/29년에 6개가 만들어졌고, 1730년에 나머지 6개가 마저 만들어졌다.

다리 위에 있는 성인, 왕, 주교 등의 동상들은 마리아산을 내려와 시내방향으로 좌,우 방향으로 볼 때 다음과 같다.

칼 대제(Karl der Große), 뷔르츠부르크 주교였던 브루노성인(Der Heilige Bruno), 루터의 종교개혁에 맙서 가톨릭 개혁을 이끌었던 Karl Borromäus 성인, 뷔르츠부르크 초대 주교였던 Burkard 성인, 다리의 수호성인인 Johannes von Nepomuk, 프랑켄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한 Kolonat 성인,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Josephus 성인, 성녀 마리아, 뷔르츠부르크를 통치한 Schönborn가의 수호성인 Friedrich I. von Utrecht, 프랑켄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한 Kilian 성인, 칼 대제의 아버지인 Pippin(der Jüngere), 그리고 프랑켄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한 Totnan성인이다.

참고로 뷔르츠부르크와 인근 프랑켄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한 사도는 Totnan, Kolonat, Kilian 세 명의 성인인데, 뷔르츠부르크에서는 Kilian 성인을 제일로 치고 있다. 그러기에 6월에 열리는 뷔르츠부르크 시 축제도 “Kilian Fest”이고, 대성당도 “Kilian Dom”으로 불린다.

Alte Mainbrücke에서는 마리아산 요새(Festung Marienberg)가 잘 보이고, 요새 옆으로 보이는 Käppele는 마인강과 Alte Mainbrücke 석상들과 어우러져 한편의 그림과 같은 장관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구시가지 방향으로는 대성당 거리(Domstraße)가 펼쳐져 있으며, 구 시청사(Altes Rathaus)와 대성당(Dom St.Kilian)의 높은 탑이 경쟁하듯 서 있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이와 더불어 다리 주변에는 유서 깊은 레스토랑이 영업 중인데, 마인 강의 경치가 한 눈에 보이는 테라스가 매우 전망이 좋다. 이런 레스토랑에서는 뷔르츠부르크의 특산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프랑켄 와인(Franken Wein)도 판매한다.

구 시청사와 Vierröhrenbrunnen

대성당(Dom St.Kilian)에서부터 옛 마인 다리(Alte Mainbrücke)까지 이어지는 길이 대성당 거리(Domstraße)다. 주변에 쇼핑몰이나 상점, 그리고 노천시장이 늘어선 번화가인데, 바로 이 거리에 구 시청사(Altes Rathaus)가 위치하고 있다.

구 시청사는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 있는 신 시청사(Stadtverwaltung)와 연결되어 있는데, 건물 한 채가 아니라 여러 채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이 다시 큰 신 시청사와 연결되어 주변이 다소 복잡하다. 구 시청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오늘날 라츠켈러(Ratskeller; 시청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로 사용되는 그라펜엑카르트(Grafeneckart), 그리고 그 옆으로 골목 사이를 들여다보면 르네상스식 건물인 로터 바우(Roter Bau)가 보인다.

Grafeneckart는 뷔르츠부르크에서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다. 원래는 주교청 관료들을 위한 건물이었는데, 1256년부터 시민들은 도시 행정에 크게 참여하게 되었고, 1316년에 시장과 의회는 주교 주권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시민 투쟁의 가시적인 행동으로 Grafeneckart를 인수하여, 시민들을 위한 시청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시청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는데, Grafeneckart는 뷔르츠부르크 시청의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456년에 Grafeneckart 탑에 종을 주조하여 탑시계가 완성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뷔르츠부르크 대공습일인 1945년 3월 16일 뷔르츠부르크 시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는데, 다행히 Grafeneckartsms vhrrurdpeh 건물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Roter Bau는 전면만이 살아남았다. 1949년이 되어서야 시의회는 Roter Bau로 돌아갈 수 있었다. 시 의회 중앙 홀 입구 문에는 “죽음과 파괴보다 더 강한 것은 살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입니다. (Stärker als Tod und Vernichtung ist unser Wille zum Leben.)”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 고백은 그 어렵던 시대를 증거하고 있다.

구 시청사 건너편 바로크 양식의 분수는 피어뢰렌 분수(Vierröhrenbrunnen) 직역하면 “네 개의 파이프 분수”라는 뜻으로, 아마도 네 방향에서 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 물이 나오는 분수, 그리고 높은 오벨리스크와 그 위의 성자상이 합쳐진 모습으로, 뷔르츠부르크의 유명한 랜드마크이다. 관광을 하다 서로 헤어졌을 때, 다시 만나기로 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원래 Vierröhrenbrunnen 위치에는 중세시대부터 우물이 있었는데, 1733년 Balthasar Neumann이 최초의 도시 수도관을 건설했을 때 뷔르츠부르크 최초의 공공 분수대가 이곳에 만들어졌다.

약 30년 후, 이 중앙 광장을 위해 더 크고 더 대표적인 분수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졌고, 1765/1766년에 완성되었다.

분수대는 네 면에서 물을 뿜어내는 돌고래가, 그리고 각각 위에는 용기/힘(Fortitudo), 지혜(Prudentia), 절제(Temperantia), 정의(Justitia) 등 기본 미덕이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위 분수 구조는 문장으로 장식된 오벨리스크로 좁아지고, 프랑코니아(Frankonia)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있다..

1346호 20면, 2024년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