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국문화재를 만나다(5)

정조 개인 문집 교정본 완질, 일본 도서관에 있었다

2016년 여름 일본 도쿄의 세이카도문고에서 ‘홍재전서’의 교정본이 발견되었다. 홍재전서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직접 지은 시와 문장을 모아 엮은 문집으로서, 1814년(순조14)에 총 184권 100책으로 간행됐다. 조선 역대 국왕의 저술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이며, 금속활자인 정리자로 인쇄됐다. 내용은 시문뿐만 아니라 신하들과의 응답, 재위기간 중에 편간된 서적의 해제 등 다양한 내용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

홍재전서의 최종 간행은 1814년 3월에 이루어졌으나 완간까지 총 4차례의 편찬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1차 편찬은 1787년 8월에 있었으며, 60권으로 2질이 사자관(공문서 글씨를 쓰는 관직)이 쓴 필사본으로 만들어졌다. 60권 본은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운현궁유물로 전해진다. 총 60권 60책으로 책 하나하나를 비단으로 장황한 뒤 10책씩 1함으로 묶어 정교하게 제작된 포갑에 싸서 보관됐다.

2차 편찬은 1799년 12월에 191권으로 2질이 필사본으로 만들어졌다. 3차 편찬은 1801년 12월에 있었으며 184권 100책이 필사본으로 만들어졌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된 100책의 필사본이 이에 해당한다.

4차 편찬의 결과물이 1814년에 간행한 184권 100책 본이다. 30질이 간행된 것으로 알려지는데 규장각, 장서각, 수원화성박물관 등에 완질로 남아 있다. 세이카도문고의 홍재전서는 100책의 정리자(금속활자) 인쇄본으로 4차 편찬이후 간행 직전 교정 인쇄본이다. 홍재전서가 1814년 3월에 간행되었는데, 그 직전에 교서관에서 교정용으로 인쇄하고 실제 교정을 본 책인 것이다.

세이카도문고의 홍재전서 100책의 교정은 원고 교정, 판서본 교정, 인쇄본 교정 등 여러 교정 유형 중에 인쇄본 교정에 해당한다. 완간된 홍재전서와 대조해 보면 교정 표시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 반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00책의 완질본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속활자 교정본으로 교정의 실태뿐만 아니라 김재찬, 김조순, 심상규, 남공철 등 교정 관원으로 참여했던 주요 인물의 흔적도 확인할 수 있어서 의미가 큰 책이다.

서지학 연구의 보고 세이카도문고‘…한국 전적 6353,436책 소장

교정본 홍재전서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 도쿄의 세이카도문고는 일본 도쿄의 세타가야구에 있는 미술관과 도서관으로, 20만여 권의 고전적(古典籍)을 소장하고 있어 도요문고, 나이가쿠문고 등과 함께 동아시아 서지학 연구의 보고로 불린다. 1892년에 이와사키 야노스케가 설립했고, 그가 사망하자 아들 이와사키 고야타가 뜻을 계승해 문고를 발전시켰다. 일본 국보 7점, 중요문화재 83점을 포함하여 대략 20만 책(한적 12만, 일본서 8만)의 고전적을 수장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전까지 이 문고에는 한국 전적이 약 100종 정도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에서 2016~2017년 2년에 걸쳐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635종 3,436책에 이르는 한국의 고전적이 소장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그동안 세이카도문고에 있는 한국 전적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고서목록에 한국 전적은 ‘국서(國書, 일본서)’에 포함되거나 중국서인 ‘한적’에 수록되었고, 일부분만 항목으로 구별하고 별도의 한국본 목록의 간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이카도문고에 소장된 전적의 유입은 구입, 기증 등 다양한 경로의 장서 확충정책으로 이루어진 것이 확인된다. 한국 전적에 대한 별도의 수집경로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고에 포함된 기우치 주시로의 장서를 다량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기우치 주시로는 설립자인 이와사키 야노스케의 형 야타로의 차녀와 결혼했던 인물로, 그가 죽기 직전에 그의 장서가 세이카도문고에 들어오게 되면서 전해진 것이다. 그의 장서는 1924년에 세이카도문고로 편입되었고, 그 중에 한국 전적은 1905년부터 조선통감부의 상공국장으로 조선에 왔다가 1910년 농상공부 장관에 지명되기도 한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 학자들이 서물동호회를 조직하고 전적을 수집한 일련의 활동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들이 수집한 전적의 일부 또는 전체가 일본의 각급 도서관에 남아서 문고로 남은 것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엔 완질본 없는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도 세이카도문고에

635종 3,436책에 달하는 세이카도문고 한국 전적에는 앞서 언급한 홍재전서 외에도 국내에 결질로 일부만 남아 있는 전적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게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이다.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는 송나라 당신미가 짓고 구종석이 수정한 ‘경사증류대전본초’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유통된 대표적 약물학 서적으로 중국 본초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대부분의 본초학 서적에서 언급되며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저작물이다.

조선에서 다시 간행된 경사증류대전본초와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 중에 경사증류대전본초는 목판본으로 번각되었지만,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는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1577년경에 간행됐다. 을해자는 갑인자와 더불어 조선 전기의 대표적 금속활자다. 기존의 중국본과는 다른 10항 19자의 판식으로 새롭게 편집된 것이다.

중국 회명헌 간본과 비교해보면, 자체나 음각 및 삽도의 판각방식이 상당히 유사하지만 항자수나 어미의 모양이 다르다. 항과 자간을 넓혀 글자를 좀 더 크고 여유롭게 배열한 것도 특징이다.

국내 소장본은 모두 온전하지 않은 결질이며 고려대 만송문고에 8책(목록, 권1-8, 권13-14, 권20-26)을 제외하고 1책씩만 남아 있다. 세이카도문고본은 위의 간본과 동일한 을해자본으로 30권 11책의 완질이다. 이는 조선전기 금속활자인쇄술 연구에 크게 활용될 수 있는 자료이며, 무엇보다도 국내에 그 전례가 없는 완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349호 30일, 2024년 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