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국문화재를 만나다(6)

서울은 340여 년 전에도 집 마련 어려웠다
일본 교토대도서관 소장 한국 고문헌

일본에는 해외로 반출된 한국 고문헌 중 양적인 측면과 질적 측면에서 가장 많은 자료가 소장돼 있다. 그중에서도 교토대에는 일본 내에서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많은 양의 귀중한 한국 고문헌 자료가 존재한다. 그 가운데 교토대 부속도서관의 ‘가와이문고’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가와이문고는 조선사와 경제사를 주로 연구했던 가와이 히로타미가 수집한 한국의 고문헌을 말한다.

상인의 삶 엿볼 수 있는 가와이문고 고문서중요 자료

그동안 가와이문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알려져 왔고, 서지 목록도 있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것은 조선 후기 상인들이 작성한 고문서라 할 수 있다. 국내에 남은 고문서가 대체로 지방에 대대로 거주했던 양반 가문이 남긴 것과 달리, 가와이문고 고문서는 조선 후기 한성부에 살던 주민이 남긴 문서다. 가와이문고 고문서는 상인층과 몰락 양반, 최고급 문벌 등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고 있다.

가와이문고 고문서 중에는 조선 후기 한성부(서울)에 살던 주민이 집터를 사고팔았던 문서가 다수 남아 있기도 하다.

예컨대 1672년 9월 20일에 이덕향은 백시만으로부터 집터 50칸과 미나리밭 0.5마지기를 구매했다. 집터의 위치는 한성부 동부 창선방 어의동(지금의 종로구 종로5가 부근)이며, 매매 가격은 은자 9냥이다. 백시만이 집터를 판 이유는 ‘요긴히 쓰기 위해서’라고 돼 있다. 문서 작성은 백시만이 직접 맡았고, 이종길은 증인으로 거래과정에 참여했다.

60건이 넘는 토지매매 문서를 통해 당시의 집값 상승도 확인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당시 서울 주민들도 집터를 마련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자료다.

조선 최대 금석 탁본집 금석집첩도 자료적 가치 높아

교토대 부속도서관의 가와이문고와 함께 주목되는 자료는 ‘금석집첩(金石集帖)’이다. 본래 금석집첩은 264책 이상의 거질(巨帙)로 추정된다. 현재 교토대에 가장 많은 219책이 소장돼 있으며, 고려대 도서관과 규장각 등에 일부 전해지고 있다.

금석집첩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금석 탁본첩 가운데 가장 방대한 것이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 및 그 후손들에 의해 오랜 기간 금석문(金石文ㆍ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있는 명문)을 탁본하여 편찬 작업을 진행했다.

200권이 넘는 금석집첩은 어떻게 교토대에 소장된 것일까.

기록을 보면 1910년에 교토대학 동양사학교실에서 구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이 소장한 한국 고문헌을 평생 조사해온 후지모토 유키오 교수의 말에 따르면, 금석집첩은 1970년대 초까지 부속도서관 지하 2층 철제 계단 아래의 공간에서 30책 정도씩 쌓아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콘크리트 위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아래 부분은 수분을 머금어 훼손돼 있어, 최근 교토대 부속도서관에서 이를 보존·복원했다.

금석집첩은 2,000여 점의 탁본이 수록된 것으로 양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탁본의 질적 수준 또한 높다. 금석집첩은 또한 탁본의 일부만 수록한 금석집과 달리 탁본 전체를 수록해 놓았으며, 탁본을 할 당시에 여러 문헌 등을 조사해 흐릿한 글자는 수정하기도 했다. 오늘날 비석이 없어진 것도 있고, 풍화로 판독이 불가능해진 것도 있는데, 이 책은 당시의 온전한 상태를 전하고 있기 때문에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금석집첩은 여타의 금석집과 달리 편찬자 나름의 분류 기준에 의해 탁본 자료를 체계적으로 배치하였는데, 예컨대 종실, 대군, 왕자, 학문, 절의(節義), 사찰 등의 분류 항목이 있고, 관료의 경우에는 관직에 따라 더욱 세분하였다. 이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지역별 인물 배치와 왕실, 관료, 무인, 부인 등의 인물 분류다. 무인과 여성을 별도의 항목으로 분류했고, 중인층을 따로 나누었다.

조사 시 서적 소장 경로, 필사간행 자료까지 파악해야

해외에 유출된 한국 문화재 중 옛날 서적과 문서를 조사할 때에 유의할 점은 서적의 유통 경위 및 소장 경로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서적이 어떠한 경로로 해외로 유출되었는가를 밝히는 중요한 정보 중의 하나는 책에 찍혀 있는 장서인(藏書印ㆍ책에 찍어 그 소유를 밝히는 도장)이다. 장서인을 누가 찍었는가를 추적하면 그 서적이 언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로 유통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교토대 부속도서관 후지가와문고에는 ‘치종비방(治腫秘方)’이라는 목판본이 소장돼 있다. 치종비방은 종기 치료 전문가였던 임언국이 16세기에 저술한 책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외과 전문의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책이다.

후지가와문고에 소장된 책은 1559년에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던 안위가 임언국의 책을 얻어서 간행한 초간본이다. 국내에는 없는 유일본으로서, 귀중한 이 책에는 장서인이 여러 개 찍혀 있다. 박선(朴宣)이라는 인물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치의였던 마나세 쇼린(曲直瀨正琳)의 호인, 양안원(養安院)의 장서인은 이 책의 유통과 관련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해외로 유출된 한국 문화재를 조사할 때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 관련 내용을 필사하거나 간행한 자료까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교토대학 문학부도서관에 소장된 ‘이국출계’라는 자료를 살펴보자.

이국출계(異國出契)는 일본 사람이 고려, 조선 및 몽골 등과의 대외 관계 문서를 편찬한 책이다. 대략 100여 점에 이르는 대외 관계 문서가 수록돼 있다. 비록 일본인에 의해 편찬된 것이지만, 이 책에는 고려 시대에 작성된 외교 문서가 수록돼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교토대 부속도서관의 가와이문고에는 850여 종, 3,000여 책의 고서와 5,000여 건 이상의 고문서가 소장돼 있다. 부속도서관 개인 문고, 문학부도서관, 인문과학연구소, 건축학과도서관 및 박물관 등에 한국 고문헌이 상당수 소장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그 전체 실상이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1350호 30면, 2024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