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148 – 유럽의 도자기(3)

본차이나(Bone China)의 출현

식생활 도구의 한 범주 속에서 흔히 ‘그릇’이라 불렸던 도자기는 거기에 인간의 예술적 혼이 더해져 예술과 문화로 꽃피우게 된다.
한 민족의 정신과 사회적인 정서는 흙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한 나라의 예술성과 감수성, 세련미를 알아보려면 그 나라에서 구워 낸 도자기를 척도로 짐작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도기와 자기의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도자기라는 용어로 통칭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는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도기를 뜻하는 ‘Keramik’과 자기를 뜻하는 ‘Porzellan’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고 혼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문화사업단에서는 먼저 도자기에 대한 일반을 살펴보고, 이후 유럽의 대표적 도자기인 마이센도자기, 본 차이나의 웨지우드,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자기,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 그리고 독일의 빌렌로이 보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천년가까이 중국이 독점하던 자기(磁器) 기술과 생산력은 유럽에서 최초로 자기를 생산한 마이센에 의해 독점권이 무너지고, 그 우수한 기술력은 유럽 전역 자기문화에 직,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마이센의 독점이 깨진지 100년도 안되서 유럽의 자기는 다양한 발전을 거듭해 갔다. 여기에는 각 나라 왕권의 적극적 후원과 유럽의 기초과학 발달, 특히 화공학의 앞선 발달이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영국에서 처음 개발된 본차이나 기술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재료의 한계와 그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유럽인들의 노력의 결실이다., 본차이나의 출현이후, 영국의 도자기 공장은 19세기 산업을 대표하는 대규모 기업 형태로, 근대 산업시대를 여는 계기로써의 성격을 지니며, 영국이 다른 유럽국에 비해 경제적 우위에 서게 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한다.

자기(磁器)는 경질자기 (硬質磁器,hard porcelain)와 연질자기 (軟質磁器,soft porcelain) 로 나누어진다. 경질자기는 47–66% 고령토, 25% 규석 , 25% 장석으로 이루어진다. 뵈트거에 의해 개발된 마이센 자기는 이 경질자기였다. 융제로 장석질의 사용되고, 1350-1450°C 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져 자화가 완전히 되면 쇳소리를 내고, 빛에 비춰보면 투명하고,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연질자기는 중세의 유럽 도공들은 이 중국의 반투명한 자기를 모방하려고 시도하려다 발견한 것으로, 유럽 최초의 연질자기는 1575년경 메디치가(家)의 프란체스코 1세의 후원을 받아 피렌체에 있는 작업장에서 만들어 졌고, 그것이 대량으로 생산된 것은 17세기 후반과 18세기에 들어서 유럽 곳곳에서 생산되었는데, 대표적 연질자기로 프랑스의 세브르자기가 있다.

연질자기의 구성은25-40% 카올린, 45% 규석, 30% 장석이 들어간다. 경질자기에 비해 유리질이 많기 때문에 소성시 가마 안 높은 온도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질자기에 비해 낮은 온도(최고 1350도)에서 구워지고, 부딪힘에 약하다.

본차이나는 융제를 골회로 쓴 연질자기로 분류된다. 경질(硬質)자기에 비해 질감이 부드럽고, 경질자기는 같은 백색이라도 푸른 회색빛이 도는 백색이나, 본차이나의 색상은 상아빛이 도는 따뜻한 느낌의 순백색이다.

구성은 자기에 들어가는 고령토, 장석, 규석에 골회의 양을 50%로 높여 반투명한 몸체를 구성하고, 강한 내구성을 지녔다. 1280°C로 초벌구이를 하고 1080°C로 재벌구이를 하여, 굽는 온도도 낮으며 또 연질도기보다도 제작비가 싸다는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까지 양식의 디너세트(dinner set)는 물론, 우리의 밥상에도 오르는 고급식기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본차이나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국에서는 당시 전반적으로 백색 소지의 도자기를 가르쳐 ‘china ware’라고 불렀는데, 그만큼 도자기는 중국에서 온 일방통행의 문화였다. born은 말그대로 뼈가루가 들어가서 이름이 본 차이나이다. 도자기에 들어가는 뼈가루는 골회(骨灰)로써 주로 소의 뼈를 지방(脂肪)과 교질(膠質)을 빼고 태워서 얻은 잿빛의 가루를 말한다.

고온의 도자기를 구울때 가마의 온도가 1200도가 넘어서고, 그 이상 더 높은 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1도를 올리는데도 엄청난 에너지 자원이 소모된다.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소송온도가 낮아도 자기화(磁氣化) 할 수 있게 활석, 한번 구워서 가루 낸 유리가루 또는 골회를 융제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본차이나는 영국의 토마스 프라이(Thomas Frye)가 1748년 런던 동쪽의 보우(Bow) 도자기 공장에서 최초로 발명하였다. 그의 공장은 가축 시장과 에식스(Essex) 도살장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 동물의 뼈를 구하기 쉬운 곳이었다. 그의 본 차이나는 45%의 골회를 사용하여 품질 면에서는 다른 유럽국에서나 중국에서 수입한 자기와 경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 후 1789년에서 1793년 사이에 조지아 스포드 (Josiah Spode,1733–1797)가 영국 도자기 산업의 중심이 된 스토크 온 트렌트(Stoke-on-Trent)에서 초기 본차이나의 개념을 더 발달시켜 “Fine Bone China”로 불리며, 그 공정을 완성시켰다. 그의 본차이나는 빠르게 인기를 끌었고, 다른 영국의 자기 제조업자들에게 퍼져 나갔다.

본차이나는 처음 개발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전문화된 지역 등 영국에서만 독점적으로 생산되었다. 영국 최초의 본차이나 제품을 선보인 스포드(Spode)는 200년간 7만가지 이상의 패펀을 선보이며 영국 본차이나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본차이나는 세계 본차이나 생산 1위 업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영국 도자기의 자존심 웨지우드사의 것이다. 이 회사는 1812년 본 차이나를 처음 개발하여 웨지우드만의 독특한 흰색과 반투명성, 견고한 강도 등으로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실용성도 뛰어난 고급 도자기를 생산해오고 있다. 웨지우드는 1759년 조지아 웨지우드 (Josiah wedgwood)에 의해 설립되었다.

웨지우드에 대해서는 다음호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1351호 23면, 2024년 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