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 윤태현 과장
독일 사람들과 여름휴가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면 늘 화두에 오르는 휴양지가 있다. 바로 스페인 마요르카다. 국가대표 축구 선수 이강인이 최근까지 몸담았던 팀으로 잘 알려진 이곳은 최근 한국에서도 테마 여행, 신혼여행지로 인기 있는 곳이다.
마요르카는 지중해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스페인 국립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자료 기준으로 인구수는 약 117만 명 정도 된다. 특히, 마요르카 하면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이 특징이고 1년 365일 중 300일 정도는 해가 쨍쨍하게 뜨는 맑은 날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반면 독일에서 해가 뜨는 날은 연평균 158일로 마요르카의 절반에 불과하고, 이외의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먹구름이 낀 우중충한 흐린 날씨다.
이처럼 어찌 보면 독일인들에게는 날씨가 좋은 남쪽으로 떠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마치 한국에서도 날이 따뜻하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제주도를 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 독일 대부분의 공항에는 마요르카 직항 노선이 있다. 베를린 공항의 경우 유로윙스, 이지젯 등의 저가항공을 포함해 하루에 9~10편의 직항 노선이 취항한다.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같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뒤셀도르프나 브레멘 같은 작은 공항도 여러 편의 마요르카 직항이 있다.
이러한 접근성 덕에 마요르카를 방문하는 독일 방문객 수는 연간 340만 명에 달하며, 이는 마요르카 연간 전체 관광객의 40%에 달하는 수치다. 독일에서는 마요르카를 독일의 17번째 주(州)라는 농담까지 있을 지경이다.
아예 마요르카에 집을 가진 사람도 많다. 마요르카 부동산 리서치 업체에 따르면 마요르카에 집을 한 채 이상 가진 독일인은 2022년 기준으로 23,932명으로 외국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 마요르카에 있는 아파트, 빌라 등 지난해 전체 부동산 거래 중 36%가 독일인에 의해 이뤄졌다. 휴양지에 놀러 갈 수 있는 일종의 별채나 퇴직 후 남은 삶을 즐기는 목적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미샤엘 슈마허 전 F1 카레이서나 보리스 베커 전 테니스 선수 등이 대표적으로 마요르카에 별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실제 스페인 마요르카를 가보면 공항에서부터 스페인어-독일어-영어 순으로 안내판이 있다. 또 대부분의 식당 메뉴판에도 독일어가 병기되어 있고, 실제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분들도 대부분 기본적인 독일어는 구사한다. 독일어로만 이야기해도 관광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 마치 동남아 대표 휴양지에서 한국어가 사방에서 들리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그렇다면 독일인들이 이렇게 휴가를 많이 가고, 휴가에 진심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독일인들이 휴가를 중요하게 여긴 것은 경제발전이 시작된 후 1960년대 말부터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성장과 함께 독일인들의 평균 소득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와 함께 저비용 항공권과 숙박 등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대형 여행 회사들이 등장하며 관광업 자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에는 오일쇼크로 석유 가격이 올랐음에도 여행 산업은 성장 가도를 달렸다.
이때부터 마요르카 같은 스페인 휴양지가 독일 관광객을 위해 개발되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서유럽 여행객을 대상으로 비자 의무 조건을 면제시켜줬고, 관광 사업자들이 호텔과 리조트를 건설하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또 독일은 유럽에서 1인당 GDP가 손꼽히는 수준으로 높은 만큼 휴가 비용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로 꼽힌다. 실제 시장조사기관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해외여행에 가장 많이 지출한 국가로 독일은 932억 달러(약 120조 원)로 3위에 올랐다. 2,546억 달러(약 328조 원)의 1위 중국과 1,323억 달러(약 170조 원)를 지출한 2위 미국의 전체 인구수를 고려하면 사실상 세계에서 해외여행 비용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로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의 휴가 일수도 관광업 진흥에 기여했다. 1974년 당시 서독 법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최소 보장 휴가일은 18일이었다. 이후 1977년 단체 협약을 통해 노동자의 평균 휴가일은 연 24일로 늘어났고, 현재 독일의 법적 최소 휴가 일수는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연 20일이다. 다만, 실제 노동자의 70%는 연 26일에서 30일의 휴가를 보장받고 있다. 일 년 12개월 중 한 달은 연차에 해당하는 것이다.
실제 독일 관광협회(Deutscher Reiseverband)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독일인들은 휴가 시즌에 평균 13일 정도로 약 2주 정도 연차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해외로 떠나는 사람은 72.9%이고, 나머지 27.1%는 독일 내에서 휴가를 즐긴다.
해외 여행지 중에서는 마요르카를 포함한 스페인이 단연 가장 인기있다. 전체 관광객 중 12.9%가 스페인을 택할 정도로 독일인의 최고 여행지로 꼽히며, 이탈리아 8.3%, 터키 8.0%가 그 뒤를 잇는다. 날씨가 좋은 지중해 인근 국가로 휴가를 떠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내에서 인기있는 여행지로는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주(5.3%)와 뤼겐 섬이 있는 메클렌부르크-포어폼멘(4.8%) 순으로, 알프스가 있는 산이나 북해 및 발트해 등 자연으로 여행하는 걸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은 흔히 자동차, 기계, 선박 등 제조업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벤츠, BMW, 아우디를 포함하는 소위 독일 3사나 지멘스, 보쉬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탄탄한 제조업 덕에 성장한 독일의 관광 산업은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독일에는 1만 여개의 크고 작은 여행사가 있다. 독일 관광협회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발발 전인 2019년에는 여행사 전체 매출액이 259억 유로(약 36조 원)에 달한다. 또 독일 관광객이 개발도상국에서 먹고 자고 구경하면서 여행 비용으로 지출한 금액만 무려 연간 190억 유로(약 27조 원) 정도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2023년 기준으로 독일은 총 51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탈리아(58개), 중국(56개)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치다. 스페인보다도 많다. 물론 기후, 음식, 지형 등 여러 요인 탓에 관광업에 특화된 국가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휴가와 여행에 진심이고 해외 관광객이 어느 국가보다 많은 관광 대국으로 꼽히는 독일인들을 보면,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1325호 17면, 2023년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