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특허소송을 위한 전문가 증거조사제도 (1)

경쟁사가 내 특허기술을 사용한다면 그 경쟁사를 상대로 침해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적절한 증거 확보이다. 만약 특허 물건이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예컨대, 자전거 등)이라면, 특허권자가 직접 제품을 구매하여 분석하고 그 결과를 법원에 제출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종종 경쟁사의 제품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B2B (Business-to-Business), 즉 기업 간의 거래를 통해서만 판매되는 제품(예컨대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기계장치)이라면, 시중에서 판매되지 않으며, 또한 경쟁사가 특허권자에게 제품을 개별적으로 판매할리도 없다. 한편 특허기술이 ‘물건’이 아니라 ‘생산공정’에 관한 것이라면, 경쟁사 공장에서 행해지는 생산공정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경쟁사의 공정을 보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사의 특허침해가 의심되기는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유 등으로 침해의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경우를 위해 전문가 증거조사가 마련되어 있다. 이는 독일 특허법(Patentgesetz) 제140c조의 조사(Besichtigung) 및 민사소송법(Zivilprozessordnung, ZPO) 제485조의 독립증거절차(selbständiges Beweisverfahren)가 결합된 형태의 조사이다. 이 증거조사는 실무에서 소위 ‘뒤셀도르프 절차(Düsseldorfer Verfahren)’고 불리고 있다. 특허권자가 효과적으로 증거를 확보하여 자신의 권리행사를 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증거조사에서는 2가지 이익이 충돌하기 때문에 이를 잘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증거조사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면 원고인 특허권자로서는 사실상 침해자에게 대항할 방법이 없어져 특허권이 무력화되는 문제가 있다. 이와 반대로 만일 증거조사를 너무 쉽게 허용하면, 피고(즉, 침해자)의 영업상 기밀자료(특히, 본 특허침해와는 관련 없는 영업비밀)까지도 노출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증거조사에서는 이러한 양 당사자의 이익을 고려하여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의 전문가 증거조사제도는 그 균형점을 유지하도록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하에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언제? 무엇을 대상으로?

이러한 전문가 증거조사의 신청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특허침해금지소송을 먼저 제기하고 그 소송 도중에 증거조사를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 경우 상대방이 혹시 제품을 숨기는 등의 대처를 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침해자가 증거를 숨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도록 소송 전에 증거조사를 신청하는 것이 권장된다. 침해자가 불시에 증거조사에 응해야 하는 깜짝 효과(surprise effect)가 발생하고, 결국 효과적인 증거조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본 증거조사를 통해 입수 내지 확인할 수 있는 대상에는 장치, 공정, 물질 및 문서(예: 도면) 등이 포함된다.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조사 행위는 원칙적으로 침해를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장치의 크기나 무게를 측정하거나, 생산 공정을 실행해 보거나, 컴퓨터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한편 법원으로 증거 물건을 가져가야만 하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이 또한 허용될 수 있다.

다음호에서는 증거조사를 법원으로부터 허가 받기 위해 필요한 실체적인 요건 및 절차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다음 호에서 이어집니다)


저자: 황의철 한국 변리사, 지식재산권법 석사 (LL.M., Düsseldorf)
자문/전문 분야: 반도체, 광학, 자동차, 금속재료
거주지: 독일 프라이부륵 (Freiburg) 거주,
소속: 김앤장 법률사무소
연락처: echwang@kimchang.com

1351호 16면, 2024년 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