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어머니의 시집 <<바람의 안무>>

유한나 (재독시인, 수필가)

올 초에 어머니의 미수 기념 시집이 출간되었다. `미수´라는 뜻은 `88세´라는 뜻이다. 한자 `미´ 자를 풀어쓰면 `팔´ 자 두 개가 되므로 88세를 미수라고 한다.

1968년 <현대문학>지에 화음, 남해도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신 후, 14번째 발간된 시집이다. 어머니의 첫 시집 <화음> (1969년)을 시작으로 <바다에 내린 햇살> <파도를 갈기며> <겨울새> <어린 신에게> 등 내가 아직 한국에 살 때, 어머니가 펴내셨던 몇몇 시집 제목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머니는 고등학생 시절에는 <미래자> 라는 동인지를 만드셨고, 대학생 때에는 전국 대학교 문예 써클 대표들로 결성된 청년문학회를 만들어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셨다. 결혼 후 네 자녀를 낳고 키우시며 만 35살에 시인으로 등단하셨다. 결혼 십 년 후에 아버지와 헤어지시고 혼자 네 자녀를 키우신 어머니는 지난 반세기 이상을 시 쓰기로 눈물과 땀의 길, 삶의 가시밭길을 헤쳐나오셨다.

내가 독일에 온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만 9살, 만 4살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나간 때가 1993년, 어머니 만 60세 기념 시전집 발간 출판기념회 때였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2년, 다시 어머니 팔순 기념 시전집 발간 때 독일에서 남편과 큰아들, 딸과 함께 한국에 나가 어머니 시전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였다. 지난 52년 동안 두꺼운 시전집을 두 권이나 발간하시고 14권의 시집을 내셨으니, 그동안 평균 3년 반마다 시집을 펴낸 셈이다. 반세기 이상의 세월 동안 치열하게 시를 쓰시며 살아오셨구나 싶다.

40여 년 동안 중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로서, 시인으로서, 네 자녀의 어머니로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사시고 이제 미수 기념 시집까지 출간하신 어머니에게 마음으로 뜨겁게 감사와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지난 3월에 독일에 오는 유학생 편으로 어머니 새 시집을 전해 받았다. 제목 <바람의 안무>에 걸맞게 펄럭거리는 바람의 춤 이미지로 표지 디자인이 환상적인 색채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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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과 수명의 꽃

복수초 꽃 언저리에서 햇빛이 새들의 장단에 맞추어

환희의 춤을 춘다

숲이 바람을 만나면 나무들이 춤을 추고

바다가 바람을 만나면 파도가 춤을 춘다

우주만물의 신명

신바람 춤

춤이 있어 살아있는 생명이다

들숨 날숨의 심장의 춤이다

자연이

봄맞이 무대를 준비하는 2월에

바람의 안무가 한창이다.

(시 <바람의 안무> 중)

곧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환희의 춤, 신바람 춤, 들숨 날숨의 심장의 춤 등 역동적 에너지가 넘치는 표현이다. 이 시집을 받은 날, 시집에 실린 67편의 시를 다 읽고 나서야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에게 카톡 인사를 보내드렸다. „<웃음 치료법> 시 읽다가 저도 `호호호 하하하´ 웃고 외갓집 시편들을 읽다가는 눈물을 흘리곤 했네요. 어머니 시는 늙지 않고 더 서정적, 관조적, 잘 익어가는 모과 향기 시편이네요. 시 <들꽃기도>도 좋았고요. 곁에 두고 음미하며 읽으려 해요. „ 어머니 답장이 카톡에 떴다. „벌써 읽고 독후감까지 주니 신난다. …. 댕큐 댕큐 베리 댕큐 다. „ 어머니는 88세 연세에도 아직 신이 나실 때가 읽고, 건강하시길 기도 드린다는 말에 영어 인사도 아직 잊지 않으시니 정신연령은 나보다 훨씬 더 젊으신 듯 (?) 하다.

시집 서문에는 짧은 네 줄로 <시인의 말>이 실려 있다.

자연의 신비가 주는 기쁨과 위안

모든 인연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노년의 내 시와 삶에

더 많은 자양분이 되어주리라 믿으며, (2020년 정월)

시력 52년의 원로 시인의 시와 삶에도 아직 필요한 자양분은 자연의 신비가 주는 기쁨과 위안, 모든 인연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아직도 어머니는 앞으로 더 많은 자양분이 들어 있는 시를 쓰시겠다는 긍정과 감사의 에너지가 넘치시는 정년이 없는 현역 시인이시다.

요즘 독일 전국에 외출 제한 조치가 내려지고 2인 이상 모이지 못하는 코로나 때에 동네를 산책하며 어머니의 <웃음 치료법> 시를 떠올린다.

요즈음 웃으면 만병을 예방 치료할 수 있다는 웃음 치료법이 한창 각광을 받고 있다. / 열 손가락 꼽을만한 웃음의 효과 항목 중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에 마음이 끌려 하하하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 헤헤헤 하하하 후후후 하하하 히히히 하하하 웃음 뒤에는 하하하를 붙여 하루에 10초씩 손뼉 치며 하는 치료법 따라 해보기로 했다. / 사람 발길 드문 강변 산책길 갈대밭 가운데서 혼자 짝짝 손뼉 치며 박장대소 흉내 내보니/ 갈대들이 백주에 별 미친 짓 다 보겠다며 허리 흔들어대면서 웃음 삿대질하는 바람에/ 치매에 걸린 내 시가 하하하 호호호 헤헤헤 후후후 히히히 하늘로 훨훨 사라져 가 버렸다. (시 <웃음 치료법> 전문)

부활의 달 4월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웃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 바이러스가 새롭게 퍼지고 하하하 호호호 후후후 웃음꽃이 집마다 거리마다 피어나길 바라며…

2020년 4월 10일, 1166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