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furt에 살면서 (7)

황만섭

산책

보름 전(2020년 10월 초)부터 산책코스 하나를 정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발하여 중앙묘지(Hauptfriedhof) 담을 우측에 두고 묘지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좌측은 도로라서 심심찮게 차들이 지나가면서 나의 안전을 감시해준다. 우측은 담이라서 신호등도 없고 조용해서 사색하기 딱 좋다.

산책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혹 눈보라나 비보라가 휘몰아치더라도 오전 10:00시에 출발해서 대략 11:25분이면 집에 도착하는 코스다. 날씨가 좋은 날은 가끔 중앙묘지 안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약30분 정도 늦어진다. 처음에는 집사람과 둘이 걸었지만, 내 걸음걸이가 너무 느려서 답답했었는지 집사람은 “당신 먼저 출발하면 나는 2~30분 후에 출발해 당신을 따라잡겠다”고 큰 소리쳤다.

나 혼자 산책하게 되니까 사색하는 시간이 있어 좋았지만, 집사람에게 쫓기는 형국이라 마음이 바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등골에는 땀까지 흘렀다. 늦게 출발한 집사람은 나를 따라 잡기 위해 바빴고, 나는 붙잡히지 않고 도망가기 위해 바빴다. 이건 산책이 아니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된 셈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는 대략 30여 개 이상의 공원묘지가 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 누구나 자기 자신이 죽기 전에 자기 집 가까운 곳에 있는 묘 자리를 생각해 볼 수가 있다. 공원묘지마다 각종나무들과 꽃들이 잘 가꾸어져 있어 시민들이 산책하기에도 적당하다. 거기에는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꽃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앙묘지는 그 크기가 웬만한 묘지 80개~ 100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넓고 크다. 묘지에 산재되어 있는 나무들은 밀림 같고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꽃들은 아름다운 정원이나 공원처럼 좋다. 우리가 처음으로 중앙묘지를 찾았을 때는 혹 귀신이라도 나올까 봐 걱정을 했었는데 아무리 자주 다녀도 귀신을 본적이 없다. 앞으로도 귀신이 나올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중앙묘지를 자주 돌다 보니 친근감까지 생겨 지금은 마음 편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다. 중앙묘지는 좋은 공기로 가득하다. 각양각색의 묘지 석과 아람들이 나무와 꽃들로 가득하다. 묘지석과 조각들은 마치 그리스 조각처럼 예술성이 높다.

오늘(2020년 11/15 일)은 중앙묘지공원 구석구석에 사람들이 많았다. 묘를 가꾸는 가족들이거나 산책 나온 사람들이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어머니들도 눈에 보인다.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좋은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중앙묘지가 산책하기에 좋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정국에 중앙묘지보다 더 안전하고 좋은 곳은 없다. 중앙묘지공원은 전체가 숲길이고 꽃길이다. 나는 중앙묘지가 엄청나게 좋다는 것이 소문날까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다. 중앙묘지가 좋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천기누설에 속한다. 수십 명이 몰려드는 것까지는 좋지만, 갑자기 수백 명의 한인들이 몰려오면 혼란이 일어날까 봐 그렇다.

오늘(2020년 11/18)은 늦게 출발해 나를 추월한 집사람은 오늘부터는 자기는 계속해서 다시 한 바퀴를 더 돌아야 하겠다며, 나를 재치고 앞서나갔다. 평소라면 날씨가 좋아서 중앙묘지 정문에서 만나 30분 가량 중앙묘지 안을 같이 돌았는데, 그럴 때는 내 걸음 속도는 더 늘어졌고 나와 보조를 맞추다 보니 집사람은 “땀이 식어 감기 걸릴 위험이 있다”며 산책을 따로따로 하고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가짜 뉴스

온 세계가 가짜 뉴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동서양 어느 나라나 가짜 뉴스의 혼란은 그 정도가 대단히 심각하다.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다. 한번 가짜를 진짜로 믿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편견은 자신을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한다. 죄수는 감옥에 갇히지만 가짜 뉴스는 자신의 일생을 어두운 골방에 가두어 평생을 헛소리만 되풀이 하면서 어리석은 소인배로 살게 된다.

가짜 뉴스는 원래 주인을 몰아내고 가짜 뉴스 자신이 주인행세를 한다. 초라하고 불쌍한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꼴이다. 가짜 뉴스에 한번 빠지게 되면 백약이 무효다. 가짜를 진짜로 믿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 갇히는 포로가 되면서 이제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며, 책도 읽고 싶은 것만 읽는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반대 진영의 사람이 쓴 책은 설사 온 세상사람들이 칭찬한다 해도 자신은 그 책을 싫어하고 저주한다. 세상의 아름다운 그 어떤 것도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세워놓고 삐딱하게 보는 나쁜 습성이 생겨나고 그는 한심한 인생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면서 산다.

나라의 미래도 자신들의 후손들을 위한 백년대계도 생각지 않는다. 고집과 오기와 악으로 충만해 병세는 중증으로 백약이 무효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흑백논리와 적군과 아군으로 보는 이분법을 적용시키면서 사회와 멀어지고 스스로를 어두운 장벽 안에 가둔다.

1202호 22면, 2021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