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나무 아래서 (2)

(지난호에서 이어집니다.)

다리아는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오데사 근교에서 자라나 학교를 졸업했고 항구도시 오데사에 사는 여객선 기관사와 결혼하여 고향을 떠났다. 부모는 물론 두 언니까지 배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했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남편은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다른 여자와 새 가정을 차리고 다리아를 떠났다. 결혼을 반대했던 두 언니는 이구동성으로 온 가족의 반대가 현실화 되었을 뿐이라며 그녀를 멸시했다.

친정식구들은 딸을 키우며 혼자 사는 그녀의 생활을 인정하지 않았고 집안의 수치라는 말로 비난을 해댔다. 그녀는 어린 딸을 데리고 오데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무 대책이 없었지만 이 결정은 처해진 상황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업관계로 잠시 오데사에 머물고 있던 연상의 남편을 그녀가 서빙 하는 일로 취업한 작은 술집에서 만나게 되어 결혼을 했고 베를린으로 오게 되었다.

부모에게 물러 받은 큰집에 혼자 살고 있었던 남편은 젊은 여자를 아내로 딸까지 하나 얻게 되어 좋다고 했다. 딸이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홀어머니 밑에서 형제 없이 자란 남편은 의붓딸이 퍼붓는 온갖 언사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자주 다리아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불화가 시작되었다. 남자는 여자들의 성장과정을 동행하는 사춘기의 증상에 대한 것을 멀리서 얻어들은 정도일뿐 무경험자였다.

성인이 되는 과도기의 언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는 의붓딸이 기관사 아버지에게서 유전 받은 잘못된 성격으로 간주했다. 게다가 아내의 고민까지 들어주어야하니 더욱 어려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살이 되면 방을 얻어서 쫓아내자고 말하면서 참자고 서로를 위로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고비라는 것을 명심하며 딸에게는 중요한 고등학교 과정을 무사히 넘겨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다리아에게 대장질환의 병세가 지병으로 찾아왔다. 복통으로 시작되었고, 설사와 변비가 교체하며 체력유지가 어려워졌다. 음식섭취가 어려워지자 점차 중환자가 되었다. 남편은 아내와 의붓딸을 저주했다.

젊은 부인이 자신이 병상에 누웠을 때 옆에 앉아 손을 잡아 줄 사람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되어 두 여자의 노예가 된 셈이라고 공공연하게 표현했다. 다리아는 난치성 장병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다리아가 수술 후 휴양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희망을 가졌다. 휴양에서 돌아오면 다시 온 가족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딸은 어머니의 병환으로 자중하는 말투로 바꾸었다. 어머니가 휴양을 떠나고 의붓아버지와 한 집에 살게 되면서 조금씩 성숙해갔다.

다리아는 휴양지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돌보지 않고 착취했던 자신의 몸을 위해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이다. 병자의 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에 대한 인식과 투병은 약이 아니라 정신력의 강화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휴양소의 사람들에게 심신을 맡겼다. 3주가 지나 연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후 남편에게 엽서 한 장을 보내고 휴양을 연장했다. 다시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을 확신하며 재생의 의미를 음미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심리치료사와 마주앉아 가슴 속에 얹혀있던 응어리를 녹여서 배설시키는 과정에서 잊었던 아픔을 해체시키는 힘든 작업을 하며 자신을 되찾아 갔다. 그녀는 두고 온 딸이 사춘기의 어려움 속에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갔다. 남편에 대한 생각마저 희미해졌다.

그녀는 임신한 그녀를 버리고 떠나간 첫사랑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는데 열중했다. 딸의 사춘기 반항이 자신을 환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데서 딸의 덕택으로 휴양지에 오게 되어 전화위복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 저녁 딸과 전화하고 전화 내용을 소화할 수 없어 잠을 이루지 못한 시기도 지났다. 당분간 딸과의 통화를 금하고 남편을 통해 딸의 소식을 듣기로 결정 했을 때의 괴로움도 사라졌다.

날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딸에 대한 걱정이 그녀의 걸음걸이를 가볍게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영을 했고 숲속을 걸었다. 그녀는 7주 만에 휴양소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체중이 늘어 건강한 얼굴로 남편과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던 날, 이제부터는 자신을 환자로 만드는 요소를 미리 감안해서 예방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발병의 원인이 환경이므로 생활구성이 바뀌지 않은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서 다시 그전대로 생활하게 되면 재발이 된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이다. 달라진 어머니의 태도와 말씨는 물론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이기적 생활원칙이 딸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자신이 변한만큼 딸도 변해있다는 것을 예지 못했다.

애써 만든 방어벽이 그녀를 딸로부터 간격을 두었는데 그 뒤에 숨어있는 위협이 무엇인지 알려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집중해 있는 어머니는 딸의 고민을 예지하지 못했다. 그전같이 공격적인 반항심이 사라지고 말없이 심각한 고민에 쌓여 문을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 앉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고등학교 과정을 집어치우고 포기한 것을 뒤늦게 알았고 남편의 태도마저 달라진 것을 차츰 알게 되였다.

지나치게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자기보호에 급급하였기에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과 남편과 딸 사이에 일어난 변화를 알려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잘못이었고 그 실수의 대가로 벌을 받는다고 생각할 즈음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닫친 방문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의식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이다. 그녀를 다치게 할 일은 알려하지 않은데서 온 것이다.

어느 날 딸이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자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고 그녀가 선 발밑의 바닥이 흔들렸다. 그녀는 다시 환자가 되어 드러누웠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다시 병원에 입원을 했다. 변비로 시작하여 오래된 병이 되돌아왔고 장이 터져 복막염을 일으켜 다시 수술을 했다. 남편은 이미 임신한 의붓딸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남편과 딸은 그녀를 혼자 두고 사라졌다.

6

백양나무 숲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밝은 얼굴로 웃으며 오래 기다린 듯 두 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그녀가 환자라는 현실을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이 내 심사를 불편하게 했다. 그녀는 나의 이런 내심을 감안한 듯 마음을 붙이고 고리를 걸며 다가왔다. 남의 나라에 발을 붙이고 사는 두이방인 여자 , 그녀와 나 사이의 공동적인 운명이 무언의 끈이 되어 점점 두터워지고 있었다.

세 그루의 백양나무가 서있는 숲속에 앉을 자리를 찾아 두었다는 그녀의 제안대로 따라 걸었다. 몇 년간을 지나다닌 산책길인데 보지 못한 곳이다. 숲속에 처음으로 보게 된 쓰러져가는 작은 건물이 있고 벤치가 있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한 허물어져 가는 공장으로 가는 입구로 옛 동독공장의 수위실이란다.
한 백년 세월, 비바람을 이겨낸 흔적이 남은 곳이지만 그녀는 그곳에 앉으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긴 세월동안 지나갔을 입구이기에 그 영혼들이 그녀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산사람들의 마음과 연결하여 서로 위로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자 그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갔다. 지금까지 꾸역꾸역 끊어버릴 수 없는 생명줄에 매달려 끌려왔지만 지금은 느슨해졌고, 언제부턴가 이미 시작한 죽음과 연결된 실마리가 점점 굵어지고 있다고 했다. 삶보다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고 했다. 마지막 숨결이 끝날 때까지는 삶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나를 한동안 쳐다보며 할 말을 찿는 듯 했다.

남의 도움 없이 하루도 연명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삶으로 봐야한다는 나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떡거렸다. 머리카락같이 가느다란 생명의 선이 끊어지지 않는 동안만은 살고 있다고 믿으려면 종교의 힘이 필요한데 그녀는 신의 존재를 거부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주며 장단을 맞추어야할지, 죽음은 정해진 시간에 찾아오기에 미리 준비를 하고 연습 할 수 없고, 첫 경험으로 첫 죽음을 죽는다고 말해 주어야할지 고심했다.
그녀의 죽음을 다른 사람들의 죽음의 예로 가볍게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었다.

7

3월이 시작되기 나흘을 앞두고 러시아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이웃나라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가 유럽 한복판에 전쟁이 일어났다. 3년째 들어서는 판데믹으로 지친 사람들이 고대하던 봄의 길목에 총을 맨 러시아 군인들이 나타난, 믿기 어려운 세상이 TV화면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은 밤사이에 바뀐 세상에서 눈을 떴다고 보고했다.

모두 입을 크게 벌린 체 상황판단을 못하고 “이게 뭐냐?”고 묻는데 군대를 보낸 푸틴 대통령은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특별작전이라고 명명했다 . 우크라이나 국가를 나치들로부터 해방시키고 마약중독자와 도둑들이 없는 깨끗한 러시아 속국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두 번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Nie wieder Krieg!!)” 라고 외친 슬로간이 의미를 잃었다.

다리아는 임신한 의붓딸을 데리고 떠난 남편이 비유럽동맹국인 우크라이나로 가서 이름을 바꾸고 젊은 여자, 그녀의 딸과 자식을 키우며 살고 있다는 것을 우연하게 들었다.
그들은 다리아의 고향이인 오데사 근교의 작은 동네에 짐을 풀었다고 한다. 그녀의 딸이 태어난 곳이다. 다리아가 두 남자를 만난 곳이다. 그녀가 낳은 딸이 어머니를 대신하여 귀향한 것이다. 자궁에서 자라고 있는 의붓아버지의 자식을 낳고 살기위해 돌아왔다.

크레믈린 궁전에 앉은 러시아 대통령이 눌린 단추 하나로 그들의 행복은 여름하늘에 뜬 한 점의 구름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 시작한 가족의 장래를 보장할 수 없이 젊은 어머니와 태어난 아이의 성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끝이 났다. 전쟁은 인간세계의 계획과 기존의 모든 것을 뒤엎고 파괴한다. 젊은 남자들에게 카키색 군복을 입혀 살인을 허용하여 생명의 존재가치를 말살시킨다.
아들을 사이에 두고 누운 아버지와 젊은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한 고민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몇 달을 그렇게 지냈지만 전쟁은 점점 악화되고 러시아군이 오데사를 점령하기 위한 작전으로 대포소리가 가까워졌다.

남자는 비장한 각오를 했다. 젊은 여자와 아들은 베를린으로 보내고 자신은 우크라이나 군대에 들어가 전투에 참석하겠다는 결심을 아내에게 알렸다. 그는 다리아를 버리고 베를린을 떠날 때 보상으로 살던 집을 다리아 명의로 이전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먼 나라, 비유럽 국가인 우크라이나에 와서 새로운 인생 출발을 시도했는데 운명의 신은 허용하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새 가정의 행복이 무산되었기에 달갑게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는 결심과 더불어 세상의 변화에 따라 흐르는 강물 속에 온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를 했다. 역류 상류로 헤엄쳐 갈 수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자신이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 살수는 없다는 것을 설득시켜 어머니와 아들을 기차 칸에 앉혀 떠나보냈다. 남자는 20여년 후 그의 유일한 귀한 아들이 륙색을 메고 갈 곳을 찾을 때를 생각하여 친지 공중인에게 얼마의 재산을 맡겼다. 언제든지 아들의 어머니가 도움을 청할 때는 아들을 위한 것으로 허락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남자는 전쟁 속으로 사라졌다. 전쟁은 한 남자의 행방을 침묵할 것이다.

1268호 14면, 2022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