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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에세이 내용이 며칠간 뇌리에서 맴돈다. 국제 위기전문가로 명성 있는 하바드 대학의 그라함 엘리슨(Graham Allison 82세)교수의 어지러운 위기시대에 들어선 세계정세에 대해 후련하게 토로한 신랄한 표현이다.
푸틴이 신의 도움으로 벼락을 맞아 죽을 경우 그는 절대 찬성한다고 (Putin mit Gottes Hilfe ein Blitzschlag – womit ich sehr einverstanden waere.).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신이 저런 악마를 그냥 살려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원인을 캐려하고 정권에서 이미 물러난 전 정치인들의 실수라는 비난의 내용과 달리 체증을 풀어주는 극히 인간적인 말이다.
어린 시절 시골동네의 어른들이 부모님께 불효하는 젊은 남자들을 나무라는 말로, “천하에 벼락 맞아 죽을 놈”이라고 했다. 천하에 벼락을 맞아 죽으려면 천둥 번개가 치는 여름날 혼자 들판을 돌아다니다가 번갯불이 머리에 떨어져 피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인데 그런 사례를 들은 적이 없었기에 나에게는 별로 의미가 닿지 않는 교훈이었다.
엘리슨은 하늘이 내리는 천벌보다 ‘신의 도움’으로 라는 조건을 붙였다. 전쟁을 일으킨 침략자를 Demon(악마)이라고 이미 많은 사람이 표현했다. 역시 악마를 이겨 세상을 바로 잡는 데는 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새벽 4시에 아스팔트위로 달리는 탱크의 굉음을 전주로 시작된 전쟁은 전 유럽인들이 함께 경험하는 악몽이다. 예보 없이 시작한 것처럼 밤사이에 전쟁이 끝나 다시 평화의 세상에 잠에서 깨어날 것을 기다리는 동안 벌써 반년이 되었다. 이미 평화의 희망을 포기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폭격으로 파괴된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열차는 피난민들을 싣고 와 베를린 중앙역에다 쏟아놓는다. 죽음을 피해 살던 곳을 떠나온 사람들은 살던 집과 고향만 잃은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인 가족은 물론 친구들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에 대한 믿음과 신용을 같이 잃었다. 하룻밤 사이에 바뀐 딴 세상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매일 더해가는 죽음을 애도할 틈도 없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왔다.
국방색 티 셔츠차림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비디오 방송을 통해 무기원조를 하소연하는 모습은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나날이 심해지는 폭음 속에 사라지는 생명을 구하고자 세계를 향해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하여 마음을 울렸다. 전직이 코미디 배우였던 대통령 얼굴은 그동안 전투자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두 눈 사이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여 비디오 화면에 전쟁의 잔인함이 반영되고 있다. 베를린 중앙역 광장으로 걸어 나오는 난민들은 이 악몽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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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프리다는 벌써 2개월째 베를린시의 슈타트 미씨온에서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다. 특별히 종교적 희생정신을 가지고 하느님의 사랑을 실행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매일 전쟁 피해자들의 얼굴들을 TV화면을 통해 보면서 괴로워하는 것보다 난민들 속으로 들어가 피부로 느끼기 위해서란다. 그녀가 하는 일은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슈타트 미씨온 텐트 쪽으로 데리고 오는 것으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 한다.
어느 날 프리다를 만나고자 베를린 중앙역 뒤에 급하게 세운 간이 건물을 찾아갔다. 마침 그녀는 곧 도착될 기차에서 내리는 피난민을 데리려 나가고 없었다. 임시 건물 내의 복도를 둘러보고 있는데 뒤에서 내 어깨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하니? 네가 복도를 지나가는 것을 봤거든.” 옛 동료 마티아스가 반가운 얼굴로 내 앞에 섰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 그의 좁은 얼굴 가운데 자리 잡은 구부리진 콧잔등으로 금방 알아 볼 수가 있었다. 그가 조기 정년퇴직을 했다는 소식은 멀리서 들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고아원에서 2년을 살다가 입양한 양부모의 덕택으로 스판다우 구의 전원주택 지역에서 자랐다. 그는 험한 독일 땅에서 혼자 두 딸을 키우며 고생하는 누나라며 나를 따랐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 나에게 그는 순진하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한 번의 결혼과 파트너를 바꿔가며 동거를 시도한 후에 포기하고 지금은 여행하는 재미로 혼자 산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피난민을 돕는 일은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하고 있단다. 그는 나의 두 딸에 대한 안부를 물은 후 안부를 전하란다. 이제 예순이 넘은 나이, 이마에 생긴 인생계급장, 주름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그가 말했다.
“유럽에 다시 전쟁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지! 많은 인생살이 문제들을 흘러가는 세월이 해결해 주는가 하면 전쟁처럼 새로운 파국적인 역사적인 사건도 가져다주는 거지.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야.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피난민속에 섞여오는 고아들을 보면 내 마음속의 오래 잠겨 있던 아픔을 다시 되살려 숨이 막히는 것 같지만 …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20년만 지나면 성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손을 잡아주지. 나는 20 년 후면 죽어 사라질지도 모르지. 인간역사란 끊임없는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연속이니까.”
그는 한 시간 후에 교대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 마시잔다. 내가 프리다를 만나러 왔기에 약속을 할 수 없다고 하자, “… 오, 프리다가 너 친구야?”
그러면서 프리다와 같은 시간에 일이 끝나니 어디 가서 같이 앉아도 좋겠단다.
“너와 프리다가 원한다면 바로 우리 집으로 가도 돼. 차로 반시간이면 돼. 지금 전쟁피난민들이 몰려오고 있는 데 음식점에 가서 즐긴다는 것이 좀 뭣하니까.”
“너는 호비 요리사이었지. 아직도 부엌에서 많이 지내니?”고개를 끄떡거리며 그가 말했다. “…지나고 보니 나의 호비 생활이 여자들이 나를 떠나게 한 원인이었어. 침실보다 부엌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비난했으니까. 배가 고파서 일을 하기 위한 에너지 공급으로 음식을 먹는게 아니고 먹는 재미로 식도락가로 살다보니 같이 사는 여자와 트러블이 생기더라.”
“그럴 리가? 네가 해주는 음식으로 호강했을 텐데?”
“내가 요리와 먹는 것에 집착하여 문화생활을 등한시한다고 비난 했으니까 . 그 시간에 연극에도 가고 박물관에도 가야한다고 했었지.”
“박물관도 먹어야 가는 것인데 뭐가 잘못됐어?”
“요리를 하여 상을 차려 즐기는 과정이 나에게는 박물관이나 다른 방문보다 중요했거든. 서두르고 시간 맞추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여유 있게 요리하는 재미가 스트레스로 변하고 요리를 즐기는 그 다음 단계인 식탁에 앉아 음미하며 세상이야기 할 수도 없었어. 시간에 쫒기며 간을 맞추다 보니 실수가 생기더라니까. 그런 날이면 나는 기분이 잡쳐 저녁 내내 입을 봉쇄하고 옆에 앉은 사람을 의식적으로 무시하여 살벌한 분위기로 만들었지…
다 지난일 들이지만 나더러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결정을 하라는 동거녀를 떠나보낸 후 혼자살기로 작정했어. 요리하는 재미와 먹는 재미가 나에게는 사는 재미였거든!”
복도에서 피난민들이 오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자 한 시간 후에 만나자고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중앙역에서 수로 위를 연결하는 다리 위를 건너오는 난민들의 행렬이 보였다. 프리다가 앞장서서 그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도 보였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이 륙색을 메고 아이를 안고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무거운 걸음걸이로 몰려오고 있었다.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도 피난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배를 타고 한반도를 떠날 때 들고 떠난 ‘현해탄 가방’ 역시 피난 역사가 남긴 말이다. 나도 생전처음으로 현해탄 가방을 들고 지구의 반을 돌아 이곳에 왔다. 그 후 가방 밑에 바퀴를 달아 밀고 다닐 수 있게 됐다. 몇 주씩 여유 있게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바퀴 없는 오리지널 현해탄 가방은 자취를 감추었다.
폭탄을 피해 살기위해 떠나온 피난민들도 바퀴 달린 가방을 밀며 오고 있었다. 세월이 나를 구경꾼으로 만들어 전쟁 난민들을 지켜보게 되었다 .
이들과 다른 사람들 …무료한 일상생활의 변화를 찾아온 여행자들은 높은 호텔건물들이 서있는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구경꾼의 자리를 피해 바퀴달린 삼소네이트 가방을 끌고 호텔을 향해 가는 여행자들의 뒤를 따랐다. 호텔로비에 들어가 카프치노를 주문하고 가죽소파에 앉았다. 유리문을 통해 피난 행렬을 바라보았다.
세계도시 베를린 중앙역 광장에 폭탄이 떨어진다면 기차를 타고 난리를 피하여 온 피난민들과 휴가를 즐기려온 여행자들과 사업일로 출장을 온 사무직원들이 함께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민을 위해 일하러 왔다가 역시 목숨을 잃는 자원봉사자들 속에 나도 끼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신의 은총을 받아 살아남게 되는 부상자들은 “죽지 않았으니 행운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구 위에서 한 집으로 생각하고 붙어사는 인간들을 폭탄과 총으로 아기를 안은 젊은 여자와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죽이면서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고 헛소리를 해대고 있다. 전쟁 지시자 푸틴은 두꺼운 시멘트 보호막의 지하 궁전에서 TV를 보며 만족한 맹수의 웃음을 얼굴에 담을 것이다.
3
한번 시작한 전쟁을 어떻게 끝을 내야하는지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날이 갈수록 폭력은 심해지고 있다. 푸틴을 믿었던 유럽정치인들과 가까운 친구들도 충격을 받고 조금씩 제 정신으로 돌아와 의식을 되찾았다. 세계의 많은 정치가, 역사학자, 사회학자는 물론 신문기자, 예술 영화 계가 기절초풍을 했다가 속았다는 충격에서 벗어나 생각을 정리하여 그림과 글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피난민 대피소 앞으로 가서 프리다와 마티아스를 기다렸다. 아침부터 시작하여 모여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기 시작하여 난민들의 눈물과 함께 땅위에 떨어지며 베를린을 적시기 시작했다. 모여드는 여행객들로 언제나 어수선한 중앙역 근처의 분위기는 더한층 을씨년스럽다.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하여 나는 온통 유리로 새로 지은 푸드 스트리트에 들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마티아스가 난민 대피소에서 나와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를 찾는 마티아스를 지켜보며 먼 기억을 더듬었다. 휴무인 주말에 함께 김밥을 말아먹자고 마티아스가 쌀을 사들고 왔었다. 흰쌀은 비건강하다고 하며 5 Kg짜리 언켈밴츠 현미 쌀을 어깨위에 메고 채소와 포도주를 사들고 왔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내가 무거운 쌀을 사들고 다녀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다고 했다. 현미로 밥을 하여 김밥을 만들었는데 쌀알이 모래처럼 흩어져 숟가락으로 긁어모아 먹은 기억이 났다.
그도 이제 60고개에 올라섰다. 명치끝의 두피가 보이면서 대머리가 시작된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프리다가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나는 다시 영화의 한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둘이 비를 맞으며 서서 나를 찾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은연중에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다. 근무처에서 태디베어 (Teddybaer)라고 불린 곰같이 덩치 큰 마티아스의 무뚝뚝한 얼굴에서 풍기는 따뜻한 인간미가 프리다의 염세적인 세계고 (世界苦)로 어두운 표정이 무언의 대화를 이루는 듯했다. 둘은 서서 난민들로부터 전해 받은 여로를 빗물이 씻어 주기를 바라는 듯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빗방울이 가늘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유리문 밖으로 나갔다. 프리다와 반가운 얼굴로 주먹으로 코로나식 인사를 나눴다. 마티아스가 정류장에 차를 세워 두었다는 호텔 정거장으로 걸으면서 우리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다음호에서 이어집니다.)
1278호 14면, 2022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