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팽개쳐진 파독광부, 간호사 이대로 정부는 좋은가?”

이종우
(전 북부독일 글뤽아우프회 회장)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온지도 벌써 60년이 되었습니다.

파독광부의 경우 대한민국 정부가 1963년 12월 21일부터 1977년 10월 25일까지 총57차례에 걸쳐 파독광부 인력송출을 하여 오늘에 이르게되었습니다.

파독광부들은 한·독/독·한 양국 간에 승인 절차에 따라, 협약을 맺고 독일 Ruhr지방으로 대거 진출시킨 일로, 이는 우리 민족사에 큰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파독광부들이 독일에 오게 되기까지는, 국가 공시/공고를 통한 모집으로, 광고 방법으로 지원자를 모집하였기에, 이는 징발이나 차출이 아닌 자진응모 형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선발된 인원이 1953년 12월 1, 2차로 나뉘어 247명이 독일에 도착하며 파독광부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69년까지 7년간 10차례에 걸쳐 총 2,541명이 파독되었습니다.

2차 진출은 1970년 2월 19일 253명으로 재개하여 1977년 10월 25일 마지막 138명이 독일 도착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전체 57차례에 걸쳐, 총 7,936명이 우리 정부와 독일의 협략에 의해 독일에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이도 1978년부터 독일정부가 외국인 신규근로자고용 전면금지조치를 단행하는 바람에, 한국인 광부들도 이에 해당되어, 파독인력송출은 1977년 10월 25일부로 중단되었고, 파독 광부의 독일진출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파독광부들은 약 800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굳건히 이 독일 땅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중 120여명이 대한민국 주함부르크총영사관 관할의 북부독일에 거주하며, 현재의 북부독일 Glückauf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파독광부의 송출역사 배경은, 모두가 아시는 대로 6.25동란으로 폐허가 된 땅에 일자리가 없어, 어려울 때, 독일정부에서 탄광개발을 위한 인력을 추가로 외국에서 충당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 우리 정부는, 마침내 실업자구제와 경제발전에 절실히 요구되는 “외화획득”의 기회까지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활용한 것입니다. 즉 국가차원의 인력송출 결단이었지, “독일로 보내 달라고 우리가 떼쓰고 시위해서 독일에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월남전파병 역사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월남전 파병은 우리 조국이 베트공들의 침공을 직접 받은 것 아니고,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파병된 것입니다.

그러나 파독광부 송출배경은, 6·25동란으로 수많은 전몰장병들과 목숨걸고 싸운 생존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조국은 위험에서 지킬 수 있었으나, 폐허된 조국의 새로운 재건사업엔 막대한 경제발전 자금이 요구되는데,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정부는 파독광부송출을 결단한 것입니다. .조국근대화에 결정적인 재정적으로 “마중물” 역할을 한 파독광부. 간호사 송출은 “신의 한 수”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누구보다도 국가발전에 견인타 역할을 뚜렷이 한 우리들이 놓인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도 열악한 노후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오랜 세월을 대정부 구걸행각이나, 한국 정부는 우리들의 청원을 청취만을 반복하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하였습니다. 이제는 파독인력 송출의 의미를 제대로 재조명하여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진가를 확실히 인정해 달라는 절규의 한마디를 남기며 이글을 마칩니다.

1350호 17면, 2024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