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재외 동포문학상 전수식을 다녀와서

강정희

2024년 2월 7일 재외 동포 작가들의 등용문(登龍門)으로 불리는 재외동포문학상 전수식이 주독일대사관 본 분관에서 있었다. 남편과 함께 모처럼 나들이를 가는 것처럼 설렜다. 사실 상을 받으러 가는 날이 어찌 기쁘지 않고 설레지 않겠는가? 나는 매년 실시되고 있는 재외 동포문학상에 세 차례나 수상했다.

이번에는 희고 둥근 방울이 한없이 흘러내리는 어머니를 그리며 공들여 적은 시가 당선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머니를 향한 깨어 있는 그리움을 꿀꺽꿀꺽 삼키며 몸 맴돌이를 한다. 비바람 살을 에어도 팔 남매를 안으며 사신 우리 어머니, 한평생 채울 수 없고 갚을 길 없어 가슴이 아프다.

11.30시, 장청아 영사님의 사회로 전수식이 시작되었다. 태극기에 대해 경례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웠고 허승재 총영사님께서 멋있는 상패, 꽃다발을 전달하신 그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허승재 총영사님은 수상작 어머니를 여러 차례 읽으셨는지 우리 어머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이 또한 따뜻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라인강 변에 있는 근사한 식당에서 총영사님과 영사님과 서동원 선임 실무관님과 점심을 함께하며 뜻깊은 교제 시간을 가졌다. 처음 뵌 허승재 총영사님의 친절과 소탈하신 모습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오늘따라 바람이 슬피 운다. 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다. 해거름 멀리 어머니 치마가 감실감실 보인다.


<어머니>

강정희

열아홉 빨강 댕기 종갓집 며느리로
눈 감고 귀 입 닫고 행주에 눈물 적셔
끝없는 시작을 하며 일평생을 사셨지

몸으로 막아주고 감치고 비 다듬으며
굴비 엮은 팔 남매 뒷바라지, 집 살이
두 손이 거북 등처럼 줄줄이 갈라졌던

주고 또 주었어도 적다고 느끼시고
잘못한 게 없어도 내 탓이라 하시며
가족의 받침대였던 나직한 내리사랑

눈부신 여름 햇살 두둥실 뭉게구름
엄마랑 호호 불던 오색 꿈 비눗방울
보고픈 얼굴 그린다 동그라미 속에서

30촉 백열전구 문풍지에 드는 바람
힘든 하루 얹은 발을 대얏물에 담그면
엄마의 퉁퉁 부은 발은 보름달이 되었지

그믐달 칼날 추위 가쁜 숨 고르시며
오로지 가족을 위해 간절히 두 손 모은
애절한 갈매 기도에 밤이슬도 울먹였지

붉은빛 고무장갑 보송보송 손 크림
냉장고 전기밥솥 세탁기 볼 때마다
찌들인 평생의 삶이 응어리로 맺힌다

난생처음 첫 봉급 빨강 속옷 선물에
내 나이가 몇인데 이리 야한 색깔이냐
수줍은 새색시처럼 볼 붉히던 어머니

보고 싶은 막내야 내 걱정일랑 말고
멍이 들고 아파도 어떻든 견뎌야 해
인내의 아픈 기억이 평생 힘이 될 거야

속은 죄다 내어주고 온 고생을 덧바른
탕 안에 잠겨 있는 세월 속의 검버섯
모처럼 그 모습 보며 빈 가슴을 메어쳤다

멀찍이 자식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며
입 뻥긋 단속하며 오래도 버티셨던
신음을 움켜 안는다 아! 어머니, 어머니!

입에 붙은 찬송가의 곡조를 되뇌시며
목이 긴 기다림에 손가락 꼽던 나날
섬김을 놓쳐버린 아쉬움, 살다 보니 나중은 없어라

살아생전 못다 한, 한 맺힌 자식 도리
회초리를 맞은 듯 가슴이 미어지네
한 생전 갚을 길 없어 맷돌 하나 안고 산다

기나긴 세월 속에 묻혀버린 추억은
각혈하는 철쭉의 목이 쉰 맞은 소리
어머니, 저 이제 울지 않는 어른 된 거 맞지요

찰랑이던 단발머리 어느덧 은빛 새 품*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난 행운아요
더없는 행복이라고 진정 고백합니다

한 세월 나무 되어 휘청휘청 바빴다
뿌리에 흠뻑 먹인 거름 밭 어둠 뚫고
연어의 회귀본능으로 어머니를 찾는다

철쭉 피는 길턱에 어머니의 기일이
지금껏 들려오는 다정한 그 목소리
이렇게 문득문득 날 울리는 울 어머니

불러도 대답 없는 어버이 무덤가에
애써 눈물 감추며 속죄하는 맘으로
다홍색 패랭이꽃을 올망졸망 피웁니다
(*억새의 꽃)

1351호 14면, 2024년 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