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관계 “사랑과 전쟁”

남종석/전 폴란드 한인연합회장

흔히들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 관계를 가리켜, 가깝고도 먼 관계라고 한다.그러나 애증이 교차하는 이웃 국가들의 관계로 말하자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도 더하면 더했지 못할 건 없는 것 같다.

폴란드는 16~17세기 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구성하여 중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지배하는 등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폴란드는 현재의 리투아니아와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러시아에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미국의 명배우 율 브리너가 열연했던 영화 ‘대장 부리바’(1962)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적대관계를 잘 표현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러시아소설가 고골리의 소설이 원작이며, 17세기에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지배에 저항한 코사크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자포리자의 코사크 지도자인 주인공 부리바는 두 아들을 폴란드가 지배하던 키이우의 대학에 유학보낸다. 그러나 기대했던 맏아들은 폴란드여인과 사랑에 빠져 코사크가 폴란드로 부터 독립전쟁을 벌리는 과정에 조국을 배신하게 되어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내용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자포리자의 코사크족은 보흐단 흐멜니츠키(Bohdan Chmielnicki, 1595~1657)의 지도하에 폴란드에 반란을 일으켰고 흐멜니츠키는 1654년 러시아 차르에 충성맹세를 하는 조약을 체결한다.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중동부는 러시아제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러시아제국은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다.흐멜니츠키에 대한 평가는 나라마다 다르다. 러시아에서는 역사적 영웅이지만, 폴란드에서는 정반대이고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서쪽에 ‘할리치나(Halychna)’라는 곳이 있다.

이 땅은 과거 폴란드 령으로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함께 섞여 살던 곳인데,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크라이나인은 소작농, 소수인 폴란드인들은 지주 지배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종교적으로 폴란드인은 가톨릭계, 우크라이나인은 동방정교계로 사회가 양분되어 보이나,서로 결혼을 하는 등 많이 융화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원주민 우크라이나쪽의 입장에서는 이민족 그것도 정교회가 아닌 카톨릭을 믿는 이민족이 들어와 지배자 행세를 하는게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1795년 폴란드는 러시아,독일, 오스트리아에 의해 강제 영토분할을 당해 폴란드가 유럽의 지도에서 사라졌다가,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후 강대국간 절충지역의 필요성으로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 폴란드가 123년만에 유럽에 재등장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할리치나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서부 일부지역이 폴란드 영토로 편입되었고, 1919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간 영토전쟁이 일어났으나 1920년 폴란드의 승리로 영토문제가 매듭되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 1939년 나치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이에 나치독일의 위세를 등에 업은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 1909-1959)가 이끄는 우크라이나 극우 세력들이 폴란드와 유대인들에 대해 잔인한 대학살을 자행하였다. 더 나아가 같은 우크라이나인이라도 폴란드인과 혈연관계가 있으면 그 만행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폴란드측에서는 이 당시 학살당한 폴란드인을 30만명으로 추정한다.

1991년 소련으로 부터 분리 독립된 우크라이나는 지속적으로 러시아와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충돌과 대립을 해왔고, 이 과정에서 극단적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폴란드와 또 다른 역사 갈등을 촉발하게 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독립을 추구하면서 외세에 맞선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한 우크라이나는 스테판 반데라를 우크라이나 건국영웅으로 추앙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2016년 끼예브에 있는 모스크바대로를 “스테판 반데라 대로”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지방 곳곳에 그의 동상이 여러 곳에 세우기도 하였다.

문제는 폴란드인들에게 스테판 반데라는 히틀러와 나치 독일군과 동일시되고 있어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정부에게 스테판 반데라의 추종움직임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해오고 있다.

2004년 폴란드의 E.U가입으로 대규모 인력이 서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생긴 빈자리를 우크라이나인들이 채워오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운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저임금 육체노동자들인데, 나라 경제가 엉망이 된 이들 입장에서는 폴란드의 최저임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전까지 약 150만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폴란드에서 일해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폴란드도 1989년 개방이후 그리고 2004년 EU가입이후 서유럽으로 수백만의 인구가 유출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는 단순 육체노동자(화장실 청소 등에 종사하는 폴란드인 노동자를 비하하는 ‘Toilet Cleaner’라는 비하 명칭도 있을 지경)뿐만 아니라 고급 인력(의사, 기술자 등)들도 서유럽으로 빠져나가고 있어 골치가 더 아프다.

그나마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다행인 점은, 유럽 난민 사태로 인해 무슬림 난민들을 단호히 거부하는 폴란드가, 그래도 우크라이나인들은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그나마 가까운 편이라서 심하게 거부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우방으로, 적극적인 난민 수용 등 여러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역사적인 갈등이 있음에도 적극적인 난민수용과 군사적인 지원을 하는 이유는 지정학적,전략적으로 우크라이나가 폴란드에게 러시아 사이의 가장 중요한 경계지역이자 완충지대에 자리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폴란드국경을 따라 러시아 발틱함대의 본거지인 칼리닌그라드를 비롯해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발트3국으로 언제라도 러시아의 직접적인 군사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지정학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푸틴의 다음 타깃은 폴란드라고 많은 폴란드인들이 우려하고 있다.

폴란드 국방장관은 2022년 나토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하여 “폴란드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폴란드의 독립이다”라고 말했다.이에 대비하기 위해 폴란드는 실제억지력(Real deterrence potential)을 구축해야 한다며 군병력을 30만명으로, 국방예산을 GDP(국내총생산)의 3%까지 각각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실제로 폴란드는 25억불이상의 엄청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였고, 전략공백을 메우기 위해 2022년부터 한국으로 부터 35조 규모의 무기계약을 통해 한국산 장갑차, 전차, 전투기 등을 수입해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속되고 있으나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정부와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세계은행(World Bank)의 공동 평가에 따르면, 재건 비용은 4,860억 달러(한화 약 650조)로 우크라이나 2022년 GDP의 3배 수준이다.

나탈리 하레스코(Natalie Jaresko) 우크라이나 전 재무부 장관에 따르면, 수출 감소, 경제 활동 중단으로 인한 피해와 같은 기타 경제적 요인을 더하면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총 1조 달러(한화 약 1,350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재건과 복구에는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키이우 경제 대학(Kyiv School of Economics)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1년만인 2023년 2월까지 13만 채 이상의 개인 주택, 17,500개의 아파트, 149,300개 이상의 주거용 건물, 3,000개 이상의 교육 기관이 파괴되었다. 또한, 러시아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집중하면서 에너지 인프라 피해 규모도 급증했다.

폴란드 은행 Pekao SA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재건으로 폴란드에는 GDP의 3.8%에 해당하는 389억 유로(한화 약 52조 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러시아의 적대 행위가 끝나자마자 즉각적인 재건으로 66억 9,000만 유로(한화 약 9조)의 직접적인 이익이 발생할 것이며,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저지하고, 주요 곡물과 식용유, 상품 시장 가격 상황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부지역에서 내전이 지속되고 있고 러시아와의 대립도 단기간 내에 해결될 상황이 아닌 우크라이나에게 폴란드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우크라이나가 EU가입을 추진하게 되면 현 EU회원국인 폴란드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고, 동부지역에서의 내전을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무기를 비롯한 물자들과 원유, 가스 등을 비롯한 국내의 사회적, 경제적 필수물품들을 받아들이는 주요 유입로이자 이러한 물자들의 주요 지원국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두 나라간 여전히 갈등관계가 현존하고 있다.

폴란드 농민들은 2023년 11월부터 값싼 우크라이나산 농수산물 수입에 반대한다며 우크라이나와 이어진 고속도로를 트랙터 등으로 차단했고 화물 철도 운행을 막는 극단적인 행동을 반복해오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가장 많이 돕고있는 나라 중 하나이지만,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우리가 가장 많이 겪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와 일시적 국경 폐쇄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저렴한 우크라이나산 농산물로부터 폴란드 시장을 지킬 방안을 계속 찾아왔지만 이 해법밖에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EU로의 농산물 수출이 몇 달 동안 차단되었으며 우크라이나의 손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금년 2월에만 우크라이나는 관세기준으로 만으로 1억 7천만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이렇듯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역사적인 양금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적인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협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중유럽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두 나라간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협력관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습니다. 국가이익만이 영원하고 영속적이며 그 국익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19세기 영국 정치인인 헨리 존 템플경의 이 말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현실 국제정치의 금언이다. 한국도 미국, 일본 등 우방국들과 협력, 중국, 러시아와의 긴장관계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을 찾아야한다.

만만하면 무시당하고 휘둘리게 되는것이 국제정치이다. 냉혹한 국제정치의 정글에서 존중받는 동맹과 우방으로서 가치를 높이고 흔들림 없이 국익을 지켜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결국 실력이다.

우리 스스로 실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익도, 동맹·우호 관계의 지속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오랜 역사 갈등 속에서도 자국의 이익, 생존을 위해 협력하고 때론 갈등을 극복해나가는 폴란드의 유연한 현실 외교 전략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1376호 14면, 2024년 8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