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32)

동서독 문화통합(2)

분단 시기 동서독 문화교류 ➀

동독의 울브리히트 서기장은 1963년 서독에 대하여 전독문화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주장했으며, 1964년에는 동독 문화성 장관이 서독의 각 주 문화성장관들에게 문화협상을 제안하였다. 동독 정부는 문화교류로서 연극과 오케스트라 상호 방문 연주를 정기화하자고 제안하였으며, 서독도 이를 환영하였다.

그러나 협상은 성사되지 못하였는바, 이는 동독은 동독과 서독이 별개의 국가라는 입장 하에서 협상을 진행하고자 한 반면, 서독은 동독의 실체인정을 전제로 하는 어떠한 협상이나 협정 체결도 있을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즉, 동독은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받기 위한 도구로써 문화교류 협상을 제안하였으며, 서독은 문화와 학술 분야의 교류를 정치화하려는 동독의 자세에 대해 비판하면서 단일 민족으로서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무조건적인 문화교류를 주장하였다. 동독은 서독의 협상 거부에 대하 여 방문 연주나 연극 공연 등을 위한 문화예술인들의 입·출국을 제한하는 등 난관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1972년 동서독이 ‘기본조약(Grundvertrag)’을 체결하여 쌍방이 별개의 정치적 실체로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정상적인 우호관계를 증진하기로 합 의하였는바, 동 조약에서는 문화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협력 추 진을 위한 후속 협정을 체결하기로 하였다.

동서독 문화협정의 체결

동서독 간 기본조약의 후속 협상으로서 문화협정 체결에 대한 협상이 1973년 11월 27일 개시되었는데, 전술한 입장 차로 인하여 협상은 진전되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1982년 동베를린에서 개최되었던 서독의 도시환경 정화에 관한 전시회에 참석한 호네커 서기장은 서독 수상실 장관 한스-유르겐 비스네브스키에게 문화협상을 재개하자고 제의하는 한편, 프로이센 문화재 반환에 관한 문제는 협상에서 제외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는 1981년 호네커-슈미트 정상회담 이후 동·서독 간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새로이 출범한 서독의 콜(Kohl) 정부는 이러한 동독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1983년 9월 문화협상을 재개하였다.

문화 분야는 서독 기본법상 연방정부 소관이 아니고 주정부 소관이기 때문에 서독에서는 대동독 문화협정 협상에 연방정부 대표 이외에 주의 대표가 참여하였다.

문화협정 체결을 위한 동서독 간의 협상은 다른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에 관한 협상과는 달리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는바, 이는 문화협력에 대한 동서독 간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견해 차이에 기인하였다.

동독은 서독을 외국으로 간주하는 정책에 입각하여 문화협정 문제를 다루고자 하였으나, 서독 측은 동·서독은 하나의 문화 민족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협상을 진행하고자 하였다.

서독의 이러한 기조는 집권당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유지되었는데, 사민당(SPD) 집권 시 브란트 수상은 1973년 1월 18일 정부성명에서 “분단에도 불구하고 언어, 예술, 문화, 일상생활과 정신문화유산의 공통성에 기초한 민족은 영원하다”라고 언급하였으며, 기민당(CDU)이 집권한 이후에 1982년 10월 13일 콜 수상은 정부성명에서 “독일인의 민족국가는 분열되었지 만, 독일민족은 계속 유지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존속될 것이다”라고 언급하 여 이러한 기조를 재확인하였다.

동서독 간의 문화협정 협상에는 3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1986년 5월 6일 문화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는 체제 유지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신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경제교류, 우편교류, 통행, 스포츠·보건 분야 교류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었던 동독의 태도와 대비되는 것이다.

문화협정 체결 협상에 있어서의 동서독의 입장

서독 측은 문화협정을 독일정책 추진의 주요한 수단으로 보았으며, 문화 협정이 양독 주민들 간의 문화의 공통성을 유지·보존시키고, 문화적인 측면 에서 주민들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문화협정을 통한 문화 분야 공동협력을 계기로 상대편 체제의 사회 문화생활에 대한 상호이해를 증진시켜, 서로 다른 군사동맹체에 소속되어 있고, 상이한 정치·경제적인 구조 하에서 살고 있는 동서독 주민들 간의 평화적 인 관계를 유지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취하였다.

동독 측은 서독 측이 주장하는 단일 민족성과 단일 문화성을 부인하며, 사회주의 문화의 독창성을 주장하였다. 동독 측이 문화협정을 체결했던 주요 동기는 세계적 문화수준을 가진 서독과의 협정체결을 통해 국제적으로 동독의 문화수준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문화 수준 면에서 동독이 서독과 대등한 수준임을 알리는 데 있었다.

또한, 반체제 문화인들에 대한 유화적인 조치의 하나로 서독 등 외부세계와의 접촉점을 마련해 줌으로써 이들의 고립감과 소외감을 완화시키고 이들의 불만이 체제유지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도 내심 기대 하였다.

중앙집권적인 통제사회하의 동독 문화 수준과 자유 민주주의 체제 하의 서독 문화 수준은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동독 정부는 이에 따른 동독 문화인들의 불만을 서독인들과의 제한적인 접촉허용으로 해소하고자 하였다.

한편, 동독은 서독과의 문화협정 체결을 통해 자유주의적 서독문화가 동독에 유입되어 사회주의 체제를 약화시키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였다.

동독 측은 문화행사의 개최 대상을 국가가 주관하는 공식적인 행사에 한정하려 했던 반면, 서독 측은 문화활동의 주체는 국가와 개인 모두가 될 수 있으므로 누구나 행사 개최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문화행사 개최 횟수도 서독 측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입장이었으나, 동독 측은 일정한 횟수로 제한하고자 하였다. 동독 측은 문화행사의 무제한적 개최는 체제 유지에 부담이 된다는 측면과 함께 문화행사 개최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도 함께 고려하였던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동서독 문화협정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도록 한다.


교포신문사는 2020년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연재를 통해 살펴보며,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편집자 주

1208호 31면, 2021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