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

윤재원 박사

독일 속 한국가정에서 겪는 대표적 어려움은 자녀교육,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의 언어문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이를 위해 윤재원 박사의 논문 “ 다중 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을 매월 첫째 주에 연재한다. 전문적인 논문을 일반인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새로이 쉽게 풀어 연재를 해주시는 윤재원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이 글은 기고자가 쓴 《다중 언어 구사 어린이의 언어 혼용에 관한 연구 (A Case Study on Trilingual Siblings‘ Code Switching, Focus on Minority Language Development ) 》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 기고자는 이 책의 내용을 주제로 영국 브라이튼, 독일 마인츠대학, 네덜란드 그로이닝어대학의 다언어학회에 각각 초청받아 발표를 하였으나, 저서가 영어로 쓰여진 관계로 연구의 내용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한국 사회에 정보가 전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항상 갈증을 느껴 왔다.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 아니 세계 각국에서모국어인 한국어와 다른 여러 언어들을 동시에 배우며 자라는 우리 아이들, 교사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전 지구적 자산으로 키워야 할 책임이 있는 우리 공동체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썼다.
학술적인 설명을 최대한 자제하고 멀티링구얼(Multi-Lingual) 자녀 키우기의 성공 및 실패담을 중심으로 일화들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독자들이 즐겁게 읽고 이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갖거나 되짚어 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이글은 그 소명을 다한다.
<기고자 소개>
• 현 독일 루르 보훔대학교 한국학 강사, 쾰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사회 언어학 및 어린이 다중언어 발달 교육 강사
• 기업 이문화 컨설턴트 (Interkuturelle Beratung, Cross-cultural consultant)
• 독일 쾰른대학교, 다중언어 어린이 한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로 언어학 박사
•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UMBC) 언어문화교육 석사
• 현 11학년과 10학년 자녀의 엄마

연재를 시작하며

아이들은 동시에 두 가지 언어를 배울 수 있을까? 자라면서 두 언어 모두 문제 없이 구사할 수 있을까? 아이가 자꾸 언어를 혼용해서 쓰는데, 문제가 되진 않을까? 두 개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힘들 텐데 학교에 입학해서 다른 외국어들까지 과연 다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만약 두 개의 언어를 균형 있게 구사할 수 있게 된다면 아이의 사고방식은 어떻게 될까? 자신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이러한 질문은 이중/다중 언어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물론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아이로 양육하고자 하는 한국에 있는 부모까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본 문제일 것이다.

이민자들은 특히 가정을 꾸리게 되면 한 번쯤은 아니 적어도 얼마간은 지속적으로, 아이들의 언어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다. 유학, 취업, 여행 등의 이유로 타국에 갔다가 가정을 꾸리게 된 경우, 주재원 신분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하게 된 경우, 국제결혼을 통해서 해외로 이주하게 된 경우 등 이주의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면 가정 내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질서를 잡아야 하는 날들이 온다.

과거의 이민자들은 언어에 대한 준비 없이 이민하는 경우가 많았고(수많은 어학 교재가 존재하고 인터넷에서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지금에 비하여 그 당시에는 언어 교재도,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공부할 자료도 별로 없지 않았는가)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언어를 배웠기에,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자녀들에게 되물림하지 않기 위하여 자녀가 한국어 보다는 이민국 언어에 빨리 적응하기를 바랐다.

부모는 어려서부터 타인의 언어를 익힌 2세 아이들이 적어도 언어로 차별받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했고, 그러기에 한국어를 전수하는 것보다 타국 언어 교육에 비중을 두었다. 또한 그때 당시 한국어는 국제사회에서 지금처럼 폼나는 언어가 아니었기에 부모하고만 소통이 되면 한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하여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9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이중언어에 대해 석사 학위를 받은 이후 메릴랜드주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하여 영어를 가르쳤고, 커뮤니티 컬리지(독일의 Volkshochschule와 유사한 기관)에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시민권 취득을 위한 영어 강좌를 하며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 즉 한국어 영어 이중언어 보급에 대하여 꾸준히 강의를 해 왔다.

그 당시 나는 교민들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이중언어를 골고루 습득하도록 돕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특히 양부모가 모두 일하는 경우 사실 이중언어 습득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왜 수 많은 교포 2세들이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또한 한국어-독일어-영어 삼중언어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직접 경험을 통해서 이 어려움에 대하여 뼈저리게 공감하게 되었다.

필자의 둘째아이 작품
“시작”(2019)

2004년 나는 한국에서 만난 독일인 남편을 따라 독일로 이주하게 되었고 1년 반 만에 큰 아이를 칼스루헤에서, 한 살 반 터울로 둘째 아이를 자브리칸에서 출산하였다. 세상은 늘 그렇듯이 빠르게 바뀌어 갔고 이중언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관대해지고 지식도 학설도 풍부해졌다. 유럽은 이미 다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중의 다중언어에 대한 관대성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강대국의 언어로 제한됐다. 외국어를 배워서 사회에 나갔을 때 경제적 가치를 불러오는, 즉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언어만 가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한 가지 사건을 공유하자면 자브리켄(Saarbrücken)의 정기 검진을 위해 갔던 한 소아과에서 의사와의 첫 대면을 들 수 있다(자브리켄은 주민의 대부분이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이중언어 도시이다). 내가 진료 중 아이와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본 의사가 대뜸, “아이와 독일어를 쓰세요. 엄마 나라의 말을 쓰시면 안 됩니다.“ 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한국말(의사는 ‘당신이 쓰는 그 말‘이라고 칭했다.)로 아이와 소통을 하면 아이의 독일어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독일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적응을 못할 것이라 조언하였다.

아이의 언어 발달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야 할 소아과 의사에게서 들으리라 생각도 못 했던 조언에 불쾌하고 기막혔지만 서툰 독일어로 의사와 이중언어 습득에 대하여 토론을 하기에 역부족이라 생각되어 별말 없이 집에 돌아 왔고, 늘 그렇듯이 애꿎은 남편에게 화살을 돌렸다.

이중언어에 대한 기본도 모르며 의사라는 이유로 아무 말이나 뱉는다, 본인도 프랑스어 독일어 이중언어를 구사하며 잘 자라 왔을 텐데 한국어는 왜 차별하느냐며 (의사는 나와 나의 아들의 언어가 한국어인지 당연히 몰랐겠고 관심도 없었을 테지만)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에게 했어야 하는 말들을 남편에게 퍼부으며 분노를 풀어 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충격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어린이의 이중언어 발달에 대하여 소아과 의사조차 잘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실망, 독일어가 미숙해서 그의 말도 안 되는 발언에 아는 만큼 응대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실망, 마지막으로 나의 모국어를 내 아이와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감히 왈가왈부한 그의 무개념 행동이 함께 뒤엉켜 상처로 남았다.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 의사의 무개념 조언은 이중언어 습득에 대한 지식 부족이라기보다 그의 정치적인 신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자들의 언어를 존중할 줄 모르는, 이민자들은 무조건 독일에 흡수되어 문화적으로 동화되어 살아야 한다는 우익적 사고방식이 아니었을까. 어찌 되었든 이 의사와의 첫 대면은 후에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 일하며 만난 사이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우리의 공통언어는 영어였고, 독일로 이주한 후에 나는 열심히 독일어를 배우고자 열의 넘쳤었으나 지독한 입덧으로 3개월 만에 그 짧은 독일어 공부의 여정은 막을 내렸다.

독하게 맘먹고 신나게 다녔던 어학원 다니기를 포기해야 했고 집에서 변기통과 씨름하며 구역질로 임신 기간을 보내고 드디어 큰아이가 태어났다. 남편과는 임신때부터 아이에게 한국어 독일어를 모두 전수하기로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우리 집의 언어는 두 개가 아닌 세 개라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세 개의 언어를 마주하게 된 아이의 운명, 그리고 그 아이와 소통 방식을 만들어 가야 하는 나….

“생일 파티에 다녀오다”.
필자의 큰아이 초창기 독일어 일기 중

출산 전부터 나는 이미 아이의 언어 발달에 대하여 많은 서적과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이중언어에 대한 연구나 자료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영어나 유럽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한정되어 있었고, 다중언어 즉, 세 개 이상의 언어를 배우는 아이들에 대한 연구는 초기 단계로 세간에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다.

어차피 아이들을 다중언어로 키우려면 많은 수고가 들어갈 텐데 아이를 키운 자료를 잘 모아서 다른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과 자브리켄에서 나에게 큰 모욕감을 주었던 소아과 의사와의 불쾌했던 만남을 곱씹으며 교육기관, 의료기관 등 어린이 양육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꾸리라는 무모하고도 전투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쾰른대학 문을 두드렸다.

연구 기간과 집필 기간을 합쳐 7년이 걸렸다. 두 아이가 말을 시작할 때부터 아이들이 놀고 말하는 일상을 꾸준히 비디오로 촬영해 두었다. 대학 수업을 들어가며 틈틈이 아이와 노는 모습을 찍은 영상들을 분석하고, 아침마다 목에 핸드폰을 건 채로 아이의 한국어 독일어 영어 발화를 녹음하느라 음성녹음 장치를 틀고 아이 손을 잡고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녔다.

늦은 나이에 박사 과정을 밟으려니 일단 너무 오래 놀다가 공부를 시작해서 힘들었고, 아이 둘을 키우며 어설픈 살림 실력에 치여서 힘들었고, 마침 벌려 놓은 작은 사업이 수습이 안 돼서 힘들었지만, 어찌어찌 견뎌 내어 담당교수가 원래 계획했던 3년보다 훨씬 긴(두 배가 넘는 기간) 시간이 걸려 연구가 끝이 났다.

아이들은 이제 자신이 어렸을 때 했던 말을 연구 분석해서 엄마가 학위를 수여받고 책을 썼다는 것을 알고, 그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도 하고, 가끔 어릴 적 비디오를 보며 자신들이 서너 살에 나눴던 대화에 즐거워하고 기막혀하기도 하며 내가 저 말을 했을 때 이런 생각이었네 어쩌네 하며 토를 달고 농담을 할 정도로 장성했다.

그동안 수많은 이중언어에 관련된 육아 서적들이 서점에 나왔고,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보면 이제 아이의 다언어 습득에 대한 조언들과 성공담들은 넘쳐 난다. 하지만 실상 그 과정을 그린 저서나 그 어려움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자료는 많지 않다. 특히 미디어에 넘쳐 나는 언어 천재 아동들은 그렇게 키워 내지 못한 부모들에게 “이렇게 하면 되는데 당신들은 왜 못 해내는가“라는 부정적 의식을 심어 준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니, 이중/삼중언어가 봇물처럼 터지는 시기가 있었고(그때는 나도 내 아이가 천재인 줄 알았다.), 환경에 따라 정체되는 시기도 있으며, 사춘기가 되어 훌쩍 자란 아이들에겐 부모가 도와주거나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줄어들기에 다중언어 습득은 결국 아이의 의지와 손에 달리게 된다. 이 긴 여정을 통해서야 드디어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언어로 세상을 살게 되는지 아닌지를 가늠하게 되지만, 이 여정은 사실 끝이 없다. 인간의 언어는 평생에 걸쳐 습득되기 때문이다.

본 연재는 한국어 독일어 영어를 구사하는 멀티링구얼 남매의 언어 습득과 부모의 양육 여정을 그린다.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사춘기 즉, 정체성 문제에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시기까지를 다룬다. 성공담을 나누기보다(성공했는지 아직 모르기에) 부모로서 다언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려웠던 점과 겪었던 일화를 나누고, 내가 공부하며 읽었던 책 중에 실생활에 직접 쓸 수 있는 이론들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모든 공동체의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겠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우리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여러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아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많은 어른들이 있다. 이 글은 그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1225호 14면, 2021년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