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속 한국가정에서 겪는 대표적 어려움은 자녀교육,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의 언어문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윤재원박사의 “다중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 10


교포신문사에서는 이를 위해 윤재원 박사의 논문 “ 다중 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을 매월 첫째 주에 연재한다. 전문적인 논문을 일반인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새로이 쉽게 풀어 연재를 해주시는 윤재원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다중언어 가정의 양육 방식 차이, 언어 사회화 차이 – 아이들에게 문화차이에 대해 교육하자

필자가 수년 전에 독일어 학원에 다닐 때의 일화다. 그 당시 나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 중년의 사회인이었고 어학원에는 갓 고등학교를 마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 학생, 한국에서 음대나 미대를 마치고 온 학생, 혹은 제대해서 독일로 유학 온 학생 등 젊은 한국 학생들이 우리 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었다.

나의 독일어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문법적으로 다 틀리고 부족하기 짝이 없었으나 남편이 독일인이고 독일에서 살았던 시절이 긴지라 수업 시간에 의견이 있을 때마다 자유롭게 어떨 때는 등 떠밀려서 한국 문화나 한국 학생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었다. (나는 틀려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니, 젊은 학생들에 비해 부끄러움이 덜 할 수 있는, 동시에 틀리더라도 수업 시간에는 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말 배우기가 절실한? 독일 물 좀 먹은 어른이기에..)

어느 날 독일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나를 지목하면서 왜 다른 한국 학생들은 너처럼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가, 왜 한국 학생들은 저 나이가 되도록 부모의 재정적 보조를 받는가, 한마디로 너무 팔자 좋게 유학을 하는 것 아닌가, 왜 부모에게 삼 개월이 멀다 하고 반찬을 공급받느냐 등 노골적인 비판과 더불어 우리 학생들이 독립적이지 못한 불완전체라는 말을 거침없이 뱉어 댔다.

우리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독일어 교사의 무식도 문제였지만, 나의 부족한 독일어로는 우리의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우리의 사회구조에 대해 논리적으로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아쉬운 기억이 있다.

다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는 학생들이 가정에서 어떻게 사회화가 되는지에 대한 연구는 세계화, 다문화 사회에서 그 중요성을 점점 더해 간다. 왜냐하면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학교에 새로운 언어를 가지고 들어옴과 동시에 가정 문화를 학교 시스템에 들여오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이 학생들의 행동양식이나 문화의 다름을 위에 소개한 독일어 교사처럼 오해하거나 혹은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기 일쑤이고 궁극적으로 그 학생을 잘못 평가하고 다른 독일 학생들에게 그 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님 및 주변 어른들, 즉 자신 보다 유능한 사회 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언어적 문화적으로 유능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간다. 상호작용은 놀이, 돌봄, 배움 등 여러 가지 형태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필요한 언어와 올바른 행동양식을 습득해 나아간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은 상대 문화권의 사람을 자신의 문화의 잣대에 비추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오해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비단 어른뿐 아닌 어린 학생들에게도 다 해당된다.

어떤 문화는 어려서부터 어른들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고 공손함을 강조할 것이고, 다른 문화는 어른과 대화할 때에 공손보다는 평등하고 치열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유능한 사람이라 가르친다. 이렇게 대화하는 방법의 핵심과 중요성이 다른 사회화를 거친 아이들은 가정 교육과 다른 학교교육을 받게 될 때 혼란스러울 것이고, 다문화 소통에 대해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교사 역시 학생들의 행동과 태도를 쉽게 오인한다.

문화권마다 어른들이 영, 유아들과 상호 교류 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문화에서는 부모들은 영 유아들에게 짧고, 단순하고, 목소리 톤까지 바꾸어 아이들과 활발하게 언어를 매개로 소통하고자 한다. 우리 문화도 독일 문화도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에 2세 이하의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말을 시키지 않는 문화도 있다. 캐나다 원주민 이누이트 엄마들도 영아를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기에 어린아이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아프리카의 부족들 중에는 영아와 이야기하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기운이 스민다는 믿음으로 일하는 엄마는 아이를 등에 없고 일하되 아이가 홀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 시키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이를 기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지만 모든 문화권의 아이들은 문제없이 말을 배워간다는 사실이다. 죽도록 부모들이 책을 읽어주는 선진국 아이들이나, 엄마 등에 업혀서 엄마가 남과 이야기하는 목소리만을 듣고 자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아이나 다들 말을 잘 배워 간다.

그런데 영유아와의 소통 방법의 차이는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자신을 보는 틀을 다르게 구성해 가도록 만든다. 자신에 대한 개념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가게 되며 형성되는데 이러한 자의식은 그들이 속한 사회, 문화와 정교하게 짜여 있다.

어떤 문화권의 아이들은 관계지향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남을 항상 염두에 두고, 단단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자라나고 한국 문화가 이 문화권에 속한다. 이와는 달리, 집단보다는 개인의 성향, 남과 다른 ‘고유한 나’를 구성하는데 지향점을 두는 문화권이 있는데 독일을 위시한 서유럽의 많은 나라들과, 북미, 영어권 나라들이 그러하다 (그 문화의 모든 사람이 모두 다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삽화 : 노민선 작가
삽화 : 노민선 작가

이러한 문화 차이는 언어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한국어에 친척, 친지를 나타내는, 즉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말들의 숫자를 세어보면 알 수 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는 독일어로 번역이 가능하지만, 큰삼촌, 작은 삼촌, 이모, 고모, 숙모, 외숙모, 큰아버지, 큰어머니, 이종사촌, 고종사촌 등등 독일어로는 그저 Tante이고 Onkel인 이 말들이 한국어로는 끊임없이 많다. 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까지 다 배우려면 그저 한 가정의 뿌리를 죄다 파악하고 있어야 부를 수 있는 말들이다. (한국어 공부하는 독일 학생들의 가장 커다란 괴로움 중 하나이다. 그러니 우리도 독일어 der, die, das관사에 좌절하지 말자).

이뿐인가 사회적 지위를 알리는 말들, 주임, 대리, 과장, 부장, 차장 등등 독일어나 영어로는 다 Manager인데 한국은 이러한 지위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말들이 기관별로 회사별로 독일어 보다 훨씬 많다 (자 이쯤에서 우리는 독일어의 어마 무시하게 긴 단어들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한 가지 더 댄다면 존댓말이 있다. 학자에 따라 다르게 분류하지만 우리말에서 존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대략 여섯 가지가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것으로 동사의 형태 변화를 통해 해요체, 합쇼 체 등등 존대를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더욱이 독일 학생들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명사에도 존대 명사가 있고 동사도 형태 변화만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동사로 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밥은 진지가 되고, 얼굴은 용안이 되고, 주다는 드리다, 있다는 계시다로 어휘적인 높임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우리는 독일어의 복잡한 형용사 어미 변화나 N 변화 등은 너그럽게 용서하고 배워줘야 한다. 그렇다. 배우기 쉬운 언어는 없다). 이렇게 언어의 차이는 태도와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를, 나아가 극명한 문화 차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독일 가정과 한국 가정의 양육방식의 차이는 어떠한가. 우리 문화는 아이들에게 공손함을 중요하게 가르친다. 존댓말을 배우고, 어른과는 두 손을 사용해서 물건을 주고받고 , 말대답하지 않고, 어른 말씀을 잘 듣는 것을 모범적이라 생각한다.

모든 독일 가정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 집에서 남편은 자꾸 아이들과 논쟁을 벌인다. 일상이든 정치든 말할 꼭지를 찾아낸 후 식탁에서 아이들과 계속해서 “무엇이 옳네, 그르네” 하면서 열을 올리는데 어쩔 때는 큰소리가 나면서까지 논쟁을 한다. 내가 왜 어린아이처럼 자식과 싸움질이냐며 참견하면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와 이런 논쟁을 자주 했는데 아버지도 자신도 이 논쟁의 시간을 즐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귀에는 이 논쟁이 싸움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외조부모,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에 식탁의 대화란 외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말씀하시면 부모님께서 순응하시며 좋은 말씀이 왔다 갔다 했지, 말씀 중에 내가 끼워 들거나, 어디 감히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말씀에 맞네 틀리네 하며 논쟁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이렇게 남편에게 훈련받은 아이들은 나의 의견과 행동에도 어쩌고저쩌고 토를 다는데 마음은 다른 독일 엄마처럼 평등하게 대해 주고 싶다가 내가 생각하는 선을 넘는다 싶으면 “욱” 하면서 나의 한국인 자아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하며.

거꾸로 한국 가정에서 공손과 복종을 훈련받은 학생이 김나지움이나 대학에 가서 수업을 받으며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친구들이 이야기 한 것을 듣기만 하고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하지 않을 때 이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선생님들은 이 학생은 아는 것이 없다고 판단하거나 의견이 없다고 단정 짓기 쉽다. 실상은 이 학생이 의견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있거나,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에 통렬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듣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선생님은 다 맞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고 믿도록 가정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복종과 공손만 오해받는 것이 아니다. 서양 문화권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이 의견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오해는 한국인이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데도 쓰인다. 가장 자주 접하는 예로 한국 사람들은 식당에서 동행한 사람들이 모두 김치찌개를 시키면 자신이 된장찌개를 먹고 싶어도 김치찌개를 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다른 사람이 원하데로 따르는 집단주의 문화를 설명하는데 자주 쓰이는 예시이다.

나도 오랫동안 문화 트레이닝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집단 문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들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없다”에 동참했었다. 지금은 이런 말들을 해왔던 과거의 세미나 내용이 부끄럽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계지향적으로 살면서 딱 하나의 자아를 견고하게 만들기보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자아를 만든다. 즉 어떤 순간에 자신만의 고집을 꼭 부리지 않아도 되기에 메뉴를 정할 때 음식의 종류에 목숨 걸지 않고 어울려 있는 무리들과 잘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욕망을 누르고 김치찌개를 억지로 먹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의견 없는 사람들로 만든 해석은 이문화 연구의 초기 연구들이 대부분 서양권에서 이루어져 자신들의 잣대로 한국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아이들 문제로 돌아가서 이렇게 공동체 관계지향적으로 사회화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너는 무엇을 좋아하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너는, 너는? 의 교육체계로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면 가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러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 비해 교육체계에 적응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드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가정 문화가 사회문화와 다를 때 부모들은 양 문화에 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이중, 다중언어자로만 키우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중, 다중문화자로 키워 가야 한다.

언어 습득은 단순히 글자, 문법을 배우는 것만이 아닌 그 언어에 내포된 세상을 보는 관점과 경험 그리고 독특한 문화를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부모와 주변인들은 다중 문화에서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힘주어 교육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문화에서는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가 다를 수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어떠한 학습태도가 더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 명백하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독일어로는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할 수 있는 아이, 한국어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히 잘 만들어 가는 아이, 그리고 이 두 자아 간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아이. 다중 문화 환경에서 문화적 유연성을 가지고 잘 자란 아이들은 앞으로 세계 평화를 가져다줄 우리의 자산임이 분명하다.

<기고자 소개>
• 현 독일 루르 보훔대학교 한국학 강사, 쾰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사회 언어학 및 어린이 다중언어 발달 교육 강사
• 기업 이문화 컨설턴트 (Interkuturelle Beratung, Cross-cultural consultant)
• 독일 쾰른대학교, 다중언어 어린이 한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로 언어학 박사
•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UMBC) 언어문화교육 석사
• 현 11학년과 10학년 자녀의 엄마

 

1261호 20면, 2022년 4월 1일